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전사 Oct 26. 2023

군중 속의 뒷모습

구경거리, 권력자, 추종자, 떠돌이 군상

학교 다닐 때 운동장에서 조회를 하면 줄을 서서 오와 열을 맞춰야 했다. 선생님이 외친다. "앞으로 나란히!“ 앞 친구의 등에 손이 달까 말까 거리를 맞추고 친구의 뒤통수와 목덜미 어깨와 등을 기준으로 앞에 앞에 친구들의 어깨선을 가늠하여 열을 맞췄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길어질수록 앞 친구의 뒤통수는 지루함을 달래는 구경거리가 되곤 했다. 상고머리, 빡빡머리, 기계충이 생긴 머리, 납작 머리, 짱구 머리, 단발머리, 긴 생머리, 갈래머리, 댕기머리 등등...


군중에 섞여 거리를 걷다 보면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많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앞모습은 자세히 볼 사이도 없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그중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 아는 사람 이외에는 기억조차, 아니 인식조차 할 수 없는 앞모습의 행진이다. 하지만 뒷모습은 그렇지 않다. 얼굴도 없고, 그래서 표정도 짓지 않지만 오랫동안 내 앞을 간다. 그는 온통 그의 앞에 전개되는 세상에 한눈을 팔고 있지만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의 뒷모습에 내가 온통 정신을 집중할 수가 있다. 그는 보이는 사람, 나는 보는 사람이 된다. 그는 모르지만 그를 보는 나는 그의 권력자가 될 수도 있고, 그의 추종자가 될 수도 있다. 현실이 아닌 상상의 세계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가며 한 3년 출퇴근을 한 적이 있다. 왕복 100km 3시간 거리다. 그때 내 앞으로 보이는 세상은 온통 앞에 앉은 사람들의 뒷모습이었다. 스포츠머리, 더벅머리, 파마머리, 뒤통수 위가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 흰머리, 미처 머리손질을 못해 파마용 플라스틱을 매달고 있는 머리, 머리를 질끈 맨머리, 모자를 푹 눌러쓴 머리, 머플러로 동여맨 머리... 그 뒷모습들은 분주한 이른 아침 직장으로, 볼 일이 있는 목적지로 향했고,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고개를 앞으로 숙이거나 옆으로 꺾은 채 흔들흔들 그들의 집으로 갔다.


우리는 기억을 못 할 뿐이지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더 많이 보고 산다. 나 보다 남이 나의 뒷모습을 더 많이 보고 산다. 뒷모습이 신경 쓰이는 이유이다. 서산대사가 말씀하셨다. "눈 덮인 길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밟고 가는 이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오늘날 세상은 앞모습에 몰두하고 있다. 거울이나 사진, 영상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이미지 속의 내 앞모습이 전부인양 되고 있다. 성형은 새로운 나를 찾고 그 만들어진 내가 나를 지배하게 되는 마술이다. 본래의 앞모습이 사실이고, 만들어진 앞모습이 마술이라면 남의 뒷모습은 나의 상상의 영역이자 어떤 때는 권력자, 추종자, 대다수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떠돌이 군상으로 읽히는 마법이 된다. 나도 그도 서로에게 그렇다. (계속)

신사의 뒷모습(비비안 마이어)
거리에서 만난 여인의 뒷모습(비비안 마이어)
버스 승객의 뒷모습(2022)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뒷모습(2023)
세계 관강객으로 다시 붐비는 명동 거리의 뒷모습(2023)
외국 멋쟁이의 뒷모습(비비안 마이어)


이전 01화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