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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텐츠아트 진 Sep 30. 2024

영어사는 15세기를 주목해야 한다

영어의 규칙성이 낮은 이유 첫 번째


왜 영어는 규칙성이 낮을까? 왜 한국어는 규칙성이 강할까? 여기에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영어역사를 다 알 필요는 없지만, 한국어 역사와 비교해서 다른 점을 인식할 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15세기! 

15세기를 기점으로 시작한다. 이때 영어와 한글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이 일어난다. 15세기는 영어의 알파벳이 완성된 때이고, 한글이 시작한 때이다.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영어의 알파벳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15세기가 돼서야 한글이 창제되었다. 재밌는 조우이다.


현재 영어 알파벳은 500년 경 영국에서 시작된 후 1000년이 지난 1500년 이후에 완성되었으니까 그 뒤로 약 600년 동안 사용된 것이고, 한국어는 한민족의 기원으로 추정되는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소리로만 존재하다가 기원 후 1500년 경에 와서야 자기 문자가 생긴 것이니까 한글도 600여 년 역사를 가졌으나, 국가공식표기가 된 것은 1894년이니까 한글이 실제로 우리 글자로 사용된 것은 130년이다.



누가 처음 영어 알파벳을 만들었는가?

영어 알파벳은 영국의 조상 앵글로 색슨이 만든 것이 아니다. 빌려다 쓴 것이다. 5세기에 로마인들의 라틴 알파벳26개와 고대 게르만의 룬 알파벳 3개를 빌려서 고대영어 알파벳 29개로 썼다. 이때 "오늘부터 이 알파벳을 우리나라의 문자로 쓸 것이다"라고 공표했던 앵글로 색슨 왕은 없었다. 또한 국어인 영어를 관리하는 공기관이 공표한 일도 없었다. 이런 기관은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 


엉뚱하게도 처음으로 고대영어 알파벳을 쓴 사람들은 로마에서 온 가톨릭 선교 수도승이었다. 유명한 수도승은 캔터베리의 성 어거스틴 St. Augustine of Canterbury, 6C이었다. 이들이 앵글로 색슨들을 선교하기 위하여 라틴어 성경을 고대영어로 번역할 때였다고 한다. 그 뒤로 베데 Bede 같은 앵글로 색슨 수도승들도 합세하였다. 이들 수도승 뒤를 이어 수도원이나 교회 그리고 궁정에서 일하는 서기관이나 학자들이 법이나 법조항, 그리고 주요 서류들을 기록할 때 고대영어 알파벳을 썼다. 그것도 아직 종이가 없어서 비싼 양피지 위에 썼다. 한마디로 고대 영어 알파벳은 글을 쓸 줄 아는 지극히 소수의 기득권자들이 필요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코 백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영국의 앵글로 색슨 정부는 백성들의 언어 사정에 별반 관심이 없었다. 대부분의 백성들이 쓰는 고대영어는 문맹의 상태로 쓰는 구어였다. 기득권자들의 문어와 관계없이 따로 진화했다. 따라서 영어는 처음부터 유기체적으로 제멋대로 진화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규칙성이 있을 수 있을까?


반면 한글은 어떠한가? 영어와는 정반대이다. 세종대왕이라는 권력자가 그것도 소수의 지지만 받으며 거의 혼자서 3년의 기획과 제작과정을 거친 후 만들어진 글자이다. 왕이 일부러 앉아서 '백성'을 위해 작정하고 만들었다. 백성들 사이에서 소리로만 진화해 온 한국말에 일부러 문자를 입혀주기 위해 만든 글자이다. 어찌 한글에 규칙성이 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배경에서 규칙성이 없는 문자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누가 현재의 영어 알파벳을 완성시켰나?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영어 알파벳은 표준화되고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백성들의 구어가 글자 입혀진 문어의 형태로 영국사회 표면에 떠오르게 되었다. 이것을 시행한 사람이 누구인가? 이 사람도 공인이 아니다. 그냥 시민이다. 왕이나 공직자에게 일을 받아서 한 시민도 아니다. 출판사를 차린 개인 사업가였다. 이름은 윌리암 잭슨 Willia Caxton이다. 그것이 1476년이었다.


그러나 윌리암 자신이 사명감을 가지고 한 일도 아니었다. 백성을 위해서 영어 알파벳을 표준화해야겠다는 직접적인 의도로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때는 종이가 유럽에 들어와 있었고, 인쇄기계가 발명이 된 이후였다. 캑슨은 인쇄술을 배워 책을 만들어 파는 일종의 최초의 출판사업을 실시한 것뿐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바로 조판작업이다. 캑슨은 조판작업을 하면서 영국 내에 퍼져있는 다양한 방언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예를 들어 같은 계란을 남부지역에서는 "egges"라고 하는데, 북쪽에서는 전혀 다르게 "eyren"이라고 하는 사례를 본 것이다. 캑슨은 고민 끝에 당시 정치경제사회의 중심지였던 런던방언을 기준으로 판을 짤 수밖에 없었다. 이윤을 내야 했기때문이다. 그런데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같은 책이 영국섬 전역에서 인기를 얻고 퍼지면서 대중화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의도치 않게 알파벳 표준화에 공헌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준화 정도였지 규범화는 아니었다. 캑슨의 알파벳에는 모든 영국인이 따라야 하는 규범적 권위는 없었다. 영어가 규칙성이 강한 언어가 될 수 없는 역사적 상황이었다.



