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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스키 Dec 29. 2021

<단편소설>오지납전

- 옆 동네 살인사건 ②

'쾅쾅쾅'

한참 범인 잡는 위험하고 즐거운 망상에 빠져 있는데 가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재빨리 현실로 돌아와 문을 열었다.

"계세요?"

" 하시게요?"

"아저씨, 저기 이 구두 밑창을 뜯어서 이 구두에 붙이는 거 가능할까요?"

"이쪽 구두를 이쪽으로요? 뭐 그런 걸 한대요? 그냥 하나 사는 게 나을 텐데…… 그렇게 하면 수리비 꽤 나와요. 아 근데, 아가씨 입술에 뭘 붙이고 다니는 거요? 김…… 인가?"

"김이라니요!?  점이거든요! 뭐래 짜증 나. 아무튼 신발 수리돼요 안돼요? 제가 좋아하는 신발이라서 그래요. 요즘 이런 식으로 리폼해서 신는 게 유행이란 말이에요."

"아, 점! 아이고 미안해라. 되죠 되죠. 미안하지만 수리비는 선불로 받아야겠는데. 떼서 붙이고 굽까지 갈면…… 칠만 오천 원은 받아야 하는데 그냥 칠만 원만 내세요."

"여기 돈이요. 오늘 안으로 해 주세요."

"오늘은 앞에 먼저 맡긴 사람이 많기도 하고, 아가씨 신발 자체도 손이 많이 가서 힘들어요. 오일 후에 와요."

"아 더 빨리 안돼요?"

"성격도 급하네. 굽 떼서 붙일 신발에 맞게 갈아야 하고 붙이면 하루는 기다려야 하고, 아무리 빨리 해도…… 아따 그래요! 사흘 후에 와요."

"시간은요?"

"점심 먹고 와요 1시 이후에 오면 되겠네. 이름은?"

"네? 왜요?"

"적어놔야 나중에 찾아왔을 때 알죠. 다른 사람이 대신 찾으러 왔는데 내가 실수할 수 도 있고."

"박…… 아니다 제가 직접 찾으러 올 거예요. 이름 안 남기고 싶어요. 개인정보 문제도 있고요."

"아.. 뭐 그럼 뭐."

"예쁘게 해 주세요."

"네네."

유별난 사람이다. 별로 비싸 보이지도 않는데 수리비로 칠만 원이나 내다니 수리비가 비싸다고 해서 가게에 좋은 것도 아니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일이 밀리기 딱 좋다. 까다로운 손님도 많아서 문제 일으킬까 피하고 싶기도 하고. 저 여자는 점도 빼는 게 좋을 것 같고.



순서대로 정렬해둔 신발들 가장 뒤에 여자의 신발 두 개를 툭 하고 던져 놓고는 다시 용의자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계획을 짜야겠어"

족적 사진을 관찰한 내용을 급한 대로 메모장에 적어 내려갔다. 당분간은 이 메모장을 내 사건 수첩으로 사용할 것이다. 굽 높이도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진만으로는 더 이상의 정보를 알 수 없었다.

‘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돌아온다.’

수사 전문 영화에서 꼭 한 번씩은 나오는 말. 현장에 가봐야겠다. 운이 좋으면 범인을 직접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전에 내가 범인을 알아봐야겠지만 말이다. 서둘러 옷을 입 고 아껴뒀던 홍삼진액을 하나 챙겨서 이 씨네 부동산으로 갔다. 아까 일로 삐쳐서 나를 보고도 못 본 척한다. 그런 이 씨 앞에 홍삼진액을 까서 건넸다.

"바빠? 이거 하나 먹어요. 몸에 엄청 좋은 거예요."

"이게 뭐야?"

이 씨는 못 이기는 척하며 홍삼진액을 받더니 꿀꺽꿀꺽 잘도 마신다. 정말이지 자기 몸이라면 끔찍하게 위하는 사람이라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옆 동네 시세에 대해서 물어봤다. 갑자기 사건 현장이 어디냐고 물어봤다가는 귀찮게 꼬치꼬치 물어볼 게 뻔하기 때문이다. 범인은 반드시 나 혼자 단독으로 잡아야 하기 때문에 최 대한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특히 이 씨같이 관심받기 좋아하는 사람은 오히려 내 공을 가로채버릴지도 모른다. 예상대로 부동산 벽에 붙어 있는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주변 가게의 시세부터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 한 달 전 화재 때문에 값이 떨어지지는 않았어?"

"떨어졌지. 한창 오르고 있는 중이었는데…… 여기! 화재 난 곳! 이 주변 사람들 아마 똥줄 탈 거야. 방송에 그렇게 많이 나올 줄 알았겠어? 살인사건 동네로 찍히면서 우리도 좀 영향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원하는 정보를 얻었으니 대충 맞장구를 쳐주고 가게를 핑계로 밖으로 나왔다. 이 씨의 부동산을 나오자마자 수첩에 장소를 대충 그려 넣었다. 지금 시각은 오후 두 시 삼십 분. 사건 현장까지는 마을버스로 십 분 정도. 이 시간은 보통의 성인이라면 직장에 있을 시간이다. 만약에 이 시간에 현장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면 범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서둘러 버스를 타고 옆 동네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정류장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입술에 김 아니 점이 있는 걸 보니 아침에 손님으로 왔던 유별난 여자다.

