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밑에 있어서 간과했던 영어의 가장 큰 특징
한국영어는 바뀌어왔다. 독해영어에서 실용영어로, 문법에서 말하기로, 시험영어에서 원어민영어로까지 영어 배우는 동기가 근본적으로 여러 차례 바뀌어왔다. 그런데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영어 배우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하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것은 영어규칙을 학습하는 것이었다.
한국인은 처음부터 영어규칙을 통해 영어를 배우려는 의지가 컸다. 607080년대 한국영어는 독해영어로 시작했다. 독해영어의 중심에는 문법이 있었다. 문법을 규칙으로 삼아 영문을 분석해서 한국어 뜻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문법규칙은 송성문 님의 [성문종합영어]에 거의 독보적으로 집약되었다.
책 전체가 단어에 관한 문법적 규칙에 관한 것이다. 특히 단어의 형태에 주목하고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예를 들어 보면, 제1장에 나오는 명사의 경우, 명사의 단수형태와 복수형태, 불규칙적인 형태, 예외적인 형태까지 일일이 하나씩 다 나열하고 있다. 이 명사의 형태를 중심으로 기능을 암기하는 것이 주된 학습이었다. 명사형태에 규칙과 예외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사에 모두 적용시킬 수 있고, 이것으로 문장에 나온 명사를 모두 분석할 수 있다고 믿었다.
90년대 이후 영어회화가 주류를 이루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문법을 강하게 비판은 했지만, 규칙을 찾는 데는 여전히 집념이 강했다. 그 중심에는 회화에 당장 필요한 단어의 발음과 철자의 규칙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 초중반에 영미권에서 파닉스가 먼저 들어와 한국에서 성행한 것은 크게 놀랄 일도 아니다. 파닉스는 영어발음과 철자에 찾을 수 있는 모든 가능한 규칙을 바탕으로 배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어발음에 그래도 규칙이 있다는 전제 아래 고안된 방법이다.
그런 뒤 1990년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가서야 영미권의 사이트 워드 Sight Words 방법이 서서히 들어왔다. 이것은 영어단어 발음과 철자를 시각적 직관으로 익히는 방법이다. 단어의 발음과 철자조합의 기원이 불분명하여 규칙을 찾을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사이트 워드는 특히 파닉스 규칙으로 해결되지 않는 예외를 해결하는데 썼다. 두 방법이 전혀 상반되는 이유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영어의 규칙을 찾는 우리의 촉수는 탐색을 멈추지 않았다. 회화를 잘하려면 문장구사에 규칙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한동안 문장패턴에서 문장의 규칙을 찾았고, 최근에 들어 문장의 어순에서 규칙을 찾았다. 특히 코비드 이후 영어어순은 집중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어순은 말을 아웃풋 할 때 단어를 순서대로 끼어넣는 틀이 되었다.
https://youtu.be/dChiYEk7Lxc?si=8fqI-SVYg5ZcNtz3
영어규칙에 대한 한국인의 집념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영어규칙이 영어 배우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일단 규칙을 알고, 규칙에 맞춰서 단어를 끼어넣으면, 문장이 된다."
규칙, 단어, 문장 -- 이 세 가지에 대한 지식을 쌓고, 암기를 하는 것이 한국에서 통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영어학습방법이다. 그것이 독해든, 회화든, 심지어 원어민 영어까지 모두 같은 과정으로 배운다. 단지 '배운다'가 아니라 '배워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이 방법에서만 ‘안심'하는 경향이 크다. 이것을 벗어나면, 예를 들어 그냥 듣기나 영어습득론 같은 것에 대해서는 크게 작게 반발해 왔다. 물론 각자 소신 있는 선택을 하지만 한국인 나름대로의 방법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전반적인 지론이다.