이후에라도 영어 알파벳을 표준화했던 기관이 있었나?

재미있게도 '없다'. 15세기 이후에도 영국은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다르게 국어를 재정립하는 기관을 두지 않았다. 대부분의 유럽국가는 국경이 정해지고, 국가라는 개념이 형성되면서, 국어를 재정비하기 위한 국어 담당기관을 설립했다. 프랑스의 아카데미 프랑세즈 Academie Francaise를 필두로 스페인의 왕립 학술원 Real Academia Espanola, 포르투갈의 문자국 Classe de Letras, 러시아 학술원 Russian Academy 등등이 이었다. 이 들 기관에서 했던 가장 큰 일은 사전편찬이었다. 사전편찬으로 대부분의 유럽 국가 언어는 질서가 잡히고 규칙이 정해졌다.


그런데 영국만은 이런 기관을 형성하지 않았다. 영어사전도 역시 일반 시민이 만들었다. 그 시민의 이름은 사뮤엘 죤슨 Samuel Johnson이라는 런던너였다. 그가 편찬한 사전은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1755년)이다. 사무엘 죤슨은 의식 있는 영국시민이었다. 요샛말로 인풀루언서, 즉 영향력 있는 영국 작가이자, 시인이자, 비평가이자, 사전편찬자였다. 영국군주나 의회의 도움을 받았는가? 아니다. 그는 개인적인 야심을 가지고 런던 서점주들에게서 기금을 받아서 영어를 국어의 꼴로 갖추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그는 사전편찬으로 사회적으로 대단한 지지를 받았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했으며, 명예도 얻었다. 


그러나 영국의회는 그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그의 작업도 캑스의 경우처럼 영어를 표준화했을 뿐 규범화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역시 영어에 강한 규칙성이 부여될 수는 없었다.


그 이후로도 영국 내에는 영어를 관리하는 공적 기관이 현재까지도 없다. 영국의 캠브리지나 옥스포스 혹은 미리암 웹스터 같은 곳에서 관여하고 있기는 하다. 이것도 공적 개입은 없고 영어규범을 제정하거나 규제하는 공적 기관으로 역할도 안 한다. 학문적인 관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지적 기관의 기본적인 접근방식은 기술적 접근 descriptive approach이다. 기술적이란 사람들이 사람들이 실제로 영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으며,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변화를 기록한다는 뜻이다. 관찰하고 기록할 뿐 규범을 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글은 달랐다

한국에는 국가에서 한국어를 연구하고 제정하고 규정하는 노력이 꾸준히 있어 왔다. 여기에는 영어국가와는 전혀 다른 역사적 배경이 있다. 20세기 초 일제강정기 때부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조선어학회가 설립되어 우리의 국어로 보존하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625 이후부터는 1946년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발표되었으며, 1949년는 문교부 산하에서 국어사전을 편찬하였고, 1957년에는 국어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이때까지는 공식적으로 국어를 규제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어 연구가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1984년에 국립국어연구소가, 1991년에 국립국어원으로 확대되어 현재까지 한국어의 규범을 확립하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2000년 초반에 자장면과 짜장면 표기의 논란은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좋은 예이다. 규범은 자장면이었는데, 기술적으로 보면 짜장면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란도 규범적으로 해결되었다. 국어를 관리하는 국립국어원에서 둘 다 표준어라고 공표하면서 마무리된다.


"2011년 8월 31일 이전까지 '자장면'만이 표준어였으며, '짜장면'은 표준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언중은 짜장면이라 불렀기 때문에 현실과 괴리된 표준어 지정에 대해 오랜 기간 동안 무수한 논란에 휩싸여왔고, 대한민국 표준어 제정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 꼽혀왔다. '표준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어째서 표준어가 아닌가?'라는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기 때문. 결국 2011년 8월 31일 국립국어원이 짜장면과 자장면을 모두 표준어로 인정하면서 오랜 논란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나무위키)



참으로 영어와 한국어는 언어를 대하는 접근방식이 정반대이다.

영어는 아래에서 위로 접근하지만, 한국어는 위에서 아래로 접근한다. 영어의 규칙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따른다. 한국어는 공식적으로 만든 규칙 자체를 철저히 따른다. 영어는 자기들이 영어를 사용하는 방식과 변화하는 과정을 그냥 내버려 두고 관찰하고 기술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국어는 정해진 규칙에 따랐는지 판단하는 규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기술적인 접근방식 쪽에서 보면, 규범적 접근방식은 경직성이 크다고 해석될 수 있다. 규범 속에서 안심을 해 온 쪽에서 보면, 기술적인 접근은 지나치게 유연하여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 당혹감을 느끼는 지점에서 주의해야 한다. 당혹감이 든다고 서두르지 말자. 이때 언어에 대한 우리의 마인드 셋을 잠시 바꾸어보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규칙을 찾아 안심하는 습관을 잠시 놔보는 것이다. 그리고 영어의 유연함이 주는 자유스러움에 마음을 열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영어의 신발을 신고 한번 폴짝 뛰어보는 거다. 나는 영어란 언어가 주는 청량감이 여기서 나온다고 본다. Cool! 규칙에 유연한 영어를 규칙만 가지고 완전정복할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콘텐츠아트 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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