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리운 대륙감이 이끈 운명
하와이 섬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여기 있으면서 나를 일 년에 혹은 길면 이년에 한 번이라도 대륙으로 내몰았던 기운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대륙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것은 물 위에 떠있는 섬에서만 발견할 수 있었던 독특한 그리움이었다.
하와이 섬은 지구전체 물의 반정도를 차지하는 태평양 한가운데 떠있다. 섬을 뺑둘러펼쳐 있는 해변은 섬의 치마 끝자락이다. 거기 서서 바다를 보면 끝이 없을 것 같은 무경계의 자유로움에 취하여 가슴이 뻥뻥 터질 것 같다. 열대가 풍부하게 담긴 열기와 바다공기가 물씬한 바람은 병으로 찌든 몸의 구석구석을 다 채워줄 것 같은 생명력도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섬이 고립감을 준다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갇힌 것 같은 답답한 기분까지 준다면 더욱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외부사람이 섬에 와서 체류하다 보면 2년째즈음에 이런 희한한 느낌에 사로잡힐 수 있다. 이때 고립감과 답답함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섬에서 살지 못한다. 반드시 떠난다. 아니면 미친다. 미칠까 봐 도망쳐 나온 사람도 있다.
나도 그랬다. 낭만의 섬, 열대의 섬에 가서 사니 얼마나 좋을까? 처음에만 그렇다. 이런 기대와 달리 복병이 있었다. 낭만도, 열대도, 일 년이면 맛이 다 떨어진다. 오른쪽으로 돌든, 왼쪽으로 돌든, 버스로만 돌아도 2시간+ 알파면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는 오하우 섬이다. 돌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바다다. 어딜 봐도 바다다. 어딜 봐도 똑같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 뒤로 바다가 이어질 것 같지 않다. 거기가 끝인 것 같다. 어항벽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마치 영화 트루만쇼에 나오는 거대한 스튜디오 같다.
더 무서워지는 것이 있다. 와이키키에서 바다를 등지고 서서 섬 중심을 바라보면 거대한 골짜기가 있다. 그 골짜기는 U자 모양의 코올라우 Ko'olau 산등성을 거대한 벽처럼 방패 삼아 형성된 아주 오래되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열대의 골짜기이다. 이름은 마노아 Manoa! 이곳 중턱에 하와이 대학도 자리 잡고 있다.
엄청나게 높은 이 산등성이 꼭대기 올라가서 바다를 보면 희한한 현상이 보인다. 섬이 물 표면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 마치 물 위에 무거운 것을 떨어뜨릴 때 슬로우 모션으로 보면, 물 표면의 장력에 무거운 물체가 잠시 걸려있는 듯한 모양과 비슷하다. 섬의 땅표면이 바다와 일직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착각일 뿐이다. 중력과 장력의 밀당이 없으면 섬은 물속으로 가라앉을 것 같다. 어디 도망갈 구석도 없다. 그냥 섬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 고립감에 답답함에 불안감까지!
그런데 묘하게도 섬이 주는 공간적 불안감과 함께 상대적으로 느꼈던 것이 있다. 그것이 대륙감의 부재이다. 한반도는 말 그대로 반도의 나라이다. 동남서만 바다에 열려있다. 섬이 아니다. 바다에 붕 떠있는 느낌이 있을 수 없다. 우리 땅 북쪽이 대륙에 연결되어 있는 탓이다. 그것도 그냥 대륙이 아니다. 중국을 가로지르는 실크로드라는 대장정의 길과 러시아를 횡단하는 시베리아의 허허벌판이 서쪽 끝에 가서는 유럽까지 미치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대륙이다. 이런 대륙을 머리 위에 지고 한평생을 살면서 대륙감이라는 것에 나도 모르게 젖어있었다. 그것이 아무리 동쪽 끝에 살짝 빠져나온 반도국이라도. 설사 정치적으로 모든 것이 끊긴 북쪽이라도. 늘 마음 저 한켠에 대륙의 끝이라는 공간적 느낌은 모종의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이런 공간 안정감의 존재가 섬 한가운데서 부재하니 비로소 그리움으로 불거져나 온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잠시 섬을 떠나갔다 와야 한다. 한반도로 향하는 서쪽은 10시간이 걸리니 너무 멀다. 미대륙 서부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동쪽은 5시간 정도니 참을만하다. 다행히 그곳에 이민 와서 사는 친구가 있었다. 논문이 끝나가는 그 해 꽁꽁히 모아두었던 비행기값을 털어서 친구에게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해 대륙이 그리워했던 섬 일탈이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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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