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스 S. 테이셰이라
“신생 벤처 기업은 기존 기업이 예전부터 제공하던 Customer Value Chain의 일부만을 도태시키고 그렇게 분리해 낸 일부를 중심으로 전체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있었다. 신생 기업이라는 파괴자들은 고객이 행했던 일련의 활동들을 따로따로 떼어놓고 있었다. 전통적인 경쟁에서는, 경쟁자가 성공한 기존 기업의 모든 비즈니스를 대체하려 하지만 신생 기업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고객에게 약간의 가치만 제공해도 그들을 훔쳐올 수 있는데 왜 모든 부분을 대체하려 하겠는가?”
- 탈레스 S. 테이셰이라, <디커플링>
책 이름은 들어봤지만 읽을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아는 분의 추천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의 전체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시장 파괴는 고객의 변화된 욕구로부터 시작된다’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이나 자원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고객에 집중하고, 고객 중심으로 전략을 짜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전략과 실행의 결과가 ‘디커플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고객 중심’이라는 용어가 새로운 용어는 아니다. 이미 20년 전부터 많이 회자되던 말이다. 물론, 어떤 업계에서는 단순한 구호에 머물고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게임 업계에서는 고객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회사가 많다. 게임은 이탈이 쉬운 콘텐츠이기 때문에, 고객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쉽게 고객을 잃고 만다. 잘 나가던 사업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고객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것이 이미 익숙한 일이었고,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주장이 놀랍다기보다는 반가웠다.
‘디커플링’은 고객이 비용을 지불하고 가치를 획득하는 일련의 과정 중에서 일부를 떼어내어 다른 회사가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스타트업들이 이런 접근을 하고, 그 결과로 기존 기업의 사업 일부를 파괴적으로 잠식하게 된다. 사람들이 많이 아는 기업 중에서는 아마존, 넷플릭스, 트위치 등이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했고,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들도 이런 시도를 한다. 책이 발간된 것은 2019년인데, 5년이 지난 지금은 사업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 방식이 된 것 같다.
기술보다는 고객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지만, ‘디커플링’은 기술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디커플링’이 가능해진 바탕에는 온라인 환경의 보편화가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어떤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매장을 방문할 필요가 없고, 집에서 클릭 몇 번으로 세상의 온갖 제품과 서비스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하나의 서비스를 구성하던 여러 행동을 굳이 한 업체 안에서 진행할 필요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파편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그 파편화를 비즈니스 모델로 이용하는 기업과 서비스들이 생기고, 그런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고객의 욕구도 점점 더 파편화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기술이 파괴적 시장 교란의 핵심인 것은 아니다. 온라인 기술이 없었으면 파괴가 일어나기 힘들었겠지만, 성공적으로 파괴를 일으킨 기업이나 그렇지 못한 기업이나 온라인 기술은 똑같이 이용할 수 있었다. 파괴적 기업과 평범한 기업의 차이를 만든 것은 바로 고객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에 있다. 시장 파괴를 달성한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고객 집단 사이에 떠오르는 새로운 욕구에 먼저 반응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AI가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 지금 시점이 또 하나의 중요한 시점일 수 있다. AI라는 기술을 바탕으로 고객의 욕구는 또다시 변화하거나 진화할 것이고, 그것에 먼저 반응한 기업들이 시장을 다시 한번 파괴할 수 있다.
책은 그저 추상적인 진술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 기존에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기업,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강자가 되고자 하는 기업, 자금 투자처를 찾는 벤처 캐피털 등 여러 이해 관계자의 관점에서 ‘디커플링’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짚어가고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의사결정을 진행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몇몇 부분에서는 책과 다른 얘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예를 들어, ‘구독’ 서비스를 ‘디커플링’의 예로 들고 있고, 그것이 고객의 비용을 줄여주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구독’ 서비스가 고객의 비용을 오히려 늘리고 있는 측면이 있다. 한 번 구매하면 평생 사용할 수 있던 것을, 매달 사용 비용을 지불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비용을 늘리는 것이다. 이것이 기업의 매출 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모든 기업이 이 모델을 추구하게 되고, 그들 사이에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고객의 이용 비용은 빠르게 증가한다. 대표적으로 게임의 ‘프리미엄’ 비즈니스 모델은 일단 게임을 무료로 즐기게 한 후, 게임 안에서 필요에 따라 구매를 하게 하는데,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이 이런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이 고객으로 하여금 더 많은 돈을 쓰게 만들기 때문이다.
2019년에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시장에서 여러 기업이 경쟁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게임 이론’이 꽤 그럴듯한 설명을 많이 하는데, 그런 면에서 ‘디커플링’과 ‘게임 이론’을 같이 고려하면 시장의 변화를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고객 중심 사고’가 익숙한 사람에게도 이 책은 상당히 읽을 만하다. 추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던 ‘고객 중심 사고’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AI가 사람들의 비용을 더 많이 줄여준다면, 제품과 서비스는 더 잘게 파편화될 수 있다. 그런 시대를 앞두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책 <디커플링>은 생각하는 방법, 미래에 대비하는 방법에 대한 좋은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