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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과 독박사이

by 전선훈

승자독식


경쟁이나 경기에서 이긴 사람이 관련된 이익이나 보상을 모두 얻는다는 뜻으로 경쟁 없이 쉽게 돈이나 명예를 얻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단어이다.


영어로는 ‘The winner takes it all’인데 예전 혼성그룹인 ABBA의 노래로 사랑이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게임처럼 느껴진다는 점을 강조한 노래로 기억된다.


과한 욕심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경쟁 없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면 합법적인 틀 안에서 경쟁자를 물리칠 전략과 전술을 끊임없이 개발하여 아무도 넘 볼 수 없는 1등의 위치를 차지하고 유지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승자독식하면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대통령 선거 제도가 아닐까 싶다.


일부 몇 개의 주를 제외하면 각 주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그 주의 선거인단을 다 가져가는 시스템이어서 전체 득표수는 많아도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을 하게 되는데 45대 대통령 선거 때 힐러리가 전체 득표는 앞섰지만 당선은 트럼프가 된 사례를 꼽을 수 있겠다.


지금도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을 하고 베트남의 작은 염색 공장에 투자를 했다가 트럼프가 대통령이 돼버리면서 대박의 꿈이 사라졌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두 번째로는 1위에게만 상금과 상품을 지급하는 대회를 꼽을 수 있겠는데 최근에 방영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은 101명이 참가해서 최종 1위 1명에게만 엄청난 상금과 상품을 몰아주어 2위가 된 사람의 부모 되는 듯한 분의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그대로 화면에 노출되기도 했었다.


오히려 3위를 차지한 사람이 더 행복해 보일정도였고 2위인 사람에겐 너무나 잔혹한 패배감을 안겨주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세 번째로는 e-commerce 분야를 꼽을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아마존이나 쿠팡이라는 회사가 떠오른다.


오랜 시간 엄청난 적자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투자를 통해 현재는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평가되고 2위와의 격차를 점점 벌려 나가고 있으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영업자인 내가 승자독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건 최근에 우리 상가 내에 개업을 한 식당을 보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수되기 전의 가게는 나와 거의 동일한 업종이었고 치킨과 생맥주가 기본이었지만 소문이 어찌 났는지 장사는 그리 신통치 않은 가게였다.


그래도 독식을 해보겠다고 상대 가게가 망하기를 바란 적은 없었고 함께 잘 버텨나가기를 바랐다.


2천 세대가 넘는 단지 내에 호프집이 두 군데밖에 없으니 운영만 잘 되면 큰 어려움 없이 서로 동반성장도 가능할 것 같았는데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는지 한동안 문이 닫혀 있었고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 내부 공사를 시작하더니 곧 새로 오픈한다는 현수막을 붙여 놓았다.


보통 새로 개업하는 집이 생기면 개업 오픈발이라고 해서 매출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기에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나와 같은 업종이 아니기를 바랐지만 지나가면서 슬쩍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니 독식의 의도가 가득 찬 것으로 느껴졌다.


“하… 같은 업종이 아니길 바랐는데… 쩝.”


“왜? 우리랑 메뉴가 겹쳐?”


“혼자 다 먹겠다는 느낌인데… 하하하.”


“헐… 메뉴가 어떤데?”


“우리가 하는 메뉴 80프로에 새로운 메뉴가 곱창이라 하네. 들리는 말로는 돼지 곱창집을 오래 했다고 하던데…”


“아…그니까 우리 집과 비슷한 메뉴를 기본으로 하면서 기존 손님들과 돼지 곱창으로 새로운 손님들을 한꺼번에 상대하겠다는 의도네. “


”그렇다고 봐야지. 당분간은 매출이 좀 줄겠다 생각해야겠다. “


시국이 불안정한 상황에 경기도 안 좋아 매출이 많이 준 상태였는데 설상가상으로 새로운 업체의 등장은 많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동네에서 돼지 곱창은 좀 아니지 않나?”


