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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을 시작하는 후배에게

by 전선훈

연말이 다가오면 희비가 교차되는 날이 많아진다.


직장 생활을 함께 하던 후배들의 인사발령 소식이 들려오는 시즌이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는 임원으로 승진이 되어 일간 신문의 인사 동정에 나오고 누구는 회사를 떠난다는 얘기를 듣게 되어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정년을 보장해 주는 기업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고 한창 일 할 나이인 50세가 가까워지면 권고사직의 공포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인지라 후배들의 인사 관련 소식은 승진보다는 권고사직이 더 많은 들려온다.


나도 겪었던 일이지만 통보를 받던 그날의 기억은 별로 유쾌하지도 않았지만 회사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 마음이 아팠었고 극복을 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았다.


난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일정 부분 나의 노력으로 큰 성과를 내어 회사의 성장에 기여를 했다고 자부를 하고 있었지만 회사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저 나이 들고 봉급이 많은 직원들을 정리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봉급쟁이의 끝은 기업의 오너가 아닌 이상 항상 정해져 있기에 현직에 있을 때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라는 말들을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행으로 옮기기 쉽지 않은 말이다.


정기적으로 안정된 급여가 지급이 되고 대기업이라는 명함이 오히려 안주하게 만들고 미래에 대한 준비를 등한시하게 하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내 생각이지만 직장인 모두가 나에게는 권고사직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작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했었고 운 좋게 넘어가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미래에 대한 고민은 다음에 하는 걸로 결정하기를 반복하면서 직장생활을 이어갔고 아이들 대학 들어갈 때까지만이라도 다녔으면 하는 희망을 갖기도 하였다.


하지만 가늘고 길게 직장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실직이라는 현실은 순서만 정해지지 않았을 뿐이지 직장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공통사항인 것이고 결말이 뻔히 보이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며칠 전 꽤 늦은 시간에 연락 없이 가게로 찾아온 후배가 있었다.


“형님. 잘 지내셨죠?”


“오… 오랜만이다. 늦은 시간에 연락도 없이?”


“지나다가 형님 생각나서 들렀습니다. 하하하.”


“그래. 잘 왔다. 마침 손님도 뜸한 시간이니까 나랑 한잔하자.”


해외주재원 생활을 함께 했던 반가운 후배의 방문이었지만 사전 연락 없이 찾아온 이유를 대충 느낌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손님도 뜸한 시간이라 외부 간판의 등을 끄고 둘이서 편하게 한잔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눈치는 챘지만 권고사직을 받아 그만두게 되었고 복잡한 마음을 달래려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나쁜 놈들. 정작 나가야 할 놈들은 승진 파티하게 만들고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잘라내고… 나중에 그 놈들도 벌 받을 거다.”


안타까운 마음에 육두문자를 써가며 속내를 표현했지만 후배의 마음을 달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나가라고 하니 나가야죠. 버틸 수도 없고… 휴…”


긴 한숨을 쉬는 후배의 모습을 보며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냥 맥주잔만 부딪히며 안타까움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계획은 세우고 있냐?”


“아직은 없고 좀 쉬면서 생각해 보려고요. 피곤하기도 하고…”


“그래. 당분간 쉬며 천천히 알아봐. 요즘 재취업 경기가 코로나 시즌보다 더 심각하더라. 울 애들 인턴 경쟁률 보니까 알겠더라. “


“네. 저도 여기저기 헤드헌터와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 등록을 해놨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아직 애들도 중학생이고…“


말끝을 흐리는 후배의 모습을 보니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한참 애들에게 돈이 더 들어갈 나이이고 퇴직금과 위로금으로 받은 돈으로는 얼마 버티기도 힘들고 뭐라도 해야 경제적인 자유를 얻을 수 있기에 이것저것 알아보고 다니는 게 일이었다.


“형님, 지금 하는 일은 잘 되시죠? 예전에도 현장 뛰어다니며 영업하셨지만 호프집 하실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는데…“


”가끔 상상하던 일이었는데 실제로 할 줄은 나도 몰랐지. 생각보다 재미는 있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야. 그나마 몇 달간 이태리 식당에서 접시도 닦고 설거지도 하면서 경험을 했으니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엄두도 못 냈지. 하하하. “


“실행을 하신 게 중요한 거죠. 저는 시도 자체를 안 했을 겁니다. 헤헤헤.”


