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10살이 된 푸들이고 이름은 호두라고 합니다.
베트남에서 태어난 지 3개월이 된 무렵에 입양되어 10살이 된 지금은 한국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에 저로 인해 마음고생이 많았던 아빠를 위해 이 글을 씁니다.
며칠 전부터 저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움직이는 것도 힘이 들어 거실 바닥에 엎드려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산책도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예전엔 식탁 주변에 앉아 가족들이 먹는 음식을 나눠달라는 제스처도 하곤 했지만 최근엔 그런 행동 자체도 귀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료를 먹는 양도 줄어들기 시작했고 어찌 된 일인지 연가시에 감염이 된 것처럼 물을 마시는 양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먹는 양이 많지 않다 보니 근육도 빠지고 몸무게도 1 키로 이상 빠져서 통통하던 엉덩이 주변이 홀쭉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호두 엉덩이나 아빠 엉덩이나 똑같아졌다며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가족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저를 대해주었고 늘어져있는 나를 달래려 간식도 자주 주었지만 평소보다 그렇게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일반적인 반려견들의 몸 상태를 알리기 위한 표현이었겠지만 평소에도 난 나의 상태를 누군가에게 알리거나 하지는 않았고 그냥 참으면서 버텼습니다.
처음 앞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그랬고 두 번째 슬개골 수술 때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나를 볼 때마다 ‘독한 년’이라는 얘기를 가끔씩 하곤 합니다.
며칠을 비슷한 몸 상태가 계속되어도 잘 참았지만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엄마나 아빠에게 폭풍뽀뽀를 해대며 인사를 하곤 했지만 아침부터 그냥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던 엄마는 나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다급히 아빠를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호두가 이상한 것 같아.”
“왜? 아파 보여?”
“며칠 전부터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데 오늘은 더 안 좋아 보여. 빨리 병원을 가야 할 것 같아. “
”아침에 일어나면 인사를 하는데… 눈도 안 마주치려 하는 걸 보니 이상하긴 하네. “
”그러게. 빨리 병원으로 가야겠어.”
엄마와 아빠는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채비를 서둘렀고 그 시간이 나에겐 꽤 길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평소 다니던 병원에 왔지만 늘 보던 간호사 언니들에게도 인사할 기력이 없어서 엄마 품에만 안겨있었고 몇 가지 검사를 위해 피를 뽑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아빠 차 안에서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점심시간 무렵이라 엄마는 간단한 음식을 사 와서 아빠랑 함께 차 안에서 먹기 시작했지만 오늘따라 음식냄새가 별로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평소엔 나눠달라는 제스처를 했겠지만 오늘은 그냥 늘어져있는 모습에 엄마 아빠는 많이 불안한 느낌을 받으셨던 것 같았습니다.
“여보. 확실히 호두 상태가 안 좋긴 하네. 음식을 먹는데도 달려들지를 않네. 휴.”
“그러게. 확실히 어디가 불편하긴 한 것 같네. 결과는 언제 나온데?”
“10분 후라고 했으니까 지금 가면 되겠네. 다녀올 테니 호두 잘 지켜봐.”
“알았어. 빨리 다녀와.”
평소엔 엄마가 어디 나가면 불안한 모습으로 엄마가 나간 곳을 쳐다보곤 했지만 오늘은 그럴 기력도 없었고 그냥 누워있는 것이 제일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두야. 아프지 말아라. 그래야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그러지. “
아빠는 늘어져있는 나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는지 연신 말을 걸었고 나는 그냥 아무 반응 없이 누워있기만 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 심각한 표정이 되어 엄마가 돌아왔고 아빠는 시동을 켜서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뭐라고 하던가?”
”호두 상태가 너무 안 좋데. 간 수치도 그렇고 빈혈 수치도 그렇고. 초음파를 하더니 종양도 보인다 그러고. 다른 병원으로 빨리 가라고 그러네. “
이 말을 끝내고 엄마는 표정이 안 좋아졌고 아빠는 급하게 차를 몰고 소개해준 큰 병원에 도착했다.
”호두 보호자님 들어오세요. “
”선생님. 상태가 어떤가요? “
”좀 전에 병원에서 얘기를 들으셨겠지만 더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입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입원은 당연하겠지만 상태가 어떤지…“
”지금 소견상으로는 종양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크기가 꽤 커 보이는데 정확한 상태를 알아보려면 CT를 찍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알겠습니다. 바로 진행해 주세요. “
엄마와 아빠는 수의사 선생님과 얘기를 나눈 후 나를 입원시키고 병원을 나가셨습니다.
”호두야. 검사 잘 받고 내일 보자. “
엄마와 아빠는 나를 몇 번 쓰다듬은 후 병원을 나섰지만 나는 기력이 없어서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습니다.
