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휴대전화 하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돼버린 지 아주 오래되었다.
없으면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일상이 마비될 정도이니 IT 인프라로 국가 순위를 결정한다면 단연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이지 아닐까 싶다.
동남아에 잠시 살던 시절의 일상 업무를 기억해 보면 거의 대부분 하루 종일 줄을 서서 기다리다 운이 좋으면 당일에 해결이 되고 다음날에야 발급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도 똑같은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IT 인프라는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나라를 따라올 수는 없을 것이다.
직접 방문해야만 했던 관공서나 은행 업무는 물론 세금 관련 업무도 모두 휴대전화 하나면 가능해진 세상이지만 그 일상의 편리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결되는 사이트에 필수적으로 회원으로 가입을 해야만 한다.
대부분 같은 아이디와 기억하기 쉬운 비밀번호로 설정을 하지만 사이트마다 원하는 보안 요구 수준도 틀리고 쉬운 비밀번호는 아예 등록이 안 되는 경우도 있어서 사이트마다 다른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설정을 해야 하고 어딘가에 메모를 하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
그래서 나는 사이트에 가입을 해야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아주 중요한 가족의 정보는 꼭 휴대전화에 메모를 해놓고 기억을 하고 있다.
나름 정보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입여부가 기억나지 않는 사이트에서 날아오는 광고성 메일이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사과 메일이 날아올 때는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탈퇴를 위해 로그인을 시도하지만 아주 오래전 가입한 사이트라 메모가 없는 경우도 흔해서 어쩔 수 없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기도 하다.
털릴 정보도 별로 없을뿐더러 나를 사칭하고 다녀봐야 크게 먹을 것도 없어서인지 지금껏 온라인 범죄의 대상이 되어본 적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최근에는 SNS 활동을 별로 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꽤 활발하게 SNS 활동을 했었다.
친구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나와 관련된 소식을 전하는 즐거움에 빠졌었고 친구들이 올리는 소식에 하트를 날리거나 댓글을 남기는 활동을 꾸준하게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자영업을 시작한 이후로는 아주 가끔 들어가 보는 정도로 활동시간이 확 줄어들었다.
어느 날 나의 생일을 알리는 SNS 알림 메시지가 울려서 오랜만에 로그인을 했더니 친구들의 축하 메시지와 근황을 알리는 소식들이 잔뜩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답글을 남기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즈음에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아주 친한 친구의 메시지가 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주 의아했지만 반가운 마음에 메시지를 읽어 보다가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ㅇㅇㅇ 씨의 아들입니다. 이 그룹에 초대되어 있는 분들에게 아버님을 대신해서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하늘의 별이 된 친한 친구의 아들이 보낸 메시지였다.
“아버님을 하늘로 모신 후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버님의 개인 SNS는 여전히 활동 중이고 남겨진 많은 친구분들의 사진과 자료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친구분들의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아들이 대신하여 아버님의 계정을 삭제하려고 합니다. 필요하신 자료나 사진은 2025년 3월 31일 이전까지 파일로 옮겨두시고 4월 1일부터는 계정을 탈퇴하고 모든 자료를 삭제하겠습니다. 그동안 아버님과의 추억을 공유하셨던 계정이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친구의 계정에는 그동안 교류를 나누며 남겼던 많은 사진과 자료들이 그대로 있었고 여전히 활동 중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교류를 나누며 교환했던 많은 사진 자료들을 하나씩 확인하며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파일에 담은 후 답글을 남기고 나왔다.
“이제는 자네를 보내려 하네. 그동안 즐거웠고 내 친구가 되어 주어서 고마웠네. 영면하시게.”
그날 나는 친구와 보냈던 시간들의 흔적을 하나씩 되돌아보며 먹먹해지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한참을 울먹이면서 시간을 보냈다.
친구 아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들의 정보는 더 이상 피해를 받지 않은 채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졌고 며칠이 지난 후 남겨진 친구들은 우리 가게에 모여 친구와의 추억을 얘기하는 시긴을 보내게 해 주었다.
가입은 했었지만 활동을 하지 않는 SNS는 나도 많다.
그날 이후 로그인을 해보니 여전히 활동 중으로 표시되어 있고 나의 정보와 사진들을 아무런 제약 없이 퍼 나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가입은 쉬웠지만 계정 삭제를 위한 프로세스는 꽤 복잡했고 온라인상에서 잊힐 권리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했지만 언젠가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반드시 찾아야 할 권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