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모르겠지만 얘기나 좀 하죠."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by 낮별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영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나인틴 헌드레드의 최후의 선택을 이해해보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설득하려 했지만 오히려 설득당하여 눈물범벅으로 배를 떠나는 맥스처럼 나도 울었다. 버지니아호와 최후를 함께 하겠다고 버티는 나인틴을 보면서 나는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가 내내 생각났다. 나인틴도, 바틀비도 외부 세계와의 단절과 죽음을 스스로 선택했다. 외부 세계를 거부한 원인에 있어서 바틀비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허무주의에 가까웠고, 나인틴의 경우에는 ‘유일하고 순수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은 적극적 선택에 가까웠지만 두 사람 모두 세상 속으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했다.


바틀비를 떠올렸던 것은 바틀비와 마찬가지로 나인틴 역시 이상심리적 관점에서 보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배라는 한정된 공간이 그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안전지대였다. 육지는 ‘무한한 건반’과도 같이 거대하고 통제 불가능한 공간이었다. 육지는 그에게 있어서 공포를 유발하는 ‘광장’이었을 것이다. 일종의 광장공포증이 그를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인틴에게 있어서 ‘배 위의 피아니스트’가 유일한 자기개념이었다. 그것이 사라지면 스스로의 존재 이유도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기개념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면인 맥스의 뒷모습을 보며 슬픔, 상실감, 죄책감으로 인해 그의 삶 또한 얼마나 힘겨울지를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고 불현듯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바로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텅 빈 배 안에서 혼자 전화번호부를 뒤져 어디론가 무작정 전화를 걸던 장면이었다. “날 모르겠지만 얘기나 좀 하죠.” 예상대로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나인틴은 세상과 연결되고 싶었고, 세상이 궁금했다. 배에서 태어나 평생 육지를 밟아보지 못한 그로서는 가장 적극적이고 안전한 형태로 손을 내밀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손을 잡아줬더라면 결말이 좀 달라졌을까? 영화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웠지만, 결말은 몹시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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