“우리 나이가 이제는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미는 상황이 되어버렸더라. 나도 처음엔 헤드헌터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었지. 잘 성사돼서 최종 면접을 몇 번 봤지만 대부분의 피드백이 경력은 딱이지만 나이가 조금 많다는 얘기가 대부분이더라고. 몇 번 그러고 나니까 더 이상 업무 경력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희망고문인 상황이라 힘들어도 내가 하는 일을 찾으려 했던 거지. 다행스럽게도 지금 이 일이 힘들어도 맘 편히 할 수 있으니 좋지. “


”형님이 부럽습니다. 저는 지금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제대로 정리도 못하고 있습니다. 고민한다는 핑계로 담배 피우는 양이 더 늘었어요. “


”그래도 몸이 상하면 안되네. 건강해야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거야. 안 그러면 무기력해지고 더 힘들어져. “


”그렇긴 한데… 마음 정리가 쉽지가 않네요. 휴…“


”그럴 거야. 나도 똑같은 심정이었으니까. 망치로 머리 한 대 맞은 느낌이랄까…“


같은 경험을 몇 년 전에 했고 혼란스러운 마음 상태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는 게 지금 후배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맥주 한잔을 마시고 몇 년 전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악을 해보면…


취업시장이 얼어붙어 있는 것은 지금이나 팬데믹 시즌이나 큰 차이가 없으니 방황은 짧게 끝내고 재취업을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각종 구직 사이트와 헤드헌터 회사에 이력서와 경력증명서를 바로 올려라.


이력과 경력을 조회하는 회사들은 항상 존재하니 급한 마음에 경험 없는 일에 도전하지 말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인지를 잘 살펴서 지원해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관하는 자격증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고 국가에서 비용도 지원을 해주는 교육도 있으니 본인에게 맞는 자격증에 도전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이다.


재취업이 안되다 보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게 될 것이고 생소한 일에 대한 업무 리뷰를 잘 살펴보고 도전해라.


예를 들면 택배, 경비, 건설, 택시, 탁송, 주차관리등의 일자리가 있을 텐데 예전엔 어르신들 전용이라고 치부되던 일들이지만 지금은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로 바뀐 지 오래됐고 건강이 허락되지 않으면 힘든 일이니 신중하게 판단해라.


“지금이야 편하게 얘기하지만 내가 자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 번씩 해봤던 일이야. 체력이 되면 하고 싶었지만 하루 해보니 약값이 더 들겠더라. 그래서 포기했었지. 하하하.”


“들을수록 대단하시네요. 그래도 화려한 경력이 있는데 다 내려놓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모습이 보기 좋으신데요. 헤헤헤.”


”자네도 빨리 마음 정리하고 장기적으로 본인에게 어울리는 직업을 찾았으면 좋겠다. “


”형님 얘기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잘 안 풀릴 때 가끔 들려도 되죠? 헤헤헤.”


“그럼. 언제든지 환영이지.”


“형님 기억나세요?”


“뭐?”


“예전 인도네시아에서 둘이서 셔터문 내리고 술 한잔 했으면 좋겠다 했던 얘기 기억나세요?”


“아… 그래. 수라바야 지역에 출장 갔을 때… 기억나지.”


“그 소원이 오늘 이뤄지네요. 형님 가게에서 이렇게 한잔하고 았으니… 하하하.”


“여기 있는 술 다 마셔도 좋으니 원하는 대로 골라 마셔.”


“항상 그렇듯 술 인심은 여전히 후하시네요. 하하하.”


“그럼 사람이 변하면 안 되지. 하하하.”


과거 인도네시아에 주재할 때 산간지방으로 출장을 갔었던 기억이 났다.


늦은 시간에 도착한 호텔 식당에서 주류 판매 허가증이 없어서 술이 없다는 얘기에 셔터문 내리고 마시면 안 되냐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 그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기쁜 날이다. 우리 옛날로 돌아가 인도네시아어로 건배 한번 어때?”


“좋죠. 하하하.”


“사뚜 두아 띠가. 파이팅!”


예전의 소원을 풀었으니 후배의 앞날에 좋은 일만 생기기를 간절히 바라며 늦은 시간까지 건배를 외치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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