다 좋다. 국내의 모든 영어학습법은 각각 다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잘잘못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 과연 영어 자체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규칙성이 큰 언어일까? 규칙성이 큰 언어라면 규칙대로 학습하여 효과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수만 가지 다이어트 방법이 소개되어도 효과가 신통치 않듯이 규칙근거 영어 학습법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영어의 '규칙성'! 이것에 대한 논의는 생소하다. 우리는 그동안 문자체계(글자), 발음(음운), 단어(어휘), 어순(통사), 의미, 화용, 문법, 언어사회적인 역할, 유형학 등등 영어의 구석구석을 다 뒤져서 분석해 왔지만 규칙성을 따로 고려해 본 적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지금 한 번은 보아야 한다. 이런 영어의 규칙성을 보려면,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영어에서 한발 떨어져 뒤로 나가서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바로 등잔 밑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언어에 규칙 있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시작하여 80대년를 거쳐 현재까지 연구가 활발한 언어습득론 Language Acquisition 분야에서는 언어의 규칙성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연구에 따르면, 세상에서 규칙성이 낮은 언어 중 하나가 영어라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면 한국어는 규칙성이 높은 언어일까? 그렇다. 규칙성이 매우 높은 언어이다. 100%을 기준으로 할 때 한국어의 언어적인 규칙성은 90% 정도 된다. 이런 한국어에 비하여 영어는 상대적으로 규칙성이 매우 낮다. 규칙성은 자기 모국어의 규칙성에 따라서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유럽인들은, 영어와 같은 어족에 속하는 자기 언어에 비교해 볼 때, 영어의 규칙성을 60% 정도라고 느낀다고 한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한국인에게는 영어의 규칙성은 45% 정도로 낮게 느껴진다. 그만큼 한국어 규칙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인에게 특히 영어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언어의 규칙성의 정도차이가 크다는 데 있다. 언어적으로도 이질적이고, 문화적으로도 이질적인데, 영어란 언어 자체의 규칙성마저도 낮다는 것이다. 우리가 규칙으로 배우려는 영어의 가장 큰 특징이 사실은 규칙이 헐거운 언어였던 것이다. 사실 우리도 늘 영어에는 규칙보다 예외가 많다고 불편을 느껴왔다. 그런데 바로 불편함 자체가 걸림돌이 되고 있던 것이다. 그랬으니 영어가 어려웠던 것은 당연했다. 특히 한국인에게 진입장벽이 어려운 언어일 수밖에 없다. 영어기초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일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규칙성이 낮은 영어를 어떻게 해 왔는가? 규칙성이 낮은 영어에서 굳이 규칙을 찾아내려고 애를 써 온 모양이 되었다. 독해문법에서 파닉스, 영어패턴에에서 영어어순까지 참 끈질기게 애를 써왔다. 영어의 낮은 규칙성을 인정하고 보면, 영어규칙에 대한 신화는 두 가지 점에서 흔들릴 수 있다.
하나, 우리가 찾은 영어규칙은 원래 영어규칙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 원어민들이 한국 고등학교에는 K문법라는 것이 있다고 지적을 했을 정도이다. (유튜브 https://youtu.be/xR8yHu2u-h0?si=01Q0WkQh9mmWck2S)
둘, 우리가 불편해하는 예외라는 것은 우리가 만든 영어규칙 구조 내의 예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영어 원어민 자신은 예외라고 크게 인식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영어규칙에 집착해 왔을까? 실제로 우리가 찾은 영어규칙에 대한 회의도 많았고, 비판도 많이 해왔다. 그것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집착'이라고 진단을 내릴 만큼 규칙에 강하게 매달려 있다.
이것은 언어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이해가 백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란 언어의 규칙성이 강해서이다. 영어도 한국어처럼 당연히 규칙이 있을 것이라는 태도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통용되는 영어규칙은 전이 규칙일 가능성이 크다. ‘전이'의 정도가 심해서 한국어가 투사된 상태일 수도 있다.
마치 성격이 아주 다른 연인을 사귈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화가 나면 혼자 있어야 하는 남자에게 새로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하자. 남자는 여자가 화가 났을 때 혼자 두었다. 자기처럼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해서였다. 자신의 입장이 여자 친구에게 투사가 된 경우이다. 사실 여자는 화가 나면 함께 말할 사람이 필요한 유형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자존심이 상해서 말을 못 한다. 만약 남자가 이것을 모르고 계속 여자 친구를 혼자 두면 어떻게 될까? 소통이 안된다. 관계가 깨질 가능성도 있다.
물론 영어는 여자 친구가 아니다. 삐지거나 서운해하는 감정을 쌓지 않는다. 영어는 늘 무심하게 거기에 있다. 변함없이. 우리만 바뀌면 된다. 다행이다.
영어의 낮은 규칙성, 한국어 바로 코 밑에 한국어와 밀착되어 있어서 간과했던 특징이 아니었을까? 그러면 한국인이 규칙성이 낮은 영어를 어떻게 배워야 할까? 고무적인 질문이다. 우선, 지나치게 규칙을 찾아서 적용시키는 습관을 잠시 내려놓자. 그것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는 태도를 가져보자. 처음에는 지금까지 쌓아 온 믿음이 흔들리는 것이 싫을 수 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볼 시간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다음으로, 영어의 규칙성이 낮은 이유를 분석해 보자. 그들의 신발을 신고 그들의 '다름'을 이해해 보는 것이다. 내 입장을 옆에 잠시 치워두고, (버릴 필요는 전혀 없으니 걱정 말고) 한번 '보는' 것이다. 가능하면 그냥 보지만 말고 '느껴보면' 더 좋다. 규칙성이 강한 우리가 느끼는 것과 분명 다를 것이다. 규칙성이 낮은 영어가 모국어인 원어민들은 언어에 대해 어떤 접근을 하는가?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 영어의 규칙성이 낮다고 규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있는 그 규칙이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과연 그것이 지렛대가 될 수 있을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늦지 않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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