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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모녀 이야기

by 전선훈

가게로 출근을 하면 영업 준비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음악을 트는 일이다.


매장에 적당한 소음(60-70db)을 유지하면 고객 회전율에 도움을 준다는 보고서를 본 적이 있었고 아는 노래라도 나오면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리는 느낌이 들어서 세대와 상관없이 최신가요를 많이 틀어 놓는다.


그런데 오늘은 조작 실수로 트로트를 잠시 틀게 되었는데 영업 시작 전이라 흥얼거리며 청소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


홍시(울 엄마)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분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부모님의 소중함과 효심을 일깨우게 해 주고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표현하고 있어서 술 한잔 하면 저절로 떠오르는 노래이기도 하고 노래방의 단골 노래 목록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부모라는 자격으로 자식들을 책임져야 한다면 어디까지가 한계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물론 부모로서의 책임과 역할은 죽어야 끝난다고 하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전통적인 부모의 책임과 역할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4형제 중 막내아들로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우리 막내가 장가만 가면 더 이상 할 게 없다”며 책임의 끝이 결혼임을 강조하던 부모님의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책임을 다한 것으로 여겼던 부모님의 관심은 결혼 이후에도 여전했고 눈을 감기 전까지 자식들 걱정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나도 아이들이 커가면서 내가 생각한 책임의 끝이 점점 바뀌었던 것 같았다.


처음엔 대학만 들어가면 더 이상 할 게 없겠구나 했던 마음이 이제는 취업만 되면 더 이상 원이 없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고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남겨두었다.


나도 나이가 먹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계속 바뀌고 있었지만 최근에 있었던 일로 인해 책임과 역할에 대한 결론을 확실하게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눈 내리고 바람이 불면서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정도로 느껴지는 저녁시간이었다.


손님도 별로 없어서 일찍 들어갈까 고민을 하던 중이었는데 집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큰 애가 전화를 안 받네. 늦은 시간인데…”


“매일 야근이라니까 좀 늦겠지. 다 큰 애를 뭘 걱정을 하고 그래.”


“그래도 추운 날씨라 걱정이 돼서 그렇지.”


인턴을 하고 있는 큰 아이가 늦은 시간인데 연락도 안되고 날씨는 춥고 하니 걱정이 되었던 상황이었지만 야근이 일상인 인턴 업무라 큰 걱정 말라며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여보. 전화가 왔는데 택시를 타고 오는 길 이래. 그런데 회식이 있어서 술을 좀 드셨나 봐. 혀가 좀 꼬인 것 같던데…”


“다행이네. 택시 탔으니 금방 오겠네. 걱정 말고 쉬셔.”


“알았어요.”


내심 걱정을 했었지만 연락이 되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일찍 들어가기 위해 마감 준비를 하고 있던 중 집사람으로부터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도착해서 내렸다는데 전화를 안 받아. 어떡하지? 날씨도 엄청 추운데…“


”집으로 걸어오느라 그런 거 아닌가? “


”아니야. 한참 됐어. 내가 나가봐야겠네.”


가게 일을 도와주던 둘째 아이도 큰 아이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고 나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한편 그 시각에 집사람은 택시에서 내렸을 아이를 찾아보기 위해 외투도 챙겨 입지 못한 채 집 근처 여기저기를 찾아다녔고 추운 날씨에 술에 취해 야외에서 잠이라도 들었을까 봐 걱정이 된다며 울먹이고 있었다.


다행히 한참이 지나서 큰 아이와 연락이 되었고 둘째 아이와 함께 지하철역 근처에 가서 택시비를 지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둘째 아이도 자기 형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고 지하철역으로 운전을 할 때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갔다고 집사람이 알려주었다.


가게 마감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니 큰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집사람과 둘째 아이는 잠깐사이에 온갖 상상을 해서인지 얼굴이 핼쑥해 보일 정도였다.


“고생하셨네. 그래도 아무 일 없었으니 다행이지.”


“얼마나 취했는지 누군지도 못 알아보고 둘째가 운전한 차를 타고 집에 도착했을 때 택시 기사인 줄 알고 고맙습니다 하는 인사를 하더라니까. 얼마나 괘씸한지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니까…”


“어떤 상황인지 상상이 가네. 나도 내심 무슨 일 생겼을까 봐 걱정이 많이 되더라고. 다행이네.”


”여보. 난 정말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여기저기 찾아다녔는데 외투도 안 입고 슬리퍼 차림이었는데 하나도 추운 걸 못 느끼겠더라고. 자식이 아니었으면 그렇지 않았겠지? “


”그렇지. 우리 아이니까 그런 거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렇지 않았을걸…“


인턴을 하는 아이의 상황으로는 여기저기서 주는 술을 다 거절할 수 없었을 테지만 적당히 가려서 먹는 법도 사회생활에서 필요함을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일종의 잔소리)을 하면서 하루를 미무리 하였다.


그런데 또 다른 곳에서 어제와 비슷한 일이 다음날 저녁 무렵에 벌어졌다.


그날도 저녁 날씨는 강추위였고 손님도 뜸한 상태라 일찍 들어가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을 하며 정리를 하는 중에 경찰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ㅇㅇㅇ 씨 따님 되시죠? “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


“네. 저는 구로 경찰서 ㅇㅇㅇ 경찰입니다. 지금 어머니가 따님 실종 신고를 하셔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네? 실종 신고요?”


“어머님께서 따님이 누군가에게 잡혀가셔서 집 근처를 맨발로 찾아다니시다가 도저히 못 찾겠다며 찾아달라고 신고를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상 없으니까 그냥 돌아가셔도 됩니다. 제가 지금 바로 어머니 집으로 갈게요.”


경찰관과 대화를 마친 집사람은 바로 어머니 집으로 향했고 도착 후 상황을 파악하고 전화를 걸어왔다.


“여보. 오늘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가야겠어. 혼자 계시기엔 좀 휴식이 필요해 보이네. 자세한 얘기는 집에 가서 할게.”


“그래. 알았어. 집에서 보자고.”


전후사정을 몰라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혹시라도 기억을 잃어가는 병을 얻으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딸이 사라졌다며 그 추위에 맨발로 딸을 찾아 나섰다는 상황이 그런 상상을 하게 했다.


가게를 일찍 끝내고 집에 들어가 전후사정을 들어보니 내가 잠시나마 상상했던 그런 일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유행하는 독한 감기에 걸려 일주일 이상을 집에서 심하게 앓다 보니 기력이 많이 상한 상태였고 체력도 바닥난 상황에서 감기약을 먹고 잠시 환각증세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딸을 찾으러 맨발로 문 밖을 나선 장모님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딸을 잃어버린 것은 본인의 책임이라고 여겨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루 전 집사람의 행동과 다음날 장모님의 행동을 종합해 보면 자식에 대한 책임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고 평생을 자식 걱정으로 살았을 부모님이 생각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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