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부터 울려대는 익숙한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깬다.
“ Tell me when will you be mine, tell me quan do quan do quan do…”
나를 아는 사람은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전화를 할리가 없으니 분명 모르는 전화번호일 거라 확신하고 그냥 끊어버렸다.
다시 잠이 들기를 바랐지만 한번 떠진 눈은 감기지 않았고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고 있던 즈음에 전화벨 소리가 또 울렸다.
나에겐 이른 시간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정상적인 활동시간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이상할 게 없어서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전 선생님 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어디신가요?”
“저는 GLG (Gerson Lehrman Group) 제임스 초이라고 합니다. 이른 시간에 전화드려서 방해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처음 들어보는 회사 이름인데 무슨 일이신가요? “
제임스 초이라는 사람이 자기 회사 소개를 시작했고 요약하면 비즈니스 결정에 필요한 전문적인 인사이트를 제공해 주는 기업이며 전문가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고객사와 연결해 주고 일정 금액의 자문료를 지불하는 회사라는 얘기였다.
“저는 가입을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저를 찾으셨나요?”
“네. 저희와 협력 중인 한국의 헤드헌터 회사에 등록하신 자료를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아… 기억납니다. 아주 오래전에 가입한 걸로 기억이 나는데…”
자영업 시작 전 꽤 알려진 헤드헌터 회사에 경력을 올려놓고 제2의 인생을 다른 회사에서 시작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가입한 기억이 났다.
“마침 선생님의 경력을 필요로 하는 회사가 있어서 연결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제가 등록된 메일로 자세한 내용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도 들고 나의 경험이 필요한 회사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수락을 했다.
“계약서 파일을 보내드릴 테니 검토하시고 회신 주시면 됩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
계약서 내용을 확인해 보니 전문가 자문 계약을 맺으면서 지켜야 할 비밀 유지 사항과 자문 방법에 따른 자문료가 자세하게 적혀있었다.
전화로 자문을 하거나 영상으로 자문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때로는 직접 대면 자문을 해야 하는 경우로 나뉘는데 상황에 따라 다른 자문료가 설장 되어 있었고 나의 경력을 시간당 금액으로 환산해 본 적은 없었지만 꽤 큰 금액이어서 적잖이 놀랐다.
계약서에 서명을 끝내고 바로 고객사 미팅이 연결되었고 해외 사업과 관련된 분야의 자문을 영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계약상 자문 내용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해외로 진출을 원하지만 아무런 경험이 없는 회사이고 프로세스를 구축하기를 희망하는 자문이었다.
세 시간 동안 궁금해하는 내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다 보니 과거에 열정적으로 일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무역왕을 꿈꾸며 해외 사업 관련된 분야에서만 27년간의 업무 경력을 이어왔으니 할 얘기가 많았다.
실패와 성공 사례를 설명하면서 초기 세팅이 중요하니 늦더라도 천천히 가면서 내공을 쌓기를 추천했지만 해외로 진출하려는 기업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성공을 거두기를 바라기 때문에 천천히 내공을 쌓으라는 제안은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긴 했다.
“전문가님의 자문을 받다 보니 계약된 세 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오늘 자문해 주신 내용은 저희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향후 조언이 필요하면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모처럼 제가 경험했던 일에 대한 자문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상 자문을 끝내고 나니 바로 자문료 확정에 대한 메일이 날아왔고 확인 절차를 걸쳐 금액을 확인하니 전날 열심히 새벽까지 생맥주를 나르며 치킨을 튀겼던 매출만큼의 금액이었다.
자문료도 놀랐지만 과거의 열정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생각에 놀랐고 전문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현실이 아주 기쁘게 느껴졌다.
아침에 걸려온 전화를 저장되지 않은 번호라고 해서 받지 않았다면 오늘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고 전문가라는 직함으로 자문 계약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자영업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순 없지만 가끔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날이 자주 온다면 새로운 삶의 활력소가 될 것 같았다.
과거 작은 회사들을 방문해 보면 좋은 제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진출에 대한 아무런 경험과 프로세스가 없어서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었는데 나의 경험을 그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서 맺은 해외사업의 인연으로 27년간 경험을 이어왔지만 나도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선배들이 기록한 팩스(Fax) 내용을 보면서 하나 둘 배우기 시작한 게 전부였고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했던 기억이 났다.
지금 자문을 받은 업체도 실패를 줄이기 위해 거금을 들이는 것이고 미래에는 해외사업을 통해 더욱 성장한 회사가 되고픈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 27년 전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나에게 자문위원 역할은 새로운 삶의 활력소가 되어 주었으니 가끔씩 나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기를 바랄 뿐이다.
며칠 후 GLG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문가님, 혹시 영어 자문도 가능하실까요?”
“네. 가능합니다.”
“자문료가 기존의 3배입니다. 자문에 응하시겠습니까?”
“그럼요. 당연히 해야죠. 날짜와 시간이 정해지면 알려주세요.”
이번에는 영어 자문이라 긴장이 되기도 하지만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니 실패를 줄일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