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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물어보세요

by 전선훈

잘 나가는 기존의 제품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제품을 매장에서 판매해야 한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하여 최근에 겪은 얘기를 하고자 하는데 특정 브랜드를 폄하하거나 비난할 목적이 아님을 밝혀 둡니다.


손님맞이를 끝낸 후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커피 한잔을 하는 시간은 매출이 많이 오르기를 은근히 기대를 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시간이다.


띠리링.


행복한 미소도 잠시 낯익은 얼굴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벨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오셨네.”


첫 손님을 기대했지만 늘 밝은 표정의 맥주 제조회사 영업사원이었다.


“네. 지나는 길에 오픈 불이 켜있길래 잠깐 들렀습니다.”


“앉으세요. 좋은 소식 좀 가져오셨나요? 하하하”


“글쎄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고…헤헤헤. “


“무슨 소식이길래?”


영업사원은 진지한 표정으로 방문 목적을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저희가 최근에 새로 개발한 맥주를 시장에 론칭을 하려고 합니다. 유명 배우가 광고도 시작했고요.”


“아… 그거 나도 봤지. 그런데 기존 브랜드가 잘 나가는데 왜 또 신제품을 출시하는지 모르겠네.”


”기존 제품과 차별화된 맥주를 만들어서 점유율을 더 높이려는 전략이죠. 헤헤헤. “


”그런 의도는 잘 알지. 그래서 병맥주는 도매상 영업사원이 나와서 지원을 해준다 해서 이미 판매는 시작했지. “


”아. 그러셨군요. 반응은 좀 어때요? “


”아직은 잘 모르겠어. 찾는 손님도 그리 많지 않고… 우리야 안 팔려도 지원받았으니 손해 볼 건 없지. 하하하. “


”다른 사장님들도 같은 얘기를 하시던데… 쩝. “


영업사원의 표정은 점주들의 반응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병맥주는 이미 시작하셨으니 생맥주를 시작하시는 건 어떠세요?”


“생맥주도 나왔어?”


“네. 최근에 출시가 되어서 몇 군데에서 시장 테스트 중입니다. 물론 테스트를 하신다면 비용도 지원해 드리고 있습니다.”


“오… 그래? 어떤 지원을 해주는데?”


그동안 제조회사에서 여러 번 지원을 받았지만 늘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지원을 받았음에도 판매가 신통치 않으면 그냥 발주를 중단해도 아무런 이의가 없었기에 솔깃해졌다.


“생맥주를 판매하시면 일주일 후에 판매 지원금 40만 원을 드리고 있습니다. “


”오우.지원 금액이 꽤 크네. 하하하. “


”네. 그만큼 회사에서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는 얘기지요. 헤헤헤. “


”바로 시작해야겠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지원금을 받으면 큰 힘이 되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해서 내일 설치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저도 실적이 생기니 좋은 일이죠 고맙습니다 사장님.”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뭐라도 아쉬운 시점에 큰 도움이 되니까…“


손님들의 반응이 좋아져서 매출에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내일 다시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영업사원은 가버렸다.


나는 이미 신제품으로 나온 병맥주를 마셔봤는데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약간 들었다.


하지만 병맥주와 생맥주는 맛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생맥주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이 좋기를 기대하며 영업사원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다음날 문을 열자마자 영업시원과 설치기사가 함께 들어왔다.


“딱 맞춰 오셨네요.”


“영업 시작하시기 전에 설치를 끝내야 사장님이 편하시죠. 헤헤헤.”


설치기사는 기존 생맥주 기계를 떼어내 두 개의 생맥주가 함께 나오는 2 구용 기계를 설치했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탄산가스통에 연결을 끝내고 이용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기존에 판매하시던 브랜드는 그냥 그대로 하시면 되는데 새로 설치하는 것은 사용법이 좀 다릅니다. “


나는 설치기사가 알려주는 사용법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기존 제품이랑 사용법이 완전히 다르네요? 청소하는 것도 그렇고… 은근히 불편한 느낌이 좀 드는데요. 하하하. “


”기존 제품보다 거품이 풍부해서 전용잔이 따로 있고…“


설치기사는 제품의 장점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지만 귀에 별로 들어오지는 않았고 사용법이 다른 것만 눈에 보였다.


“같은 회사 제품을 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게 만들었어요? 점주들이 꽤 불편하다고 느낄 것 같은데…”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직설적으로 물었다.


“솔직히 저희도 그건 잘 모르겠어요. 연구 개발팀이 만든 거라… 제품에 대한 장점만…”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기존 브랜드와 동일한 방식의 제품이면 사용자도 큰 불편함이 없고 제품의 용기도 기존 용기를 그대로 사용하면 원가도 낮춰지고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혹시 회사 내부에서는 아무 불평 없었어요?”


“불평이 없으니 출시되었겠죠. 헤헤헤.”


“출시 전에 시장조사를 전혀 안 한 것 같은데… 하하하.”


설치 기사와 영업사원은 계면쩍은 웃음만 짓고 별 얘기를 하지 않았다.


“사장님. 손님들에게 판매해 보시고 나중에 반응이 어떤지 좀 알려주세요. 반응에 따라 추가 지원여부도 결정될 것 같고. “


”알았어요. 지원을 해줬으니 적극적으로 판매를 해보도록 할게요. “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갔지만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나야 알바 없지만 대기업의 마케팅과 연구소가 한 일이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는 제품을 쳐다보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신제품을 개발해서 판매를 한다고 해도 시장에서의 성공은 별개의 문제이다.


1차 소비자인 점주들의 안목이 제품의 가치를 따라올 수 없거나 기존 제품에 더 친숙한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사용자들이 조금이라도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취급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새로 출시된 신제품 생맥주는 ‘아름다운 쥐덫 이야기‘를 떠오르게 만드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경쟁사들보다 모양도 좋고 쥐도 잘 잡히며 위생적인 더 좋은 쥐덫을 만들어 시장을 휩쓸었지만 결국엔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말았다.


이유를 분석해 보니 고객들은 좋은 쥐덫은 그냥 버리기엔 너무 예쁘고 아까워서 재사용했다.


그런데 죽은 쥐를 꺼내서 세척한 후 다시 사용하는 과정이 불쾌하고 귀찮아졌고 고객들은 점점 구형 쥐덫을 사용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쥐덫을 만드는 회사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혁신적이고 차별화된 제품 개발에 매달렸겠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재질이나 기능차이에 민감하지 않았을 것이다.


쥐덫은 그냥 쥐덫일 뿐 아름답게 포장되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새로 설치한 생맥주 신제품은 취급하기가 힘들어 귀찮아지기 시작했고 두 개의 관으로 연결된 생맥주통은 통행에 방해가 될 정도로 거슬렸고 찾는 손님들도 없어서 그냥 내가 다 마시고 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점주들에게 최소한의 의견을 물어보는 조사를 했다면 과연 지금 같은 제형으로 제품을 만들었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조만간 시장에서 빛을 보기도 전에 퇴출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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