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날이면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 모두 모여서 시청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풍족한 삶도 아니었고 음울한 70-80년대였지만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날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웃을 수 있는 그런 날이었고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 이기동 등 유명한 코미디언들이 출연해서 전국을 들었다 놨다 하며 웃겼던 전설적인 프로그램으로 기억을 한다.
이 방송을 보고 난 그다음 날의 교실 풍경은 코미디언들의 말투와 행동을 따라 하느라 쉬는 시간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하루 종일 행복한 기분이었다.
행복한 기분으로 만들어주고 전 국민을 웃게 해 주던 코미디 프로그램도 70 - 80년대의 경직된 사회 분위기에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상황이 되었는데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인, 재벌, 기업인, 종교인, 경찰, 군인 등이 풍자와 조롱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코미디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풍자와 조롱의 대상이 사라졌으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고 넘어지고 때리고 거지 분장 밖에 할 수 없는 게 없다 보니 결국엔 ’ 억지웃음을 강요하는 유치한 언동‘,’ 아동 교육에 악영향을 끼친다’라는 이유로 모든 코미디 프로그램이 폐지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내 기억엔 구봉서와 배삼룡 선생이 양반이라고 속이며 혼인을 맺으려 하는 ‘양반 인사법’이라는 명작코너가 기억나고 구봉서 선생이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으로 이어지는 70자 길이의 유행어는 소풍 때 장기자랑 1순위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아주 오래전 프로그램이지만 지금의 어떤 코미디보다도 더 웃음 짓게 만들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최근에 찡그린 표정 대신 미소를 지으면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해진다는 사실이 과학적 연구로 입증이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실 웃는 표정을 지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만 과학적 연구를 통해 사실로 입증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연구 결과, 얼굴 표정은 감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데 미소는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고 반면에 노려보는 표정은 화를 더 나게 만들고 찡그린 표정은 더 슬픈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얘기였다.
손님을 응대하며 하루를 보내야 하는 자영업자들에겐 당연한 일이지만 얼굴 표정은 늘 미소를 띠며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어서 오세요. 편한 자리로 앉으세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손님이 들어오거나 나갈 때 늘 하는 말인데 인상을 쓰며 얘기를 하면 불쾌한 감정이 생길 테고 다시는 방문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아도 늘 미소를 띠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업이지만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니 모든 자영업자들은 ‘행복 전도사’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하루에 대략 백번 이상의 인사를 하는 것 같은데 인사를 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건 사실이다.
콧노래도 나오고 힘든 일이 전혀 힘들게 안 느껴지니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고 덩달아 매출도 오르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비결이 바로 미소와 웃음인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손님들의 표정을 살펴보면 그리 유쾌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든다.
들어오면서부터의 표정도 그렇고 술을 마시면서 나누는 얘기도 그렇다.
“사장님. 채널 좀 돌려도 되죠? “
”네. 가능은 한데…다른 채널도 같은 게 나오던데…“
”그냥 스포츠 채널이나 틀어 주세요 “
”알겠습니다. “
그날 구치소에서 대통령이 석방되는 날이어서 모든 방송이 속보로 같은 장면을 보내고 있었다.
“아… 대체 나라 꼴이 왜 이러냐?”
“그러게. 몇 달 사이에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이야.”
“웬만하면 정치적인 얘기는 안 하려고 하는데… 완전히 반반으로 나눠져서…”
“빨리 결론이 나야 안정이 될 텐데 걱정이다.”
국민을 웃음 짓게 만들고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 것이 국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데 거꾸로 국민들이 나라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암울한 70-80 년대로 다시 돌아가 버린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하니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대단한 능력자가 된 셈이라고 여겨도 무방할 것 같다.
그날 대통령은 주먹을 불끈 쥐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걸어 나오고 있었는데 대통령의 미소를 보면서 행복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연구 결과는 행복해진다고 했는데…
그날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어사시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았더라.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낙(民淚落)이요,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姓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