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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전사 Oct 27. 2023

아버지의 뒷모습

묵묵한 사랑에서 세월이 휩쓴 애처로움, 다시 신화에 이르기까지

어린 자식이 올려다본 아버지의 뒷모습은 위대하다. 그 넓은 등판은 가장의 권위와 무게이자 묵묵한 사랑을 상징한다. 하지만 아비보다 키가 크고 덩치도 산만해진 자식이 내려다보는 늙은 아비의 좁고 굽은 등은 더 이상 위대하지 않다. 그저 애처로울 뿐이다.


늙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본 아들의 심정을 절절하게 담아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문학작품이 있다. 바로 중국의 시인 겸 평론가인 주쯔칭(朱自淸, 1898∼1948) 수필 ‘아버지의 뒷모습(背影)’이다. 가난한 아버지가 공부하러 떠나는 아들에게 줄 귤을 사기 위해 기차역 철로 건너편 플랫폼을 기어 올라가는 장면에서 아들은 늙은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버지의 묵묵한 사랑을 느낀다.

주쯔칭(주자청)의 아버지(1925)

“아버지는 먼저 양손을 플랫폼 위 바닥에 댄 채 두 다리를 모으고는 위로 오르려고 한껏 뛰셨다. 순간 뚱뚱한 몸이 중심을 잃으며 왼쪽으로 기우뚱하였다. 몹시 힘겨워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글썽거렸다.(후략)”


작가의 아버지는 한마디 말이 없지만 그의 아버지 뒷모습은 작가에게 숱한 생각과 감정의 파도를 일으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심상으로 맺히고 있다. 이를 표현한 작가의 글을 읽는 독자들 또한 작가의 감정에 이입되면서 독자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에 뻐져들게 된다.


이처럼 뒷모습은 말을 하지 않지만 특유의 힘이 있다.  뒷모습은 존재만 할 뿐 뒷모습을 보는 이가 발화자이자 수화자가 된다. 그 서사는 위대함일 수도, 사랑일 수도, 연민일 수도, 배신일 수도, 단호함일 수도 있다.


나처럼 아주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사람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도 아버지일 것 같은 아버지의 뒷모습은 늘 본다. 길을 가다가 등이 굽은 노인을 만나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러면서 나의 자식들에게 살아있는 아비의 등을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감사한 일인지를 되새기곤 한다. 다른 이의 뒷모습을 통해 나의 뒷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다. 어느 날 자식의 자식을 무등 태우고 내 등에 올라탄 연결자로서의 남은 사명을 깨닫는다. 뒷모습이 소리치는 묵언의 외침에 귀기울인다.


모든 아버지 뒷모습은 세월 따라 위대함에서 애처로움까지 되돌릴 수 없이 떠밀려 간다. 하지만 그가 한 때 거인과 같았다는 신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인걸(人傑)은 사라져도 문명은 남기 때문이다.


늙은 아버지의 뒷모습에는 자식들에게로 이어지는 DNA, 그가 살아온 시대의 침잠(沈潛)된 신화가 있다. (계속)

  *침잠(沈潛): 물에 깊이 가라앉거나 숨은

오랜 시공간을 함께한 노부부의 뒷모습(비비안 마이어)
아이를 목마 태운 아버지들. 저 아이들은 결코 아버지를 목마 태우지는 않을 것이다.(호주)
큰 아들의 시선으로 본 아버지 뒷모습(2021)
저 그림자조차 사라질 부모들의 운명(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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