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기업인 백종원이 음식점을 창업하고 싶으면 잘 되는 집보다는 안 되는 집을 가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잘 되는 집에 가면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덜컥 창업을 결심하게 되지만, 안 되는 집에 가면 '이 정도면 괜찮은데 왜 안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음식점이 안 되는 이유를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도 성공의 사례보다 실패의 사례에서 학습이 더 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직에서 실패의 사례를 수집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성공담은 당사자가 널리 알리려 애쓰기 때문에 많이 누적되지만, 실패담은 숨기고 덮어버리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귀한 학습 소재가 묻혀버리기 쉽다. 따라서,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조직이 성장하는 밑거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글에서는 실패의 경험을 역량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조직이 신경 써야 할 것을 몇 가지 얘기해 보고자 한다.
조직에서 보상은 어떻게 활용되어야 할까? 개인이나 팀이 낸 성과에 보상을 해 주는 것이 일반적인 보상의 활용일 것이다. 그런데, 보상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조직이 개인과 팀에게 장려하는 행동에 보상을 하는 것이다.
실패 속에는 다른 데서는 얻을 수 없는 귀중한 통찰이 숨어 있다. 실패하지 않았으면 앞으로도 계속 모른 채로 있었을 통찰들도 있다. 그런 통찰들은 당장의 실패를 되돌리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더 큰 실패를 막아줄 수는 있다. 따라서,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실패로부터 통찰을 뽑아내는 활동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실패를 겪을 때마다 조직의 성공 가능성이 올라가게 될 것이다.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내지 못하고 덮어버리기 바쁘면, 실패는 그냥 실패로 남게 된다. 하지만, 실패할 때마다 그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얻어낸다면, 실패는 미로 찾기에서 막힌 길 하나를 지워내는 것처럼 성공에 이르는 한 과정이 된다.
다만, 실패를 겪은 사람들은 그 실패를 다시 곱씹고 싶어 하지 않는다. 빨리 덮고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한다. 어렸을 때부터 실패는 나쁜 것이며 빨리 잊어버려야 하는 것으로 배워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서 실패담을 이야기하면, '자랑이다'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한다. 따라서, 실패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실패를 분석하고 그 안에서 긍정적인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프로젝트 참여자를 배제하고 실패를 분석할 수도 없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프로젝트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무엇이 프로젝트를 실패로 이끌었는지, 어떤 대안들이 있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보상이 필요하다. 보상으로 동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실패했는데 보상을 하는 것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 결과에 대한 평가와 결과로부터 조직에 도움되는 무언가를 건져내는 행위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것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발생한 결과에 매여있기보다는, 다음번 도전을 잘 해내는 것이 조직에게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한다고 하더라도, 막상 실패를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성공에 대한 분석에 비해 실패에 대한 분석은 대체로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실패를 분석하라고 하면 우왕좌왕하다가 끝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게다가 보상이 있더라도, 나의 실패를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불편한 일이기 때문에, 실패를 분석하는 과정에는 감정이 개입되기가 쉽다. 따라서, 실패를 분석하는 가이드라인을 조직이 정리해서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어떤 업무나 마찬가지이듯이, 실패를 분석하는 것도 담당자를 먼저 지정해야 한다. 해당 프로젝트에 PM이 있었다면 PM이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PM이 따로 없었다면 프로젝트 리더가 하거나, 아니면 직책에 상관없이 적절한 인원을 선발하여 맡기는 것이 좋겠다. 이때 담당자는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아무래도 프로젝트 참여자들과 얘기를 많이 나누어야 되고, 얘기의 주제가 유쾌한 것은 아닌 만큼, 불편하지 않게 얘기를 끌어내는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패를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한 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담당자가 사람들을 일대일로 만나면서 이야기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도 있고, 그런 자리에서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을 일대일로 만나고 익명을 보장하면서, 쉽게 하지 못했던 얘기까지 다 끌어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방어기제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려 한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책임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도 자신을 지키려는 데 기인한다. 이 방어기제는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아무리 편한 상황을 만들어 준다고 해도, 프로젝트가 실패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나 하는 말에는 자신을 지키려는 욕구와 감정이 반영되기 쉽다. 따라서, 담당자는 최대한 팩트 위주로 정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문장은 피해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의 프로세스는 잘 완료될 지라도, 다음번에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후기 프로세스에 참여하지 않게 되고, 결국 형식만 남은 프로세스가 하나 더 생기게 된다.
