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근교에서 만난 밤비
섬에 내리는 느낌과 대륙에 내리는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 섬은, 특히 하와이 섬 같은 열대섬은, 기운은 활기차지만 약 1~2센티 떠있는 기분이다. 대륙은 땅바닥이 내 몸을 지탱해 주고 끌어안아주는 안정감이 팍 든다. 이것 때문에 LA에 공항에 내리는 것이다. 절로 안도의 숨이 쉬어진다는.
친구는 LA다운타운 근처 조용한 빌라촌에 살고 있었다. 친구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복도 많지! 한국에서 나서 데려온 첫째는 4살이 되어가고, 이민 오자마자 생산한 둘째는 2살 정도 되었다. 친구에게는 걱정이 생겼다. 첫째가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학군에 관심이 많았다. 살고 있는 지역의 학군이 별로였던 것 같다. 집을 옮길 계획을 하고 있었다.
미국본토에서 집을 보러 다니는 일은 큰 일이다. 땅이 크니 이동거리도 멀다. 게다가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일이 쉽지는 않다. 직장에 나간 남편대신 내가 불려 온 것도 같았다. ^^ 가장 먼 곳의 집을 같이 보러 가기로 했다. LA에서 북쪽으로 5번 도로를 타고 한 시간가량 올라가면 있는 조그만 타운에 있는 집이다.
우리는 조그만 애들을 차 뒷좌석에 꽁꽁 안전하게 묶어놓고 떠났다. 나는 왠지 신이 났다. 대륙 위에 펼쳐진 16차선의 넓은 도로를 맘껏 달려본지가 언제였던가? 친구는 시원하게 뻥 뚫린 5번 도로 위를 날아갈 듯 달려주었다. 그날은 캘리포니아의 전형적인 밝고 맑은 날이었다. 그래서 더욱 신나는 드라이브였다.
전에 LA근처를 관광하던 어떤 이가 이런 소감을 남겼다고 한다. "눈떠보면 도로 위, 또 떠보면 도로 위!" 대륙의 관광은 이러하다. 워낙 이동거리가 길다 보니 차 타고 다닌 기억밖에 안 남는다는 말이 맞긴 하다. 그래도 똑같은 바다를 보는 것보다는 낫다. 넓은 농장도 보이고, 멀리 산도 보이고, 산에 능선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서 좋다.
약 한 시간을 달려 타운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재개발하는 작은 도시였다. 깨끗했다. 거리는 조용했다. LA보다 훨씬 더운 바람이 부는 곳이었다. 가끔 백인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더운 바람을 맞으며 걸어 다닐 동네는 아니다. 분위기로 봐서는 동양인은 거의 없는 동네였다. 그때는 그랬다. 산 중턱에 걸린 동네라서 타운 내 길이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한 정도가 큰 동네였다. 지도를 보고 겨우겨우 볼 집을 찾아갔다.
제법 높은 산 뒤쪽을 수직으로 깎아 아래에 터를 낸 곳에 집이 있었다. 친구 아이들과 빈집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꼼꼼히 구경을 했다. 떠날 시간이 되자 우리는 왠지 아쉬웠다. 여기까지 와서 이것만 보고 가나 싶은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친구가 이런 제안을 했다. "예, 이 타운 하우스를 돌아 올라가면 예술학교가 하나 있다더라. 거기 가볼까?" 나는 아이들과 한 마음이 되어 YES, YES, YES를 외쳤다. 정말 차를 타자마자 한끈에 산 밑에 있는 집에서 산 위로 한 바퀴 삥 돌아 올라가자 예술학교 건물 정문 주차장에 도착했다.
건물은 나지막했다. 크지 않은 캠퍼스에는 나지막한 건물이 하나 있었다. 건물 안에는 뭔가 재미있는 볼거리가 전시되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모두 뛰어내렸다. 친구는 작은 애를 안고 나는 큰애와 함께 급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름방학이었다. 건물 안은 정적감마저 돌정도로 조용했다. 그러나 뭔가 볼 것이 있다는 기대감은 누그러들지 않았다. 좀 넓은 건물 입구의 복도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거기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단 하나였다. 와우! 소리가 절로 났다. 그것은 홀 the hall이었다. 길이와 폭도 상당히 되고 천장도 엄청 높은 홀이 하나 '덩' 하고 우리 눈에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홀을 바치고 있는 벽에도 기둥에도 그림쪼가리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우리의 기대는 순식간에 바닥을 쳤다. 예술학교 맞나? 혹시 작품이 있는 방이 있나 하고 주위를 잘 둘러보았다. 홀 구석구석에 보였던 문은 다 잠겨있는 모양새였다. 실망이 컸다.
