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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병

그것은 길을 잃고 이리저리

by 우인

사랑이라는 감정은 나하고는 잘 들어맞지 않는 듯하다. 이십여 년의 삶을 살며, 나는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웃은 날보다 눈물 흘린 날이 훨씬 많았다.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어울릴 수 없는 사람만 골라 좋아하는 재주를 가졌었다. 거기에 겁도 많고 잡념도 많아 끝내 제대로 된 표현 한번 못하고 서럽게 끝난 적이 많았다.


홀로 시작하여 결국 이뤄지지 못하는 나의 사랑이 가진 가장 불쌍한 점은 앞으로 갈 곳도, 뒤로 돌아갈 곳도 없다는 것이다. 태어난 이상 목적하는 곳에 도착해야 하는 숙명을 가졌지만, 여정의 한가운데 갑작스레 목적지를 상실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그것은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아사하고 만다. 끝까지 목적하던 곳을 향해 다시 걷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에 죽기 직전까지 시달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의 죽음은 온전히 나의 정신적 빈사로 이어지게 된다. 매일마다 무엇인가 빈 기분이다. 그리고 빈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마음속 허공으로 데려올 수 없다는 절망감이 안에서부터 나를 말려 죽인다.



나의 사랑이 이어지기 힘들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나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짝사랑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누군가가 마음속에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을 나의 위에 올려다 놓는다. 나마저도 닿기 힘든 천장에 올려놓고는 마치 경외하듯 그 사람을 대한다. 이제 그 사람은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고 뛰어난 사람이며 세상에서 가장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나는 감히 그 사람에게 시시한 말을 걸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기엔 나는 너무나 초라하고 빈약한 사람으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짝사랑을 하는 사람이 보는 거울에는 갈수록 못생겨지는 사람의 얼굴만 보인다. 처진 눈과 뭉툭한 코, 툭 튀어나온 이는 사랑하는 하루가 지날수록 더욱 심해진다. 그리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쳐다보지 못할 만큼 못생겨지고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지 않는 것을 몰래 슬퍼하다 끝내 마음을 접어 내던진다. 애초에 내가 그 사람을 하늘 가까이 올려다 놓고 스스로를 지하 깊은 바닥에 세워둔 것임에도.


나도 서로의 눈이 맞닿을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든다. 물론 걱정을 바탕으로 한 사랑을 하고 싶지는 않다. 자석이 서로 끌어당기듯 자연한 사랑을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나라는 자석의 극은 이미 기능을 잃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물론 그 기능이라는 것은 스스로가 만들고 키워나가는 것이다. 나를 사랑해야 남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격언은 매우 잘 알고 있다. 그 격언에 빗대 생각을 해보자면 나는 나조차 사랑해본 적이 없으므로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도 잘 모른다고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스스로를 예뻐 여기던 경험이 없었으니 타인을 예뻐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는 저 말에 매우 동의한다.


지금도 길을 잃은 나의 사랑이 혼란에 겨워 이리저리 방황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강한 안타까움과 서러움을 느끼고 있다. 저것도 결국 어딘지 알 수 없는 땅 위에서 걸을 힘도 잃고 쓰러져 말라죽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 나조차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래서 매번 사랑이 태어나 여정을 떠나는 것을 뒤에서 배웅하는 것은 끔찍이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쯤 되면 이제는 사랑을 억제하고 나에게만 집중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것일 수 있겠지만, 아마 그렇게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미 말라죽어버린 사랑의 유해들이 썩어 거름이 되어, 훗날 새로운 사랑이 떠날 길 위에 꺾어다 마침내 전해줄 수 있는 꽃이나 한 송이 피워주길, 그것만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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