"이 동네에 사나."

수첩을 펼쳐 길을 확인했다. 여자가 들어간 길과 같은 방향이다. 수첩에 메모 한대로 왼쪽에 보이는 길을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여자를 따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신경 쓰인다. 아까 오늘 안에 수 리 못해 준다고 말했는데. 여자가 뒤를 돌아보면 어쩌지? 볼 일이 있어서 잠깐 왔다고 해야 하나 재료 사러 나왔다고 하면 괜찮으려나. 그런데 저 여 자 걸음은 또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나이는 스물넷? 다섯? ' 아까는 내가 실 수 한 게 좀 미안해서 말을 못 했는데 점은 꼭 빼라고 해야겠다. 학생도 아닌 거 같은데 이 시간에 일도 안 하고 돌아다니다니. 젊은 사람이 팔자 한 번 좋다.

'……!!'

문득 아침에 이 씨와 했던 대화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급히 수첩 가장 앞 장을 펼쳤다.

'팔자걸음, 키 160 정도, 사이즈 240, 20대 여성 추정'

여자와 수첩을 번갈아 보았다. 여자가 맡기고 간 신발 두 켤레. 지금 생각해 보니 의심스럽다. 혹시 저 여자가 범인이 아닐까? 이십 대 젊은 여자,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이십 대인 것은 확실하다. 키와 저 걸음걸이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내 가게에 맡긴 두 신발 중 하나가 범행 때 신었던 신발이라면? 증거 인멸을 위해 사건 현장에서 좀 떨어진 나의 구둣방까지 온 거라면? 범인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일부러 한산한 시간에 범행 장소에 다시 온 것이라면? 여자의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여자는 사건 현장 쪽으로 가고 있다. 나는 수첩에 그려진 지도와 비교하면서 여자가 가는 길을 따라갔다. 여자가 갑자기 뒤를 돌아서 나를 볼 수도 있으니 패딩 점퍼에 붙어 있는 모자를 깊이 눌러써 조금이라도 얼굴을 가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앞서 가던 여자가 슈퍼로 들어갔다. 미행을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나는 재빨리 슈퍼 반대편 건물로 이동해 최대한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여자는 사건 현장을 향해서 가는 게 틀림없다.  신문기사에서는 사건 현장에서 큰 화재가 있었고 아직 신원이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집주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시체가 있었다고 했다. 내 눈앞에 있는 저 여자와 집주인은 무슨 관계일까? 엄마와 딸? 아니다. 그렇게 가까운 사이라면 인터뷰 같은 것으로 벌써 뉴스에 나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손녀인가? 아니면 여자가 협박을 받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단순 강도? 사이코패스? 신발을 그렇게 고칠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볼 때 머리가 보통은 아닌 것 같다. 사이코패스들은 머리가 좋다고 하지 않던가?

"천재 사이코패스라......"

그때 와다다다 하는 소리와 함께 위층에서 남자 하나가 뛰어나오더니 무언가를 찾는 듯 자기 몸을 더듬거린다. 담배를 피우러 나왔는데 불이 없는 것 같이 보였다. 나는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 늘 라이터를 가지고 다닌다.

"라이터도 없이 무슨 담배를 피우겠다고 쯧쯧. 여기 내 거 써요."

"네? 저요?  담배 아닌데요."

남자는 괜히 민망한 지 내 라이터를 받지 않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존심이 센 건지 자존감이 높은 건지 친절을 베풀어도 고마운 줄을 모른다.  

"고맙다고 하면 될 것을."

"먼지 터는 건데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어르신."

"아이고! 미안해요. 내가 오해했네. 옆 동네 호심 상가 알아요? 그 앞에 있는 구둣방 사장이에요. 다음에 구두 한 번 닦으러 와요."

나는 멋쩍어서 괜히 가게 홍보를 하고 슈퍼 쪽으로 이동했다. 드디어 여자가 슈퍼에서 나왔다. 아까보다 더욱 조심하며 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여자가 발길을 멈칫 멈칫한다. 현장이 가까워지니 조금 긴장되는가 보다.

"초범인가?"

여자가 멈칫할 때마다 내 가슴도 철렁 내려앉는다. 차 뒤에 숨기도 하고 다른 가게에 들어가는 척을 하기도 하고 마치 외국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길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경찰 무리가 보인다. 이 씨의 설명대로라면 이 길목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사건 현장이다. 여자가 갈림길에서 잠깐 멈칫하더니 오른쪽이 아니라 직진을 했다. 사건 현장을 지나가 버린 것이다.

"이상하다. 범인이 아닌가?"

순간 여자의 묘수에 넘어갈 뻔했다. 상대는 천재 사이코패스, 경찰이 사방에 깔렸는데 바로 범행 현장으로 갈 리가 없다. 가지 않는 척 돌아서 갈 수도 있다. 여자는 다음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돌았다. 그리고 사건 현장 방향으로 거꾸로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역시 내가 옳았다. 지금 여자의 행동으로 여자가 범인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만약 아까 그 신발을 바로 고쳐줬다면 내가 증거를 없애는 걸 도와주는 꼴이 되는 게 아닌가? 아찔하다. 나를 이용하려 하다니 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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