실망도 잠시 순간 홀에서 신기한 기운이 느껴졌다. 자유! 거기서는 아무거나 해도 다 괜찮을 것 같은 자유로운 기운이었다. 친구도 아이들도 그것을 느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춤을 추고 뛰어다니며 고함을 지르고 놀기 시작했다. 아하하하... 한참을 그렇게 놀다가 둘째 아이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데도 경비원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다시 건물 입구로 걸어 나가는데 우리 눈을 동시에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왼쪽 구석에 열려있던 작은 문! 불까지 켜져 있었다. 우리는 그 문으로 다 빨려 들어갔다. 짧은 복도가 있었고, 한쪽 유리박스 속에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두 유리에 코을 박고 사진을 보기 시작했다. 오래된 흑백 사진이었다. 실로 놀라운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 속에는
규모가 꽤 되는 스튜디오에,
정장을 한 예술가들이 스케치북과 연필을 들고 큰 원을 만들며 의자에 뺑 둘러앉아 있었고,
그리고
그 원 안에서 실제로 걸어 다니는 사슴!
진짜 살아 움직이는 사슴!
순간이동을 했다. 1989년 한국! 디즈니 애니메이션 [리틀 멀메이드 Little Mermaid]를 보고 나와서 종교적 체험을 했던 순간으로 돌아갔다. 그것을 보고, 질문을 했었다. 어떻게 에어리얼 Arial 같은 만화 캐릭터가 생기 넘치는 에너지를 뿜어낼까? 진짜 사람 같잖아. 대학원 불교강의가 주지 못하는 삶의 정수를 직접 느끼게 해 주잖아. 어떻게?
다시 캘리포니아 촌동네 있는 예술학교로 순간이동! 이 두 순간이 연결되었다. 그 질문에 답이 주어졌다. 이렇게 제작을 하니 저 사실적인 에너지가 만화에도 담기지! 이것은 지적인 번개가 아니었다.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내 안에 아주 오랜동안 숨어있던 뭔가가 자극을 받고 올라오는 경험이었다.
유리상자 끝에 왔을 때 또 하나의 문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문을 열었다. 세네 개의 사무실이 있었다. 그중 입학처 Admission Office라고 쓰인 문만 열려있었다. 마치 다음 단계로 들어가듯 아무 생각 없이 그 문으로 들어갔다. 거기에 사람이 있었다. 드디어 사람을 만났다! 옛날에 나에게 영어 문을 열어준 제프 같은 친구였다.
소파를 권한다. 나는 꿈을 꾸듯이 앉아 앞뒤 설명 없이 무조건 물었다.
이 학교에 들어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How can I apply for this school?
라이프 드로잉을 제출해야 해요.
You need to submit LIFE DRAWING.
라이프 드로잉이 뭐예요?
What is LIFE DRAWING?
그는 한심하다는 듯이 무례할 정도로 긴 한숨을 쉬더니 That! 하면서 벽에 걸린 그림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벌거벗은 사람이 빠른 선으로 동감 있게 그려진 그림이 3개가 걸려있었다. 멋있었다! 내 영어단어 상자에 있는 예술 관계 단어로는 크로키였다.
그 친구가 보인 캘리포니안의 무례한 오만함 Cockiness에도 아랑 곳 없이 몇 점이요? How many?
그는 약 20개 정도. He said, "about 20".
이 정도 정보면 충분했다. 나는 한두 가지 더 질문을 하고 꿈꾸듯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날의 드라이브는 여전히 환상 같다. 가끔씩 그날을 생각하면 눈물도 난다. 이렇게 학문 이후 다음 삶의 방향이 정해졌다.
그 학교의 이름도 나중에 알았다. 유명한 디즈니가 세운 칼아트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였다. 당시 한국에서 뜨는 애니메이션 학교였다. 들어가기 힘든 곳이라고 알려졌단다. 한국에서 평생 그림을 그려도 세네 번을 빠꾸 당한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런데 모든 제반 상황들이 이곳을 갈 수 있게 움직여주었다. 운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 같다. 나는 이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약 2년 동안 주 5~6일을 LIFE DRAWING을 했다! 그리고 예술적 배경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2년 만에 입학을 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콘텐츠아트 진에게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