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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평가, 리더의 선의는 왜 구성원에게 상처가 되는가

김대리! B등급이지만 난 응원해!

by 곽예신

'고생했어'로 시작해 '속상해요'로 끝나는 대화


"김 대리, 올 한 해 정말 고생 많았어. 내가 김 대리 노력한 거 누구보다 잘 알지.

이번 평가 등급은 아쉽지만 'B'를 받아야 할 것 같아... 상대평가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그래도 올해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많이 성장했잖아.

나는 이 경험이 김 대리에게 큰 자산이 될 거라 생각해.

자, 올해 결과는 이미 정해진 거니 훌훌 털고, 내년에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해 보자.

김 대리라면 내년엔 분명 더 잘할 수 있어!"


연말 성과 평가 시즌, 어느 회의실에서나 들릴 법한 팀장과 구성원의 대화다. 겉보기엔 격려와 피드백이 오가는 훈훈한 마무리 같지만, 이 대화가 끝난 후 두 사람의 속마음은 전혀 다르다. 우선 팀장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 역시 괴롭다. 객관적인 지표와 상대평가라는 제약 속에서 등급을 매겨 조직에 보고해야 하는 압박감이 있으며, 동시에 기대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할 구성원의 사기를 어떻게든 꺾지 않고 ‘성장’으로 이끌고 싶은 선의가 뒤섞여 있다. 나름대로 칭찬으로 시작해 격려로 끝내는 ‘샌드위치 화법’을 구사하며, 덕담을 건넸으니 할 도리는 다했다고 안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의실 문을 닫고 나가는 구성원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있다.

"기준이 대체 뭔데? 내가 야근하며 고생한 건 하나도 반영이 안 된 거잖아. 결국 자기랑 친한 사람 챙겨준 거 아니야? 그래 놓고 뻔뻔하게 성장이 자산이라고? 내년에도 이렇게 굴려먹겠다는 소리네. 역시 팀장은 믿을 사람이 못 돼."


리더는 ‘성장을 위한 피드백’을 주었다고 믿지만, 구성원은 ‘불공정한 통보와 가스라이팅’으로 받아들인다. 왜 평가 시즌만 되면 리더와 구성원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갈등하게 되는 것일까? 리더들이 성과 관리 방법론(KPI, OKR 등)을 몰라서일까? 아니다. 대부분의 리더는 피드백이 ‘목표와 결과의 차이를 분석해 더 나은 성과를 돕는 도구’라는 교과서적인 정의를 이미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성과평가에 대한 방법이 아니라, ‘평가라는 상황이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했다는 데 있다.


뇌과학이 말하는 평가의 불편한 진실: 편도체 납치

평가 시즌이 고통스러운 근본적인 이유는 뇌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평가라는 행위 자체가 인간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부정적 자극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먼저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 편향(Self-serving Bias)’을 가진다.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이 인지 편향은 조직 진단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구성원은 '나는 잘하고 있는데 조직이 문제'라고 하고, 리더는 '나는 리더십을 잘 발휘하는데 구성원이 못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이는 뇌가 인지적 부하를 줄이고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다. 누구도 매 순간 자신을 냉혹하게 객관화하며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편도체 납치.png educational infographic widely used in psychology communication (original author unknown)


이러한 편향을 가진 상태에서 기대보다 낮은 평가(예: B등급)를 마주하면 어떻게 될까?


데이비드 록(David Rock)의 SCARF 모델에 따르면, 인간은 사회적 상황에서 지위(Status), 확실성(Certainty), 자율성(Autonomy), 관계(Relatedness), 공정성(Fairness)의 욕구가 위협받을 때 강한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한다. "상대평가라 어쩔 수 없이 B야"라는 말을 듣는 순간 구성원은 자신의 노력(지위)이 무시당했고, 평가 기준이 모호(확실성 결여)하며, 리더가 나를 공정하게 대하지 않았다(공정성/관계 훼손)고 느낀다. 이때 우리 뇌의 경보 장치인 편도체(Amygdala)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이른바 ‘편도체 납치(Amygdala Hijack)’, 즉 생존 모드의 발동이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이성적 사고와 논리를 담당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기능은 마비된다. 리더가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로 '내년의 성장'을 이야기해도, 구성원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지금 당장 맹수가 덤비는데 내년 농사 계획을 논의할 수 있겠는가? 이미 구성원의 뇌는 ‘도망치거나 싸워야 하는’ 전시 상황이다. 이 상태에서 미래지향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며, 서로의 감정만 소모할 뿐이다.


그렇다면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의 성과는 ‘피드백’으로, 미래 성장은 ‘피드포워드’로 대화를 분리하라

핵심은 성과에 대한 ‘피드백(Feedback)’과 성장에 대한 ‘피드포워드(Feedforward)’의 시점을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것이다. 한 자리에서 평가 통보와 미래 설계를 섞어서는 안 된다. 다음과 같이 대화의 트랙(Track)을 나누어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피드백과 피드포워드.png


Track A: 성과 평가 피드백 (과거 중심 / The Cold Review)

시기: 연말 평가 시즌

목적: 지난 한 해의 성과에 대한 객관적 회고 및 평가 결과 전달

원칙: 리더 주도(Leader-led)로 객관적 데이터 기반 목표 달성 여부와 Gap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전달

장소: 사내 회의실 (공식적이고 사무적인 분위기)

핵심: 리더는 어설픈 위로보다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며, 구성원이 결과를 받아들이고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 ‘쿨다운(Cool-down)’ 기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중요


(최소 며칠에서 1~2주의 간격)


Track B: 성장 피드포워드 (미래 중심 / The Warm Growth)

시기: 평가 결과에 대한 감정이 가라앉은 연초 혹은 별도 지정일

목적: 구성원의 강점 발견 및 미래 성장 목표 수립

원칙: 구성원 주도(Member-led). 리더는 지시자가 아닌 ‘코치’의 역할로 전환한다.

장소: 외부 카페나 편안한 공간 (심리적 안전감을 느낄 수 있는 말랑말랑한 분위기)

핵심: “내년엔 무엇을 해보고 싶어?”와 같이 구성원이 주체적으로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질문하며, 이때 전전두엽이 활성화되어 창의적이고 건설적인 논의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


무엇을 더하기보다,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 먼저다

최근 많은 조직이 구성원의 업무 몰입(Engagement)을 높이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다. 하지만 구성원의 몰입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기대와 다른 평가 결과로 이미 상처받은 구성원에게, 리더의 성급한 미래 조언은 ‘기대 불일치’를 초래하고, 오히려 몰입을 급격히 저하시키는 독이 된다. 원만한 결혼 생활의 비결이 ‘배우자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에 있듯이 조직 관리도 마찬가지다.


리더에게 시간은 늘 부족한 자원이다. 두 번이나 면담을 진행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잘못된 대화로 내년 한 해의 팀워크와 성과를 망칠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아니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두 번의 대화를 나누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구성원과 긍정적인 분위기로 내년을 함께 준비하며 효과적인 성장 대화를 만들어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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