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점심 후 친한 동료와 함께 산책을 하고 있었다. 활짝 핀 벚꽃, 어느새 화려한 시간을 보내고 지고 있는 목련 그리고 귀여운 개나리 등 봄 꽃들이 환하게 우리를 맞아 주고 있는 듯했다.
넓은 길에 빽빽하게 걷고 있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걷고 있는데 우리 앞에 갑자기 한 젊은 여인이 나타난다.한 팔로는 작은 꽃 화분을 여러 개 담은 꽃 광주리를 움켜 안고, 다른 한 손에는 그 광주리에서 꺼낸 듯이 보이는 작은 노란 꽃 화분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걷고 있는 우리 앞에 갑자기 나타나서 명랑하고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꽃 사세요”
오랜 시간 이 길을 산책하고 있었지만 길거리에서 걸어 다니며 꽃을 파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그녀가 손에 든 꽃 화분들은 예쁘긴 했지만 이미 내 눈은 하늘하늘 사랑스러운 벚꽃과 우아한 흰 목련과 귀여운 개나리 꽃을 본 직후여서인지 그녀가 팔려는 꽃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적극적인 모습에 잠시 망설이고 있던 나에게 그녀는 더 명랑하고 씩씩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 노란 꽃과 아주 잘 어울리실 거 같아요. 꽃을 사시면 저에게 희망을 선물해 주시는 거예요..”
내가 꽃을 사면 희망을 선물해 주는 거라고?
그 말이 이 꽃을 사는 데 있어서 생각지도 못한 의미를 부여해 주는 거 같아 나도 모르게 물었다.
"얼마예요?"
“만원이요”
옆에 있는 동료가 비싸다며 나의 옷소매 끝을 잡아당긴다.내가 봐도 오천 원이면 될 화분인데 만원이라니 좀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아주 잠시 그냥 지나칠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 손은 이미 지갑을 열고 있었다.
만원을 건네고 그녀의 손에 든 노란 꽃 화분과 광주리에 담긴 다른 색의 꽃 화분을 살펴보았다. 분홍색, 빨간색 화분도 있었는데 그녀의 말대로 노란색 꽃 화분이 더 마음에 들었다.
“말씀해 주신데로 노란색이 젤 낫네요. 노란색으로 할게요.”
그녀는 노란 꽃 화분을 나에게 건네며 좀 전보다 더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이 꽃과 정말 잘 어울리세요. 복 받으실 거예요. 저에게 희망을 주셨거든요”
“어휴 산책 내내 손에 들고 다녀야겠네요.. 불편하겠어요..” 라는 동료의 말이 아주 가볍게 바람과 함께 흩어진다.
“괜찮아요. 무겁지 않으니 들고 다니면 되죠 뭐 ㅎㅎ”
내 귓가에 그녀가 명랑하게 던진 '희망'이라는 단어가 계속 맴도는 듯했다. 내가 그녀에게 오늘 첫 손님인가? 그녀가 꽃을 팔아서 만나고 싶은 희망은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나에게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놓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던 청춘의 시간이 있었다. 내 힘과 노력만으로는 내가 꿈꾸고 바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현실을 살아 내면서 '희망’이 현실로 다가와 주기를 꿈꾸며 살았던 시간이었다. 이미 중년이 되어 버린 지금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 그 희망하던 것들을 바라보며 열심히 살다 보니 그 희망들은 내가 바라던 모습으로는 아니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와 주었던 것 같다.
오후 산책길, 우연히 만난 꽃 파는 젊은 청년에게 건넨 만원이 그녀가 꿈꾸는 희망에 아주 작은 씨앗이 되어 활짝 피어난 봄 꽃들처럼 풍성하게 피어나면 좋겠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희망의 꽃 광주리를 껴안고 “꽃 사세요, 제게 희망을 주세요”라고 외칠 그녀에게 기분 좋게 만원을 건네는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