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레시피》(다이라 아스코, 박미옥 옮김)
‘날달걀이 섞인 카레. 역시 좋아하는 맛은 아니지만, 먹는다고 죽는 음식도 아니다. 한동안 여기나 다녀볼까? 가장 좋아하는 것에 도달한다면야, 꽃밭을 짓밟고 폭풍우도 이겨나가리라.’ _ 〈가장 좋아하는 것〉 중에서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있듯, 마음처럼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 연애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음식과 사랑하는 사람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의 고통은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굶주린 배와 허기진 마음을 채우기 위한 과정이라 믿으며 말이다.
《오늘의 레시피》는 《멋진 하루》, 《사랑 보존법》, 《B급 연인》 등 달콤하고 쌉쌀한 연애 소설 장인, 다이라 아스코의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다채로운 연애담을 카레 우동, 포테이토 샐러드 등 다양한 음식에 비유해 감칠맛 나는 6편의 연애 레시피를 완성했다.
첫 번째 레시피 〈야만인의 식욕〉은 음식도 남자도 맛있게 받아먹겠다는 사오리의 발칙한 연애담이다. 사오리는 실연의 아픔을 잊으려고, 마음은 착하지만 꾀죄죄한 남자 도시야의 식사 제안을 수락해 버린다. 대합조개구이가 나오는 줄 알았는데, 도마뱀 덮밥, 개미 젤리 같은 혐오스러운 음식이 애피타이저로 등장한다. 메인 요리인 대합조개구이를 먹으려면 이 끔찍한 애피타이저를 견뎌야 하고, 도시야의 매력을 맛보려면 꾀죄죄한 그의 겉모습을 참아내야 한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지만, 개미 젤리를 입에 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력하는 사요리에게 ‘파이팅’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두 번째 레시피 〈그대여 행복하길〉은 포테이토 샐러드에 얽힌 삼각관계 연애담이다. 포테이토 샐러드를 좋아하는 전 남자 친구와 현 썸남. 이 둘이 포테이토 샐러드를 통해 친구가 되어버리는 통에 미카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예 이 둘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만나볼까 하지만, 포테이토 샐러드를 싫어하는 남자는 어딘가 매력이 없다. 연적까지 친구로 만드는 마력의 포테이토 샐러드. 그 맛이 궁금해진다.
세 번째 레시피 〈우는 건 싫어〉는 양파를 싫어하는 시나와 그런 점을 고치고 싶어 하는 남자 친구 도오루의 매콤 살벌한 연애담이다. 연인을 자신의 뜻대로 바꾸려는 도오루를 보고 있자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특별한 이유도 없이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굽히지는 않으리' 태도로 일관하는 시나도 답답하다.
네 번째 레시피 〈가장 좋아하는 것〉은 카레 우동 마니아 미츠루와 카레 우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미치코의 씁쓸한 연애 이야기이다. 어릴 적 친구인 둘이 사귀게 되지만 취향은 같지 않다. 괜찮아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미치코는 점점 불편해진다. 이 세상에는 노력해서 이루어지는 사랑도 있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랑도 있다.
다섯 번째 레시피 〈황홀한 관계〉는 50대 타카무라의 버터밥 필살기에 넘어간 20대 로미의 밀고 당기는 연애담이다. 로미는 나이가 많은 타카무라와 헤어지고 싶지만 버터밥을 만들 수 있는 연인은 그렇게 많지 않다. 연하의 연인을 사로잡으려면 버터밥처럼 비장의 무기, 아니 비장의 레시피는 하나쯤은 알고 있어야겠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레시피 〈사랑이 머무는 곳〉은 요리를 못해서 엄마에게 구박받고 자란 여자 노리코와 부모 없이 할머니 품에서 큰 슈스케의 열등감 극복 이야기이다. 요리를 못하는 노리코에게 부엌은 언제나 혼나는 장소이다. 어느 날 남편 슈스케가 돌아가신 할머니의 매실 절임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더니, 노리코는 덜렁댄다며 부엌 근처에도 못 오게 한다. 노리코는 그런 그의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이 보여 마음이 불편하다. 속상한 마음에 심통을 부리는 노리코의 행동이 얄미우면서도, 성 역할 편견이 만들어낸 그녀의 콤플렉스가 이해되어 되레 안쓰럽다.
‘저것은 음식이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 기꺼이 제 한 몸을 희생시켜줄 생물, 그래, 지방을 조금 짜내고 몸통 둘레를 말쑥하게 다듬은 다음, 머리도 깎고 옷장도 싹 정리하면 좀 귀여워질 것도 같다.’ _ 〈야만인의 식욕〉 중에서
경박스럽게 들릴지 몰라도 요리를 하는 작업과 연인을 유혹하는 작업, 연애하는 과정과 실제로 음식을 먹는 과정을 떠올려보면, 음식과 연애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오늘의 레시피》는 그 점을 위트 있는 표현과 기발한 캐릭터로 잘 살려 독자들의 웃음과 공감을 자아낸다. 그뿐 아니라 다음 연애가 연상되는 열린 결말을 제시해 독자에게 상상하는 즐거움도 선사한다.
그 덕분일까?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꽤 유쾌하다. 연인과 헤어져 우울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읽어보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실연까지는 아니라도 지금의 연인과 관계가 뜨뜻미지근한 사람, 새로운 연인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사람. 누구라도 좋다. 연애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에게 다이라 아스코의 《오늘의 레시피》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