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찾아 떠난 여행
18일간의 베트남 여행
18일간의 여행을 계획했다. 우리 가족은 매년 한 번 베트남을 방문한다. 베트남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 하나, 편안함이다. ADHD를 가지고 있는 나는 서울의 일상이 벅찰 때가 많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은 나를 금세 지치게 하고, 사람들의 대화 소리마저도 나와 무관하게 내 감정에 스며들어 영향을 준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서울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조차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가 있다.
4년 전 처음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거기서 느낀 여유로움과 평안함은 내게 새로운 삶의 방식처럼 다가왔다. 그 이후로 해마다 이곳을 찾고 있다. 길가에 흔히 보이는 작은 카페, 오토바이 소리로 가득한 거리 풍경, 편안한 자연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의 흐름이 천천히 느껴지는 베트남의 공기는 서울에서의 나날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올해는 부모님과 함께 떠나기로 했다. 가족 여행에 부모님까지 동행하니 그 어느 때보다 설레는 마음이었다.
출발 준비와 새벽의 여정
2025년 1월 4일, 드디어 출발이다. 아침 7시 비행기라 공항까지의 이동 방식을 고민했다. 자가용을 공항 주차장에 맡길까, 아니면 공항 근처 숙소에서 하루를 보낼까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하다가 결국 콜밴을 예약하기로 했다. 편도 요금은 8만6천 원. 어른 네 명과 아이 두 명이 움직여야 했기에 가장 편안한 선택이었다.
새벽 4시에 기사님이 오기로 했다. 아이들이 새벽에 잘 일어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아내는 독감으로 한동안 고생했지만 다행히 조금씩 회복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감염을 막기 위해 할머니 댁에서 재웠다. 아내와 나는 같은 방에서 지냈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독감에 걸리지 않았다. 면역력이 갑자기 좋아진 걸까? 아니면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걸까?
새벽 3시 30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설렘 때문이었을까. 전날 준비해 둔 옷을 후다닥 입고 간단히 세수한 뒤, 부모님이 계신 옆동으로 갔다. 아이들은 2시부터 일어나 벌써 준비를 마쳤다고 했다. 새벽 공기는 꽤 차가웠다. 짐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경량 패딩만 입었더니 찬바람이 살을 에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도착한 콜밴의 따뜻한 공기가 온 가족을 감쌌고, 차 안의 편안함 속에서 모두 잠시 휴식을 취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은 언제나처럼 환하고 차가웠다. 길게 이어진 가로등 불빛과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 그 틈에서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새벽임에도 느껴졌다. 나는 머지않아 느낄 베트남의 한가로움과 따뜻함을 생각하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마치 그 한숨으로 마음속 복잡함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