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쉬면서 짜파게티 먹는 날.
지금도 꾸준히 팔려 나가는 짜장 라면의 광고에서 나오던 메인 카피였고 쉬는 날은 무조건 이 짜장 라면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냥 출근하지 않는 날이어서 늦게까지 잠을 자고 난 후 아침 겸 점심으로 끼니를 때우고 TV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시간을 때우다 이른 저녁으로 소주 한잔 마시고 잠에 들었다가 다시 출근하는 단순한 루틴의 휴식이었다.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를 하면서는 휴식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며 살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이유는 단 하나였다.
본사와는 업무 시간의 시작을 2시간 늦게 출발하는 시차도 있었고 현장 영업을 책임지고 있기에 사무실 출근보다는 영업사원들의 판매 루트를 따라 동승영업을 하는 날이 대부분이었기에 본사와의 업무는 주로 오후에 하는 편이었다.
상사의 업무 지시를 받아서 하는 일보다는 현장에서 한 일을 보고하는 형식이어서 실적만 받쳐주면 거의 간섭이 없었기에 업무의 강도는 그리 세지 않았고 어디든 내 마음대로 다닐 수 있기에 휴대폰으로 업무 보고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휴일의 의미는 출근 안 하고 그냥 집에서 빈둥거리는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랬다는 얘기지 지금 해외에서 주재원으로 근무를 하는 사람들의 얘기는 절대 아니다.
자영업을 시작한 이후 쉬는 날의 의미는 예전의 직장 생활할 때보다는 아주 소중한 휴식이자 재충전의 시간이기에 잠을 충분히 자면서 피로를 풀고 싶지만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더 일찍 눈을 뜨게 되는 날이 많다.
사우나 아니면 찜질방에서 피로를 풀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피로 해소는 지인들과의 만남이다.
일요일 외에는 예전처럼 평일 저녁에 만나 소주 한잔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으니 일요일에 만나는 지인들이나 형제들 모임은 피로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살게 되었다.
가끔 전화나 카톡으로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람들과의 마지막 맺음말은 늘 ‘언제 식사나 한번 합시다’ 이거나 ‘언제 한번 봐요’가 습관적으로 나오지만 딱히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이나 만나고 싶은 여유가 없는데 예의상 하는 말이 돼버린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자영업을 시작한 이후 사람일 이라는 것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만날 수 있을 때 만나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되어 이제는 언제 밥 한번 먹자라고 말을 했거나 언제 한번 보자라고 했으면 정말로 밥 한번 먹고 한번 만나는 것도 좋을 것 같은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멀리 미얀마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가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전 사장. 잘 지내지?”
“임사장. 오랜만이네. 나야 그럭저럭 지내고 있지.”
“가게는 잘 되고 있지? 요즘 시국이 하도 어수선하고 경기도 안 좋은데…”
“요즘 자영업자들 다 힘들지. 매출도 많이 줄어서 버티기 힘들고… 빨리 이 어수선한 시국이 정리가 되어야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네.”
이런저런 얘기로 카톡을 하다가 그 친구도 한국에 들어왔으니 조만간 보자는 얘기로 맺음말을 보내왔다.
“그럼 다음 주 쉬는 일요일에 종로에서 보는 건 어때?”
예의상 하는 말이었겠지만 나는 정말 만나서 밥 한번 먹고 싶은 마음에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참 동안 답이 없기에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 싶은 생각이 들 즈음에 답이 왔다.
“좋지. 그럼 오늘 보는 건 어때?”
“나야 좋지. 그럼 오랜만에 종로에서 낮술 한잔 콜? “
”내가 안국동 근처에 볼 일이 있으니까 괜찮으면 안국동 쪽에서 오후 1시 어때? “
”오케이. 안국동에서 1시에 보자. 나는 시간이 여유가 있으니까 천천히 일 보시고 오셔. “
갑작스레 일정이 생기니 기분도 좋아지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것도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전철을 타고 오는 동안에는 미얀마에서 함께 보냈던 친구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흐뭇한 마음이었지만 목적지인 안국역에 도착하면서 불쾌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역 주변에는 이미 태극기 부대라 불리는 시위대로 채워져 있어서 이동도 쉽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젊은 나를 보며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다며 심한 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꾸를 했다가는 봉변을 당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의 분위기는 심각했고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목적지인 식당에 도착하여 친구를 만났다.
”오느라 힘들었지? “
”그러게. 이 정도로 심할 줄 몰랐는데…다른 곳에서 볼 걸 그랬나 싶더라. “
“다 잊고 오랜만에 만났으니 맛난 거 먹고 술이나 한잔 하자.”
“이곳에서 정치적인 얘기 하면 큰일 나겠다. 쉿.”
“그래야지. 하하하.”
오랜만에 만난 친구이니 할 얘기도 많았고 편하게 술을 마시니 기분도 좋아졌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보내고 다시 전철을 타기 위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한 무리의 시위대가 다가오더니 시위에 동참하라며 태극기를 손에 쥐어 주었다.
“죄송합니다.”
난 거부 의사를 알리며 태극기를 돌려주었지만 돌아오는 얘기에 살짝 화가 났다.
“젊은 놈이 나라를 위하는 일에 동참하지 않고 낮시간에 술이나 처먹고 다니고…쯧쯧쯧.”
“네? 뭐라고요? 말이 좀 심하시네요. “
“뭐. 우리말이 틀려?”
“하…”
난 그냥 긴 한숨만 나왔다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아무런 대꾸를 안 했지만 불쾌한 마음이었고 전철역으로 이동하는 내내 비슷한 소리를 계속 들으며 도착했다.
“전 사장. 잘 빠져나왔어? 난 한판 붙을 뻔했는데… 하하하. “
”나도 한판 붙을까 했지만 꾹 참았지. 한마디 했으면 봉변당하겠더라. 하하하. “
”다음엔 미얀마에서 보자. 오늘 얼굴 보고 술 한잔 하니 좋더라. “
”그래야지. 예전처럼 펀라잉 가서 골프도 치고 그러자. 미얀마 비어도 한잔 하고…“
”오케이. “
우리는 그렇게 일요일 오후를 기분 좋게 보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과거에도 정치적인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던 적이 있었지만 상대방에 대한 비난은 그리 심하지 않았던 시대를 살아왔다.
하지만 요즘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버린 느낌이 들 정도로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 도를 넘어 린치를 가하려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처럼 느껴졌다.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과 욕설로 그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그저 분노가 가득 찬 모습일 뿐이었다.
언제쯤 서로의 분노가 사라질 수 있을까?
가게에서 가끔 티브를 보다가 혼잣말로 정치적 의견을 얘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집사람은 늘 같은 얘기를 한다.
”쉿. 손님들 있을 때는 절대 금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