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은 미국산 예술이었다!
I am an artist, not an art student!
나는 예술가다. 예술과 학생이 아니다!
애니메이팅 강사가 첫 시간에 했던 말이다. 그림을 그릴 때 이런 마음으로 그리라고 했다. 예술가와 예술을 배우는 학생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차이가 있다. 예술가는 처음부터 작품의 완성을 추구한다. 예술과 학생은 완성보다는 과정에 가치를 둔다. 실험정신을 발휘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 실수? 도 할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다. 칼아트 애니메이션 과에서는 이런 예술과 학생을 크게 지지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여기서는 이런 예술과 학생에게 일침을 가하는 글귀가 붙어있다.
You don't try. You Do it!
단지 시도하지 말고 ______ 하세요!
You Do it! 내가 이해한 것은 이러하다: 괜히 이런저런 아이디어 생긴다고 이것저것 해보는데 시간 보내지 말고, 작품 하나에 진심으로 집중해서 온 힘을 다해서 하세욧! 이것이 예술인이라는 것이다.
처음 이 글귀를 보았을 때 나는 비판적이었다. 어떻게 과정에 가치를 두지 않고 완성을 기대할 수 있지? 특히 과정을 즐기는 나에게는 반발을 일으키는 글귀였다. 그러나 첫해 작은 작품을 하나 해보고 생각이 싹 바뀌었다. 처음부터 완성을 추구하고 예술인의 마음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과정의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 중요해서였다.
예를 들어 머리를 쳐들며 감동받은 눈으로 큰 숨 한번 쉬고 눈 한두 번 깜박거리는 움직임을 만드는데 5~60장 이상을 그려야 한다. 그 움직임을 연결해 주는 주요 지점에는 키 드로잉이라는 것이 있다. 이 키 드로잉 가운데 하나라도 잘못되면 앞뒤가 연결되어 다 다시 그릴 수밖에 없다. 끔찍했다!
2D수제 애니메이션은 사실 엄청난 노동력을 동반한 고난도 작업이었다. 움직임을 분석하는 일에 별 것이 다 동원이 된다. 물리학은 기본! 역학, 생물학, 해부학 등등 난생처음 해 보는 작업 하다가 안 죽은 것이 다행이었다. 게다가 1초에 24장의 그림이 필요하다. 한 번은 잠에서 깨자마자 책상 위 그림판에 걸린 캐릭터가 여태 앉아있는 것을 보면서, "아니 제는 도대체 언제 일어나는 거냐" 하며 나도 모르게 짜증을 폭파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마 혼자 방에서 괴성을 지른 것으로 기억한다. ^^
이런 작업은 예술가의 든든한 정체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필요하다. 진심 작심을 하고 작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도중 하차하기 딱 좋다. 아직 어린 예술가는 건전하고 든든한 정체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근거 없는 이고에라도 기대야 한다. 나는 예술가다! 를 외치면서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60초짜리 작품이라도 그러하다. 60초면 기본만 1440장의 그림이 필요하다. 작품 시작에 신중해졌다. 절대 우습게 볼 작업이 아니었다.
누가 애니메이션을 예술이라고 하지 않나? 혼이 없는 상업예술이라고? 아니다. 혼이 털려도 골백번도 더 털린다. 애니메이션은 예술작품 맞다.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전 과정은 뼛 속까지 예술가가 해야 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런 지옥훈련을 통해 동시에 바뀐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대중예술에 대한 '나'의 인식이다. 그때까지 내가 대중예술의 가치를 비하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한국사회에서 대중예술의 가치를 폄하하는 유교를 비판해 왔다. 한국유교의 위계적 사회에서 '글'은 사대부의 문화로 제일 위에 놓고, '그림'은 쟁이의 문화로 제일 바닥에 두어왔다. 나 역시 이런 문화적 선입견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림보다 글이 중요했던 부모님은 미대를 반대하셨다. 하지만 결국 학문의 장에서도 가장 시각적인 글인 신화를 연구했고, 급기야 늦은 나이에 칼아트까지 왔다.
하지만 나도 글전통 속에만 있어왔다. 글 속에서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림에 관하여 두 가지를 간과했다. 우선,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사용하는 영어를 미쳐 생각을 못했다. 이건 시간 지나면서 해결되었다. 둘째, 그림에 담을 내용이 일상이라서 영어관객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나는 특히 두 번째 사실을 깨닫고 미국문화에 관심이 커졌다.
미국은 역사가 짧다. 같은 서양이라도 역사가 긴 유럽문화는 확연히 다르다. 미국문화는 슌수아트보다는 대중문화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 가운데 애니메이션은 미국에서 기원한 대중문화이다. 나는 그 발생지에 와 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모른다. 아주 표면적인 것밖에 모른다. 이들 문화를 어디부터 이해해 들어가야 하는가?
그러다가 찾은 것이 동화책! 동화책이었다. 애니메이션이 단지 어린이를 위한 대중문화여서가 아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용이 아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미국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어떤 감성을 키워왔는지에 있었다. 무엇을 보고 웃나? 무엇을 보고 감동하나? 무엇을 보고 슬퍼하나? 이것이 이들 문화의 가장 저변이 아닐까!
동네에 있던 반즈엔 노블스 책방으로 갔다. 아이들 책 코너에 갔다. 책을 안 읽을 수 없게 꾸며 놓았다. 책을 다 뒤져봐도 글자 하나 없는 그림책부터 시작하여 레벨을 올려가며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의 독서는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미국에서 유행하는 동화책들이 영국 것과 겹치는 것이 있었다. 서서히 영어문화의 발상지인 영국으로 옮겨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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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