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장이 되어버린 백페이지 영어논문
칼아트에서 첫 학기가 시작되었다!
학기 초에 학과장님이 높은 천장 바로 밑에 붙은 그림을 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Isn't that a masterpeice? 나는 그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음~~~~ 저것이 왜 마스터피스지? 그냥 만화인데! 학과장이 지금 날 놀리는 것은 아니겠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애니메이팅 수업
아마도 첫 학기 첫 애니메이팅 animating 수업이었을 것이다. 애니메이팅 강사가 갑자기 팔을 옆으로 꺾어 쳐들고 앞을 본채로 옆으로 점핑을 한다.
애니메이팅 수업시간에는 캐릭터의 움직임을 분석하여 주요 포즈를 디자인하고 사잇그림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원리를 배운다. 수업시간에 여러 가지 움직임에 '대해' 말할 것이란 예상은 했다. 그러나 실제로 움직임을 보여 줄 거라곤 상상을 못 했다.
필기하던 내 펜이 갈팡질팡 길을 잃었다. 순식 간에 내 머리가 하얗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저걸 영어로 뭐라고 쓰지? He is jumping? 아닌데 jumping은 앞으로 뛰는 거잖아! 영어로 코드 스위칭은 되었지만, 움직임 묘사영어로 스위치는 안되었다. 결국 그냥 그림으로 그려왔다!
내가 아는 움직임은 이런 것이었다. 신화를 공부했지. 붇다에 관한 신화를 공부했다. 붇다는 잘 안 움직인다. 붇다가 만든 몸 움직임이란 주로 '걷기'와 '앉기'이다:
He walked.
He walked a lot.
He had to walk due to no vehicles and money.
And he was sitting for meditation all the time.
그는 걸었다.
그는 정말 많이 걸었다.
그는 마차도 없고 돈도 없어서 걸어야만 했다.
그는 명상을 하느라 늘 앉아있었다
감정은 어떤가? 아마도 염화미소 같은 '고요히 미소를 띠우기'가 전부가 아니었을까?
He smiled.
그는 미소를 지었다.
불교신화를 읽으면서 내가 접한 가장 과격한 움직임은 도적놈 앙굴리말라 Angulimala의 뛰기일 것이다. 그는 숲 속에 숨어있다가 천천히 걷는 붇다를 잡으려고 최선을 다해 달렸으나 결국 못 잡았다. 붇다의 마술 때문이지롱! 감정도 겪했을 것이다. 열받아 뛰었을 테니:
He was running as fast as he could,
but he couldn't close the gap with the Buddha!
He turned RED!
그는 최선을 다해 뛰었다.
그러나 그는 붇다를 따라 잡을 수 없었다.
그는 진심 열받았다.
나의 영어사정이 이러니, "앞으로 본 상태에서 팔을 쳐들고 옆으로 뛰는" 복잡한 움직임을 어찌 영어로 표현할 수 있으려나?
스토리 보드 수업
학생들이 각각 조그만 종이에 그린 그림을 핀으로 벽에다 꽂는다. 4:3이나 16:9처럼 스크린 비율에 맞춘 작은 직사각형 종이에 그린 그림이다. 자기 스토리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몇 장인지는 무제한이다.
그런데 그림에 캡션은 없다. 대사를 직접 적지 않는다. 대신 먼저 피칭 pitching 이란 걸 해야 한다. 피칭은 사람들 앞에서 그림을 보고 직접 말로 연출을 하는 프레젠테이션이다. 맞다! 연출을 해야 한다. 목소리에 감정과 톤이 들어가야 한다. 몸짓도 가능하다. 옛날 고려짝 월트 디즈니씨가 직접 고안해 낸 방법이다.
물론 우리는 영어로 해야 한다! 한 한국인 학생이 열심히 피칭을 한다. 학생들과 강사는 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열심히 듣는다. 동서양의 인종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무리들이다. 이 친구는 미국에 일찍 와서 영어가 꽤 유창한 친구였다. 도둑이 도둑질하는 이야기다:
A theif climbed over the wall.
He tried to get into the house.
By mistake, he broke the window.
도둑눔이 담이 타 넘었다
집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실수로 창문이 깨졌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갑자기 아주 익숙한 한국말이 들린다: 쨍그랑 와장창! 우리는 동시에 박장대소를 하였다.
뭐, 나도 상황이 크게 다를 것 없었다.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스토리 보드로 만드는 숙제가 있었다. 긴 복도에서 리오가 세명의 에이전트가 쏴서 날아오는 총알을 손가락 하나로 제어하는 샷이 있다. 총알이 날아오다가 리오 바로 앞에서 "끽하고 선다. 공중에서!" 이걸 그렸다. (그런데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다음과 같이 피칭을 했어야 마땅했을 것이다:
The bullets are jetting toward Rio
and suddenly stop in the air right in front of Rio.
총알이 리오를 행해 진직해 날아와
리오 바로 앞 공중에서 멈췄다
그러나 그때는 "피유융 앤드 스탑 히어!"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던 최선이었다. 뭐 그래도 알아들었으니까. ^^ 하지만 이런 영어로는 이 분야에서 기획자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또 한번 웃음! ^^
디자인수업:
디자인 기초를 잡을 때 사전을 쓴다는 말은 들었다. 디자인 강사가 오래되고 낡아빠진 사전을 덜레덜레 들고 왔다. 일종의 게임을 했다. 한 사람씩 아무 데다 펼쳐서 아무 단어가 하나 고른다. 그것을 공개한다. 아무도 못 맞추면 이기는 거다.
내 차례가 왔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단어를 골랐다. 짧은 단어였다. 발음을 못해서 아이들에게 스펠링을 말해주었다. 이구동성으로 다 맞추었다. 누구나 다 아는 무슨 새란다. 헐! 케이오 패다!
백인 학생이 단어 하나를 골랐다. 내가 맞췄다. androcentrism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 종류의 단어였다. 학문의 장에서나 쓸만한 용어였다. 나 때문에 그 친구가 졌다. 그 친구는 그 뒤로 나를 매우 싫어했다. 아티스트들은 매우 감정적이다. ^^
누가 비정상인가? 나다. 내 영어가 고공을 하는 거다. 한국어를 배운 미국아이가 '종달새'는 모르면서 '정당성'이니, '하야'니, '계엄령'이니 하는 단어를 아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면 언어가 무너진다!
비상이었다! 비상! 학기 초부터 내 영어에 비상이 걸렸다. 영어가 문제가 되리라고는 크게 생각을 안 했다. 미국 나온 지 이미 한해 두해도 아니었다. 게다가 대학원에서 신화로 백 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영어로 썼다. 무엇이 문제가 된단 말인가?
기본적으로 만화니까, 일상영어를 벗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아주 심각한 착각이었다. 착각정도가 아니라 오류였다.
전공이 바뀐 것이다. 인문학에서 대중예술 분야로! 당연히 언어도 바뀐다. 한국어로도 인문학 강의 시간과 애니메이션 강의시간에 듣는 한국어는 아예 다르다!
관객이 바뀐 것이다: 지적인 사람들에서 대중예술을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로! 영어 쓰는 사람들의 문화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동양신화로는 어림도 없었다.
나에게 칼아트는 앨리스 원더랜드였다. 모든 가치가 뒤집어진 곳이었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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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