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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전사 Oct 31. 2023

시인의 뒷모습

극도의 상상과 통찰의 시선

시인. 시인이 누구인가? 사전의 표현을 빌리면 ‘시를 잘 짓는 사람'이다. 역시 시적이지는 않다.


시는 무엇인가?  시는 “문학의 한 장르로써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라고 정의된다. 형식에 따라 정형시ㆍ자유시ㆍ산문시로 나뉘며, 내용에 따라 서정시ㆍ서사시ㆍ극시로 나뉜다.


이를 잣대로 보면 시인은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을 잘 짓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시인에 대한 정의 따위에는 감동이 없다. 국어시험 모범답안 느낌이다. 전혀 시적이지 않다. 경탄하여 무릎을 치기에 한참 모자란다. 시인을 정작 시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아무나 시인이 될 수 없어서 벌어지는 세상의 현상이 아닐까 한다.


나는 시인이 아니다. 시인이고 싶지만 능력이 되지 않는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여 그저 단어를 이리저리 엮는 정도의 글쓰기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도 생각이지만 생각보다 문장이 항상 미치지 못하니 무수한 단어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기 일쑤이고 어쩌다 자리를 잡았다 해도 딱히 제자리라 말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이런 내가 시인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 시인에 대한 생각은 있다. 나는 시인은 천재일꺼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남다르고 감성이 풍부하여 순간에 느끼는 감정을 가장 아름다우면서 가장 감동적인 언어로 옮길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본다. 거친 생각과 뜨거운 가슴과 흔들거리는 문장을 서로 겨루다가 어느새 하나의 덩어리로 제자리를 잡아주는 언어의 마술사, 그가 시인이 아닐까 한다.


이런 시인들은 뒷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자연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풀꽃 시인 나태주(1945~)는 <뒷모습>이라는 시를 이렇게 썼다.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자기의 눈으로 결코 확인이 되지 않는 뒷모습. 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후략)”


시인 나태주는 뒷모습은 ‘고칠 수 없는 것’, 거짓말할 줄 모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뒷모습을 정직(正直)의 오롯한 대명사로 묘사한다. 그래서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그의 결론에 도달한다. 탁월한 시선이다.


시인이자 평화운동가인 박노해(1957~)도  <뒷모습>이라는 시를 썼다. 서정성이 풍부한 시인 나태주와 언어의 선택과 배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뒷모습은 꾸밀 수 없고, 자기 다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라는 대목은 나태주와 같다.  “뒷모습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가 돈으로 꾸밀 수 없는 내면. 그가 권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영혼. 명예로도 미모로도 가릴 수 없는 사람의 실상. 오늘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 하나 그 내면의 빛과 향기에 나는 감전되었다.”라고 말한다. 그의 방식으로 노래한다.


시인 박노해의 시어에는 서정성과 다른 사회성이 깃들어 있다.  따뜻한 인간애를 가진  민중의 시선이다. 권력과 명예, 미모와는 거리가 먼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시선이다.


시인 나태주와 시인 박노해의 언어는 같지만 의미는 다르게 다가온다. 표정이 없고 말이 없는 뒷모습은 시인들의 철학과 사상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고 다시 시인의 독자적 언어로 탄생되어 시를 읽는 독자를 향한다.


종교인이자 시인인 이해인(1945~) 수녀는 어느 시인의 <뒷모습> 시를 읽고 있던 중에 동료 수녀들의 뒷모습에 대한 애틋함을 수필로 썼다.


“침방에서 성당으로, 성당에서 식당으로 움직일 때, 그리고 정원에서 산책할 때 요즘은 더 유심히 우리 수녀님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곤 합니다. 뒷모습이 곧은 수녀들도 있지만 노년의 아픔으로 등이 굽어있는 수녀, 뼈의 이상으로 한쪽으로 어깨가 치우쳐 있거나 목이 자꾸만 뒤로 젖혀지는 수녀들도 있습니다.(후략)”


나이가 들어가며 뒷모습이 새롭게 보이는 종교인의 관찰과 묵상이 진심을 담고 있어 읽는 이들의 가슴을 두드린다. 그의 동료수녀에 대한 사랑이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동료의 뒷모습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나이 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는 상상으로 발전한다. 동료의 뒷모습이 자신의 뒷모습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뒷모습은 상상과 감성이 풍부한 시인에게 더없는 소재가 되고 있다.  하지만 뒷모습에 대한 상상은 시인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시인처럼 아름다운 시어를 끄집어내지 못할 뿐이지 뒷모습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무한 상상의 공간이다. 뒷모습에는 병든 아버지, 시장에 가신 어머니, 돌아가신 할아버지, 사탕을 쥐어주시던 할머니, 군대 간 아들, 잃어버린 딸, 헤어진 연인, 내 돈 떼어먹고 도망친 여자, 젊은 시절의 나, 훗날의 내 모습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형상이 있다.


그래서 뒷모습은 상상의 세계이고 저마다의 철학과 지난날이 스미운 관찰자의 세상이다. 그저 지나치는 무심함에서는 도무지 발견되지 않는 부존재의 세상이지만 세심함과 통찰력으로 무장하면 무한 상상이 시작되는 흥미로운 세상이다. (계속)

시인 나태주 <뒷모습>

                                              

시인 나태주 <풀꽃>
풍금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나태주 시인(충남 공주시 풀꽃문학관, 2022.6.3)
시인 박노해 <사람의 뒷모습>
이해인 수녀님 수필집 <꽃잎 한장처럼> (샘터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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