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는 공간이 지닌 냄새까지 가로막았다
공간은 공간마다의 냄새를 가지고 있다. 비 오는 날 지하주차장에서 나는 비릿한 페인트 냄새가, 한겨울 새벽을 떠도는 공기가 품은 파릇파릇한 냄새가, 할머니 댁 낡은 가구에서 올라오는 꿉꿉한 냄새가 공간을 맴돈다. 나는 그런 냄새를 맡는 것을 좋아한다. 냄새는 공간에 생기를 더한다. 그저 공간에 불과한 것이 냄새가 더해지면 공간은 백지에 색감이 입혀진 것처럼 환해지고 입체가 더해진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의 살아있는 변신을 경험하는 것은 나에겐 있어 꽤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마스크가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 된 지 1년도 훌쩍 지난 최근에는 그런 즐거움을 맡는 것이 꽤 어려워졌다. 서로의 비말에서 튀어나오는 균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1년도 넘게 마스크를 쓰다 보니 문득 느끼게 된 것이 있었다. 마스크는 균만 가로막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스크는 공간이 지닌 냄새까지 가로막았다.
벚꽃나무가 흩뿌리는 앳된 냄새가, 파도가 던지는 거친 짠내가, 한데 모인 낙엽들이 흘려보내는 메마른 풀내가, 쌓인 눈덩어리가 남기고 간 날것의 냄새가 창백한 마스크 벽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공간을 채우는 공간만의 생기는 그렇게 사람에게까지 다가가지 못했다. 마스크에 과학적으로 여과되어 코까지 무사히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은 그저 생기 없이 죽어있는 공기였다. 그것은 매우 무색무취했다. 그리고 그 어떤 곳을 가나 공기는 그저 똑같이 무색무취했다.
무색무취한 공기는 몸속으로 들어가며 사람까지 무색무취하게 만들었다. 그 어떤 공간에도 새로움과 신선함은 있지 않았다. 모든 공간이 똑같았다. 집이 바깥이었고 바깥이 집이었으며, 동시에 주차장이자 창고였다. 냄새가 만들어냈던 공간과 공간의 경계는 무너져버렸다. 그래서 몸은 공간과 공간을 움직이는데 정신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흑백의 무미한 하나의 세계였다. 소리만 넘쳐나는, 혹은 소리마저 없어진 흑백의 공간이었다. 동영상으로 보는 세계만도 못하게 느껴지는 날이 많아졌다. 공간이 달라져도 느껴짐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지루한 세계가 끝도 없이 지속되는 것에 불과하게 되었다. 냄새로부터 느낄 수 있었던 미묘한 변화의 설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어딜 가도 흑백이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방식으로 하나가 되어버린 흑백의 세계 아래, 마스크에 차단된 사람들의 입과 코는 더 이상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지 못했다. 공간을 채우는 생기를 공유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사람들은 소통하기 위해 겉을 떠도는 냄새의 생기보다는 각자의 속에 있는 관념만을 재차 꺼내게 되었다. 그렇게 철저히 개인화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같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냄새를 통해 공유할 수 있던 생기를 사람들은 더 이상 공유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마치 창을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신세가 되었다. 사람들은 가운데 창을 두고 서로 소리만 전달하는 신세가 되었다. 물리적으로는 예나 지금이나 가까이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차가운 벽이 세워져 있었다. 언제 벽이 철거될지도 알 수 없는 채로 사람들은 그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마스크는 반드시 필요하다. 여전히 공간을 유영하는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마스크는 절대로 필요하다. 그래서 하루빨리 마스크가 필요 없어지는 날이 찾아오기만을 바라고 있다. 작년에 비해 각 공간만이 지니던 색과 생기를 이미 절반 이상은 잃어버린 지금에 이르러,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그리고 더 빠르게 공간이 흑백으로 무색무취로 상하게 될 것이 두렵게 느껴진다. 색도 생기를 잃은 공간이 하루를 살아감에서 버텨감으로 변해가고 있는 사람들의 색도 냄새도 마저 잡아먹기 전에, 얼른 다시 냄새를 자유롭게 맡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