워낙 응급상황이라 판단이 되었는지 수의사 선생님은 바로 CT 및 다른 검사를 진행하였고 눈을 떠보니 넥카라를 한 채 입원실에서 링거를 맞고 있었습니다.
링거를 맞아서인지 몸상태가 많이 나아진 느낌이 들었지만 낯선 환경이라 잠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엄마와 아빠가 오셨는데 몸 상태는 많이 편해졌지만 여전히 불편한 느낌이 계속 들어 반가운 기색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과는 어떤가요?”
“네. 별로 상태가 좋지는 않습니다. 간 주변에 꽤 큰 크기의 종괴가 있고 이미 전이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이는데… 수술을 해서 조직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럼 간암이라는 얘기인가요? “
”네. 그렇습니다. 종괴의 성향에 따라 조금 더 살 수 있을 것 같고… 종괴를 제거하지 않으면 며칠밖에 못 살 것 같습니다. “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엄마와 아빠는 놀랐습니다.
특히 엄마는 바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아빠도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습니다.
”하… 하필이면 암이라니. “
”여보. 그래도 수술은 해야 할 것 같아. “
”그러자고. 수술을 해봐야 악성인지 양성인지 확인할 수 있다니…“
엄마와 아빠는 수술을 결정하셨고 다행히 바로 수술 날짜가 잡혀서 수술이 진행되었습니다.
”호두 보호자분. 수술 중에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어디 멀리 가지 마시고 병원 안에 계세요. “
”네. 알겠습니다. “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수의사가 보여준 잘라낸 종괴의 크기에 엄마와 둘째는 깜짝 놀랐다.
”어머. 이렇게 큰 게 뱃속에 있었다니…“
”수술이 잘 되어서 다행입니다. 며칠 지켜본 후 퇴원하시면 될 것 같고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면 다시 논의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네. 수고하셨습니다. “
나는 며칠간 입원실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간호사 선생님들의 지극 정성을 받아서인지 상태도 많이 호전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족들은 매일 면회를 왔고 그때마다 편한 마음이 들며 기운이 나서 진료를 받으러 온 다른 반려견들을 향해 짓기도 하곤 했습니다.
“여보. 호두가 이제 기운이 좀 나나 봐. 예전처럼 짓기도 하고 그러네. 호호호. “
”그러게. 보기가 좋네. 하하하. “
”호두야. 며칠만 있으면 퇴원하니까 그때까지 잘 버텨야 돼. “
짧은 시간이지만 면회시간은 늘 기다려졌습니다.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더 다정하게 들렸고 엄마의 뽀뽀 회수는 평소보다 서너 배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며칠 후…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예전 그대로의 장난감과 여기저기서 나는 나의 냄새를 맡으니 행복해졌습니다.
아직 수술부위가 아물지 않아서 엄마는 감염을 막기 위해 산책용 유모차도 준비해 두었고 그것을 타고 예전 산책로를 다닐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아지고 보살핌을 받는 느낌이 들어서 정말 행복한 마음이 들게 됩니다.
확실히 몸 상태가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엄마 아빠도 많이 밝아지셨습니다.
“조직 검사 결과 나왔데?”
“어. 지금 가면 될 것 같아. 함께 갈래?”
“아니야. 당신만 다녀와. 혹시라도 안 좋은 얘기 할까 봐 난 얘기 못 듣겠다.”
“알았어.”
엄마는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으로 갔고 아빠는 나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나갔습니다.
”어떤가요? “
”네. 다행히 종괴가 아주 악성은 아닌 걸로 나왔습니다. 다른 장기에 전이도 빠르게 안 되는 것이고요. 항암치료는 안 해도 될 것 같고…“
”다행이긴 하지만 암은 확실한 거네요? “
”네. 그렇습니다. “
“그럼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관리를 잘하면 3년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생사를 넘나들었던 상황과 비교하면 아주 긍정적인 상황이 되어버렸지만 엄마와 아빠는 눈물을 계속 흘리고 있었습니다.
“여보. 그나마 다행이네. 관리 잘하고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검사하면서 지켜보자고. “
”3년이라 했지만 더 오래 살 수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위로하면서 내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다며 연신 쓰다듬고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3년이란 시간이 남았다고 하지만 잘 버티면서 살다 보면 더 오래 엄마와 아빠 곁에 있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빠가 즐겨 듣는 노래 중에 부활의 ”아름다운 사실“이라는 노래가 생각이 납니다.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이 시한부 판정을 받고 작곡한 노래라는데 여전히 현역 활동하면서 아직도 살아있으니 저도 똑같이 될 거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