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박 16일의 여행이 드디어 마지막 날에 이르렀다. 숙소가 공항과 가까운 편이고, 비행기 탑승도 저녁 시간에 하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도 런던 구경을 나갔다. 다만, 4시쯤에는 숙소로 돌아와야 하니 멀리 나가기는 부담스러웠다.
숙소 주인아저씨가 마지막 날에 가기 좋은 어느 성(城)을 알려주셨는데, 우리는 이미 가기로 한 곳이 있었다. 아들이 과학 박물관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연사 박물관과 과학 박물관을 마지막 일정으로 정해놓은 것이다.
런던에는 박물관이 많은데, 아마 가장 인기 있는 박물관은 자연사 박물관일 것이다. 대기줄도 길고 안에도 사람이 많은 편이다. 박물관 주변이 많이 바뀌었는데, 건물 주변을 공룡 공원처럼 꾸며 놓았다. 그리고, 지하철 역에서 박물관까지 연결되는 터널이 생겼다. 이 터널은 자연사 박물관뿐만 아니라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등 인근에 있는 모든 박물관으로 연결되어 있다.
자연사 박물관은 19세기말에 개관한 박물관으로, 생물학에 관한 표본만 수백만 개가 있다고 한다. 크게 블루존, 그린존, 레드존, 오렌지존으로 나뉘는데, 공룡관과 포유동물관이 있는 블루존이 가장 인기가 좋다.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면 블루존만 보고 나와도 나쁘지 않을 정도로 블루존에 볼 것이 많다.
우리는 시간 여유가 있어서 레드존과 그린존도 둘러봤다. 레드존은 지구에 관한 전시물들이 있는 곳이고, 그린존에는 고대 인류와 조류, 해양 파충류, 곤충 등이 있다. 오렌지존은 구경하지 못했는데, 투어로만 방문할 수 있다고 한다. 다윈이 직접 수집한 표본들과 8.62m짜리 대왕 오징어 표본이 오렌지존에 있는 듯하다.
자연사 박물관을 본 후에 그 뒤에 있는 과학 박물관을 방문했다. 보통 이 지역에서는 자연사 박물관 다음으로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 볼 만한데, 아들이 공예품보다는 과학 전시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과학 박물관을 일정에 넣었다. 런던을 세 번째 방문하는 것이었지만, 과학 박물관은 나도 처음이었다.
과학 박물관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그래서 관심 있는 것만 빠르게 둘러봤다.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총 7개 층(그라운드 층 포함)으로 되어 있는데, 증기 기관, 우주 탐험, 전자 통신, 컴퓨터, 비행기, 의학, 심리학 등 여러 분야를 다루고 있다. 다 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지도를 보고 관심 있는 주제만 찾아가서 보는 것이 좋다.
우리는 증기 기관, 우주 탐험, 비행기 정도를 자세히 봤다. 특히, 비행기 전시관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렇게 다양한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처음 봤던 것 같다. 내가 워낙 군용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아들보다 내가 더 신나게 봤다고 할 수 있다.
과학 박물관까지 보고 나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짐을 챙겨 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에 일찍 도착한 편이어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후 입국 수속을 했다. 면세점에서 나는 포트넘 앤 메이슨 홍차를 샀다. 같은 브랜드의 홍차를 한국에서 사려면 30% 정도 더 비싸게 사야 하기 때문에,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면세점에서 차를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들에게도 선물을 사주고 싶었는데 아들이 사양했다. 면세점에 축구 유니폼을 파는 가게가 있어서 토트넘 유니폼을 사줄까 물어봤지만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물론, 그때 사지 않은 것을 나중에 한국에 와서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
여행이 다 끝났다. 중간에 힘든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여행이었던 것 같다. 이미 아들과 국내 여행도 여러 번 했고, 일본과 베트남도 다녀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던 것 같다. 아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여행을 계획했지만, 막상 이 여행이 아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아들이 지금도 가끔 이탈리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유럽 여행이 아들의 삶에 분명한 인상을 남긴 것 같다.
아이와 둘이 하는 여행은 무척 특별하다. 우리 집에는 두 아이가 있는데, 둘 중 한 명만 데리고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온전히 그 아이를 위한 여행을 할 수 있다. 게다가 긴 시간을 하루 종일 떨어지지 않고, 함께 자고 함께 먹고 함께 걷기 때문에, 아이와 나 사이에 친밀감이 말도 못 하게 쌓인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늘 좋을 수는 없는데, 그럴 때마다 이 시간이 우리 사이를 단단하게 묶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러 가지로, 좋은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