“그야 모르지.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


“이 동네 아줌마들이 곱창냄새 맡으며 오랜 시간 맥주 마시며 얘기하고 그러지는 않을 것 같은데…호호호. “


“그렇긴 하지. 그동안 우리 가게를 찾아준 손님들을 분석해 보면 그럴 아줌마들은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좀 지켜보자고. “


”차라리 돼지곱창을 전문으로 했으면 서로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술 한잔 할 수 있는 곳이 두 곳뿐이니 우리가 만석이면 옆집으로 가고 옆집이 만석이면 우리 집으로 오고…“


”새로 개업하는 사람들은 그럴 생각이 없나 보네. 이곳에서 독식을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거니까…“


”독식일지 독박일지는 좀 더 지켜본 후 판단하자고. 아직은 이른 것 같으니까. 하하하. “


며칠이 지난 후 개업을 알리는 화분이 배달되고 개업 첫날은 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방문으로 시끌벅쩍한 분위기였고 그 분위기는 며칠간 이어졌다.


그 기간 동안 매출이 줄 것을 걱정했지만 매출이나 단골손님도 크게 줄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오픈발이 꺼지고 난 후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가 궁금해졌다.


개업기간 동안에도 우리 가게는 학부모 모임과 아이들 생일잔치 모임도 계속 이어졌고 매출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음식의 콸리티에 더 집중하는 것이 경쟁력을 갖추고 차별화를 위한 전략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어… 옆에 새로운 가게가 생겼네요? “


늦은 시간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서 들리는 오래된 단골손님 일행이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었다.


”어서 오세요. 문 연지 며칠 되었어요. 어떤가 하고 한번 가보시지…호호호. “


집사람은 손님들을 자리로 안내하며 웃었다.


“에이. 저는 곱창도 별로 좋아하지도 않지만 사장님이 해주시는 음식이 다 맛있어서 다른 곳 가는 게 의미 없어요. 하하하.”


손하트를 날리며 웃음 짓는 손님을 보며 집사람도 함께 웃어 보였다.


“여보. 오늘은 서비스 좀 많이 드려야겠는데…호호호.”


며칠간 경쟁 업체의 등장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집사람은 큰 영향이 없다는 상황에 안도를 하게 되었고 오픈발이 꺼진 후에는 찾는 손님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거봐. 이 동네에서 돼지곱창은 아니라고 했지. 하하하.”


“그러게. 그래도 한 번은 궁금해서 가보지 않을까?”


“단언컨대 학부모들은 절대 그 집에서 모임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셔. 소주 좋아하는 어른들은 몰라도 그동안의 단골손님들은 변함없이 우리 가게를 찾을 것 같으니까. “


집사람도 그동안 지켜본 상황이 우리에게 큰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뒤 웃으며 한마디 하였다.


“이젠 걱정 말고 음식 콸리티에 더 집중해요. 가격 올리려고 한 건 좀 보류해야겠네. “


”가격 인상은 하긴 해야 하는데… 그건 때를 좀 보자고. “


”그나저나 저 집도 손님이 바글바글 하기를 바라고 개업을 했을 텐데 기대이하라 실망이 좀 크겠네.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 “


”여보. 남 걱정하지 말고 우리나 걱정합시다. 그리고 내가 얘기했잖아. 독식은 우리가 하게 될 거고 저 집은 독박 쓸 거라고. 하하하. “


”우리도 너무 욕심내면서 하지는 말아요. 좋은 식재료로 맛있는 음식 만들어서 손님들한테 드리면 그분들이 다 알아줄 테니까요. 진정성은 우리가 아니라 손님들이 느끼게 만들어야 하니까. 안 그래요? “


”오… 우리 사모님이 마케팅 전문가 다 되셨네…네. 열심히 튀기고 볶고 무쳐서 맛있게 만들겠습니다. 하하하. “


그날 가게문을 닫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은 집사람과 나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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