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인생을 살다가는 평범한 사람들도‘99882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만 앓다가 죽는다)‘를 가장 원하는 삶이라고 한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삶을 이루다 세상과 작별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아픈 상처를 남기고 떠나는 경우가 더 많다 보니 우리들의 삶에서 건강은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수단이 되어버린 지 오래되었다.
반려견 호두와 함께 살면서 늘 희망하는 것이 아프지 않게 살다가 적절한 때에 무지개다리를 건너가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아프지 않고 노환으로 자연스럽게 이별을 할 수만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반려견을 키우거나 키웠던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질환들이 노령견에게도 똑같이 발생하기 때문에 더욱 손이 많이 가고 병원도 자주 다녀야 한다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우리 호두는 다른 푸들에 비해 몸무게는 조금 더 나가고 습진과 피부염으로 약을 먹고는 있지만 항상 밝은 표정으로 생활을 하고 있어서 내부의 장기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며칠 동안 힘이 없어 보였지만 가끔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을 종종 보았기에 심각한 상태일 거라는 상상을 못 했는데 와이프의 촉은 달랐다.
”여보. 빨리 일어나. “
”아직 이른 시간인데? “
”호두가 이상해. 빨리 병원에 가야겠어. “
”상태가 어떤데? “
”컨디션이 좋을 때의 행동을 며칠째 전혀 안 하는 것도 그렇고 눈도 안 마주치고 늘어져있는 것도 그렇고. “
”알았어. “
우리가 베트남에서 들어온 이후 호두를 진료해 주었던 병원은 그리 먼 곳이 아니지만 그날따라 꽤 멀게만 느껴졌다.
보통 차를 타면 창밖을 쳐다보기 위해 곧은 자세로 꼿꼿하게 서있었지만 이번엔 좌석에 누워서 꼼짝 않는 모습이 낯설었다.
몇 가지 검사를 끝낸 후 수의사의 소견을 듣고 나온 와이프의 표정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여보. 빨리 큰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아. 초음파를 했는데 간 주변에 종괴도 보이고 간 수치도 정상이 아니고…“
“종괴라면 암 같은 거네?”
“그런 것 같다고 그러는데… 더 검사해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대. “
와이프는 더 이상 말이 없었고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소개해준 병원에 도착해서 몇 가지 검사를 받고 수의사 선생님을 만나 결과를 들어보니 상태가 좋지 않다는 얘기였고 더 정확한 결과를 얻으려면 CT 촬영을 해보고 판단을 해보자며 며칠 입원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소견이었다.
몇 가지 서류에 서명을 한 후 호두를 입원시키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은 정적만 흘렀고 와이프는 계속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악성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길 바라야지. “
CT 촬영이 끝난 후 결과를 기다리는 모습은 마치 종합검진을 받은 후 의사와의 면담을 기다리며 무슨 병이 있으면 어쩌나 하며 긴장하고 초조해하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와이프는 긴장된 목소리로 수의사 선생님에게 검사결과를 물어보았다.
“선생님, 어떤 상태인가요? “
“예상했던 대로 악성이 의심되고 다른 장기로 전이도 진행된 것 같습니다. 다행인 것은 수술을 할 수 있는 부위에 있어서 일단은 제거를 한 후 조직검사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향후 치료 방향을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악성이면 암이라는 얘기죠?”
“네. 맞습니다.”
“수술을 안 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지금 모든 수치가 안 좋기 때문에 며칠 안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다가올 일이지만 너무 일찍 찾아온 것 같은 생각에 나와 와이프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고 수의사 선생님이 건네준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수술은 바로 가능한가요?”
“하루 정도 경과를 지켜보고 진행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나마 바로 진행이 가능하다니 다행이네요. “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몇 시간 거리가 되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집으로 들어오니 여기저기 호두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며칠 전 군산 여행을 다녀오면서 자작나무로 된 틀에 호두의 모습이 새겨진 사진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보는 순간에 와이프와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고 마치 영정사진이 된 것처럼 느껴져 더욱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여보. 우리 호두 수술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왜? 수술을 해봐야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있다는데…”
”그렇긴 하지만… 이미 전이가 된 상황이고 수술을 해도 얼마 못 산다고 하는데 우리 욕심에 호두를 너무 힘들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 “
”그렇다고 호두를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할 수는 없잖아. “
와이프와 나의 의견은 서로 달랐지만 무엇이든 호두에게 제일 편안한 선택이 되기를 바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긴급 소집된 가족회의를 통해 나는 호두의 수술을 중지하고 편하게 생을 마감하는 쪽으로 주장했고 눈물을 흘리며 가족들도 동의를 해주었지만 눈물은 밤새도록 멈추지 않았다.
병원을 방문하여 마지막 소견을 듣는 자리에서 나는 수의사 선생님에게 전날 정리된 의견을 전달했고 수술을 멈추고 그냥 퇴원하겠다고 했지만 와이프가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에 나도 동의를 해버렸다.
”여보. 당신 말이 다 맞지만 난 수술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어. 안 그러면 내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 “
“그래. 알았어.”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마치고 수술이 진행되었지만 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주인이라는 이름으로 호두를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솔직히 수술 비용도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찌 되었던 이미 결정한 일이니 후회하지 말자는 다짐을 하고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호두 보호자분, 들어오세요.”
“수술은 잘 끝났고 잘라낸 종괴를 보여드릴게요. 이렇게 큰 종괴가 들어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어머. 이렇게 큰 게 들어있었다니. 믿기질 않네요.”
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종괴를 쳐다보던 우리는 깜짝 놀랐고 그것을 보고 나니 수술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악성은 아닌 것 같고 전이도 생각보다 늦게 진행되는 종괴여서 항암치료는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인 것 같아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
“꾸준히 검사받으면서 관리를 하면 3년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알겠습니다.”
“호두 퇴원은 3일 후에 하시면 될 것 같고 그동안 주셨던 간식은 일절 금하시고 처방된 약과 사료만 먹게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면담을 끝내고 회복실에 누워있는 호두를 잠깐 면회를 했지만 마취가 덜 풀렸는지 눈을 감고 있는 모습만 잠깐 쳐다보고 나왔다.
“여보. 수술하기를 잘한 것 같아. 안 그랬으면 우리 평생 호두한테 죄짓고 살뻔했어.”
“그러게. 나도 그런 생각이야. 그냥 죽게 두었다면 평생 후회할 뻔했어.”
와이프의 강한 주장 아니었으면 난 아마 평생을 눈물로 살았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와이프의 간절함이 호두에게도 전달되었는지 강한 의지로 생명 연장을 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원 후 우리의 관심은 호두의 건강관리가 제일 중요해졌고 조금이라도 더 우리와 함께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여보. 이제 안정을 찾았는지 몸무게도 조금씩 늘고 많이 씩씩해진 것 같아서 좋네. 너무 다행이야.”
조금 계면쩍은 표정으로 말을 건네는 나에게 와이프는 웃으며 답했다.
“호두가 또 한 번 내 등에 빨대를 꽃았네. 호호호. 치료비 열심히 벌려면 오늘도 파이팅 하셔.”
“그래야지. 하하하.”
솔직히 퇴원 후 계산서를 보고 많이 놀랐지만 호두도 함께 사는 가족이니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고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살다가 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렵고 힘든 수술을 잘 버텨줘서 고맙다 호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