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물 위에 떠있기

불안의 수면 위에서

by 우인

어린 시절 수영을 배운 적이 있다. 수영을 하기 위해선 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강사는 나에게 몸에 힘을 풀고 물 위에 둥둥 떠있어 보라 하였다. 타고난 맥주병이었던 나는 가라앉을 것이 무서워 온 힘을 다해 허우적거리다 결국 가라앉기 일쑤였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는 수면 위에서 몸의 힘을 푸는 방법을 터득했고, 마침내 물 위에서 가만히 떠다니는 데 성공했다. 물 위에 떠다니는 그 기분은 침대에 누워있는 것보다도 훨씬 따뜻하고 포근했다.


최근 삶의 태도를 바꾸어 보기로 마음먹었던 이후, 나는 물 위에 떠있을 수 있었던 그 방법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았다. 그 수영장의 물덩어리가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차디찬 물덩어리는 색도 냄새도, 심지어 맛도 창백할 만큼 시퍼렇었다. 무엇이라도 집어삼킬 듯한 배고픔으로, 들어올 테면 들어오라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물덩어리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물덩어리의 으름장을 무시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움에 빠져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못했다. 결국 물덩어리는 두려움에 가득 찬 나를 가차 없이 집어삼키고 수영장의 밑바닥으로 끌고 갔다. 팔다리를 허우적거릴수록, 물덩어리는 더욱 빠르게 나의 모든 것을 가라앉혔다. 그런 물덩어리 한가운데서 가라앉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힘을 풀고 편안하게 누워있는 것뿐이었다.


내가 가진 불안이란 것도 물덩어리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 그 역시 온몸이 시릴 정도로 차갑고 또한 거칠다. 이성을 잃고 애처롭게 허덕이는 모습을 기대하며, 불안은 늘 나를 집어삼킬 기회만 집요히 노리고 있다. 불안을 의식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 짙은 불안 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허덕일수록 불안은 더욱 신나게 온몸을 집어삼킨다. 그렇게 새까만 감정의 밑바닥에 나를 가라앉히고 유유히 떠난다. 물론 나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감정의 밑바닥까지 쉼 없이 가라앉은 경험이 많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무기력하게 온몸으로 불안을 마시며 정신 차리는 것을 체념하곤 했었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가게 될 것만을 바라면서.


결국 지금 생각하자면 불안에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는 불안에 힘을 쓰면 안 되는 것이다. 불안이 짓는 무서운 인상에 겁먹고 그 얼굴을 응시하지 못하면 결국 끝까지 불안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다. 무섭더라도 한번, 지긋이 쳐다봐야 한다. 불안에 대한 무시는 그곳에서 시작한다. 불안이 무엇인지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것이 생각보다 별 것 아니었음을 깨닫는 것, 그래서 불안이 나에게 인상을 찡그려도 신경 하나 힘 하나 쓰지 않는 것, 그것이 감정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지 않는 방법이자 불안의 수면 위에서 둥둥 떠다닐 수 있는 방법이다.


lanes.jpg


물 위에 떠있는 방법을 터득한 이후, 나는 수영에 자신을 갖기 시작했다. 같이 수영을 배우는 친구들보다 한참 어설펐을지언정, 나를 집어삼키려던 물덩어리를 당당히 반으로 가르며 수영하는 것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수영을 할 때에는 수영장이 얼마나 깊은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마음대로 물덩어리를 가로지를 수 있느냐였다. 지금의 나 역시 그렇다. 더 나은 삶의 출발점은 불안의 수면 위를 마음 편하게 떠있는 것에 있다. 나를 노리는 불안 위에서 잠이 들 것처럼 유유히 떠다니며, 불안 위에서 불안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면 그 위에서 나의 삶을 마음대로 유영하는 것 역시 좀 더 즐거워질 것이다.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삶은 공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