어떤 프로세스든, 프로세스를 진행하면서 주의할 것이 하나 있다. 프로세스란 것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안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세스를 완료하는 것을 목적으로 혼동하는 것이다.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것을 체크리스트에 있는 작업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프로세스는 반드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었는지 평가한 후에 프로세스를 종료해야 한다. 목적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프로세스를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광산이나 석유 시추 시설 등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지식(문제 해결 방안, 해결하지 못했던 쟁점)을 모아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대응할 수 있도록 꾸며놓은 책입니다. 책 표지가 검은색이라서 블랙 북으로 불립니다. 보잉 사는 이를 본 따 'Design Objectives and Criteria'라는 제목으로 특급 회사 기밀을 담은 블랙 북을 만들었으며, 러시아에서 1억 불에 이 책을 구입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합니다.' (스콧 버쿤, 'Art of Project Management')
성공보다는 실패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지만, 개인이나 팀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실패는 많지 않고, 일부러 실패를 만들어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나 팀의 실패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어내려는 시도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실패를 회고하고 교훈을 얻어내는 활동이 실패 당사자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그 팀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지만, 다른 팀은 비슷한 실수를 다시 저지르게 되고, 전체 조직으로 보면 동일한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회고한 내용을, 현재와 미래의 모든 팀이 활용할 수 있도록 자료로 모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위에 언급된 보잉 사의 경우, 설계 실패와 엔지니어링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블랙 북으로 관리하여 설계자들로 하여금 과거 사례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과거에 있었던 기술적인 실패가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실패 사례를 자료로 정리하여 활용하게 하는 것은, 실패를 겪은 당사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패 자체는 조직에 부정적인 것이지만, 그 실패를 통해 다른 팀이나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조직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 얻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실패 당사자들이 겪는 부정적인 감정을 완화시킬 수 있고, 조직으로서는 실패를 숨기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게 된다.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실패들을 잘 정리하여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왕이면 다른 조직에서 발생한 실패담을 정리하여 두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게임 회사라면, 다른 게임 회사가 겪은 실패 사례나, 나아가서 IT 기업들이 겪은 실패 사례들을 수집하여 정리하는 것도 크게 도움될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비즈니스는 치열한 경쟁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경쟁에 참여한 참여자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실패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패를 겪지 않고 성공한다는 것은 이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실패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졌고,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는 참여자들이 성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에 '우틀않'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틀리지 않았어'의 줄임말이다. 어떤 팀이 어떤 전술로 게임을 해서 졌는데, '실수가 있었을 뿐, 전술은 틀리지 않았어'라고 하면서 다음 게임에 다시 같은 전술로 임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 '우틀않'에는 약간 부정적인 뉘앙스가 들어가 있는데, 전술이 잘못되었음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는 것을 비꼴 때 많이 쓰인다.
실패를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실패를 하면 그것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덮어버리려고 애를 쓰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그저 실패의 경험을 하나 더 쌓았을 뿐이다. 실패를 바로 보려 애쓰고, 그 안에서 교훈을 얻어내려 노력해야만 실패의 경험이 내 역량으로 바뀔 것이다.
GE의 회장을 역임한 잭 웰치의 말을 마지막으로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완전히 실패를 했더라도 다음번 경주에서는 훨씬 더 열심히 뛸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사람들을 특히 좋아합니다.'
1. 실패로부터 배우려는 행동에 보상하라.
실패에는 귀중한 통찰이 숨어 있다.
사람들은 실패를 빨리 덮어버리고 싶어 한다.
실패로부터 통찰을 얻어내는 행위를 장려해야 한다.
2. 실패를 다루는 프로세스를 정비하라.
실패를 다루는 과정은 익숙하지 않고, 감정이 개입되기 쉽다.
참여자들로부터 하고 싶은 말을 다 끌어내되, 팩트 위주로 정리해야 한다.
프로세스를 완료하는 것이 목적이 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3. 실패 사례를 모든 팀이 활용할 수 있게 하라.
실패로부터 얻는 귀중한 통찰을 당사자들만 알게 하지 말아야 한다.
실패 사례를 모아서 자료로 만들어두는 것이 좋다.
누적된 실패 사례가 잘 전파된다면, 조직이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