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떠난 느린 시간들 28화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투본강이 보이는 야외 잔디밭에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왠지 운치 있을 것 같았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아이들은 햄버거를, 부모님과 아내, 나는 베트남식 반미를 먹었다. 바삭한 바게트 속에 다양한 재료가 가득 들어 있었고, 기름기가 많긴 했지만 맛은 훌륭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 먹는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점심을 가볍게 먹고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터라 배가 고팠다. 반미 한 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입맛이 까다로운 엄마조차 에그 반미를 드시면서 "우리 여기 있는 동안 날마다 이것만 먹자!"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나는 웃으며 "엄마, 이거 두 번 먹으면 익숙해져서 더는 맛있다고 못 느낄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럴 수도 있겠다며 웃었다.
해가 저물며 리조트에는 노란 조명이 하나둘 들어왔다. 어두운 하늘 아래 은은한 조명이 빛나자, 리조트의 분위기가 더욱 운치 있어졌다. 예전처럼 현지인이 기타를 치며 잔잔한 노래를 불러주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텐데, 문득 옛 기억들이 떠올랐다.
저녁 무렵, 호이안 야시장에 가기로 했다. 여행 중 내가 모든 비용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먹고 싶은 것이나 사고 싶은 것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사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정말 필요하지 않은 것은 쉽게 사주지 않았다.
그때,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놀러 와서 기분이라는 게 있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피너 같은 것이라도 하나 사 주는 게 어때?" 아내는 쉽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이 말을 하면서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나는 단번에 거절하지 않고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아내가 "얼마인지라도 물어보자"라고 했을 때, 나는 "물어보는 순간 아이들은 사줄 거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결국 사줘야 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여행 와서 이런 거 하나씩 사는 기분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1~2천 원으로 아이들은 기쁨과 추억을 살 수 있는데, 내가 돈을 아낀다고 해서 그걸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이 들었다.
이 글을 수정하는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여행 경비를 전적으로 관리하면서 내 뜻대로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이 깊어졌다. 다음 여행에서는 아이들에게도 일정 금액을 주고 스스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야시장에서 엄마가 아이들에게 뭐라도 사주고 싶다며 돈을 달라고 하셨다. 아이들은 철판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 했다. 한국 돈으로 약 4천 원 정도였는데, 가격이 다소 비싸게 느껴졌지만, 아이들의 추억을 위해 기꺼이 사 주기로 했다.
예준이는 아이스크림을 많이 받고 싶어 베트남어로 연습했지만, 발음이 어려워 자신 없어 했다. 결국 한국어로 "많이, 많이!"라고 외쳤지만,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분은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번역기를 이용해 "많이 주세요"라고 전달했다. 아이스크림 만드는 총각은 알겠다고 했지만, 우유를 더 넣어 주지는 않았다.
예온이가 먼저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그런데 막 먹으려는 순간, 아이스크림 위에 올려져 있던 오레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나밖에 없는 과자가 떨어지자 가족들은 모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아무도 "과자 하나 더 올려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단순히 언어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 더 달라고 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예준이도 아쉬워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아이스크림 만드는 분이 환하게 웃으며 오레오 하나를 다시 올려주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정작 예온이는 오레오에 관심이 없었다. 이 모습을 본 예준이는 "그럼 내가 먹을게!"라고 말하며 동생의 아이스크림 위에 있던 오레오를 집어 들었다. 예온이는 흔쾌히 먹으라고 했고, 예준이는 기뻐하며 오레오를 한입 베어 물었다.
아이스크림을 한입 먹은 아이들은 "너무 맛있다!"며 감탄했다. 그리고 할머니께 "할머니, 고맙습니다!"라고 밝게 인사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내 선택이 옳았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작년에도, 올해도, 아이들은 호이안에서 이 철판 아이스크림을 먹은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길 바랐다.
호이안 거리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작년과는 사뭇 달랐다. 작년에는 한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올해는 거리가 한산했다. 소원배도 많이 떠 있지 않았다.
한적한 거리는 좋았지만, 불빛으로 가득했던 소원배의 풍경이 예전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다. 대신, 올해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모두가 사진작가라도 된 듯, 커다란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때 다낭에서 사업을 해볼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모습을 보니, 의욕이 사그라졌다.
야시장에서는 딱히 살 만한 물건이 없었지만, 아름다운 조명과 활기찬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이색적이었고, 이곳의 문화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호이안의 밤을 온전히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