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냉장고 정리를 했다. 나에게 냉장고 정리란 가장 하고 싶으면서도 가장 하기 싫은 집안일 1순위이다.
음식을 하려고 냉장고를 열 때마다 번잡스러운 배치에 한숨부터 나오고 원하는 식재료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들쑤신다. 그럼에도 냉장고 정리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냉장고 정리를 마음 먹은 계기가 바로 오늘 생겼다. 최근에 마트에서 쌈장을 꽤나 큰 걸 샀는데 된장찌개를 끓이려고 보니까 집에 쌈장이 있었던 것... 심지어 선물로 들어온 꽤 좋은 쌈장이였다. 평소에는 쌈장을 먹을 일도 별로 없고, 게다가 나는 저당쌈장을 먹고 짝꿍은 일반 쌈장을 먹어서 일부러 일반 쌈장은 작은 걸 사두는 편인데 그날따라 작은 쌈장이 다 팔리고 큰 쌈장만 세일 하길래 처음으로 큰 쌈장을 샀던 것이다. 왜 하필 이 타이밍에.... 그나마 소비기한이 약 1년 정도 넉넉히 남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앞으로는 고기를 열심히 먹여야 할 것 같은 느낌.
냉장고 정리를 하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역한 음식물 쓰레기들의 메들리를 직접 눈으로 또 손으로 온전히 느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집은 식재료를 많이 사두는 편도 아니고 냉장고 털이 느낌으로 집에 있는 재료로 최대한 해먹으로 하기 때문에 그나마 음식물이 덜 쌓이고 덜 썩는 편인데도 이번 냉장고 정리 때 1L짜리 쓰레기 봉투 3개가 나왔다. 문득 다른 집의 냉장고 상태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다이어트 한다고 사 놓은 양배추, 먹지도 않는데 받아와서 썩힌 복숭아, 쿠팡 로켓 프레쉬 배송 가격 맞추려고 사놓고 한 번 쓰고 남은 손질 무 등을 아깝지만 과감히 버렸다. 내 장점 중 하나, 잘 버리기.
냉장고의 가장 위칸은 음료수로 가득 채웠고(짝꿍의 로망이다.) 두 번째 칸은 식재료, 세 번째 칸은 장류, 네 번째 칸은 계란과 소스류로 정리해 두었다. 냉동실은 맨 위 칸 아이스크림, 두 번째 칸은 조리만 하면 되는 즉석식품, 세 번째 칸은 요리를 해야하는 냉동 식재료, 마지막 네 번째 칸은 얼음이 차지했다.
쌈장 사태와 같은 바보 같은 짓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번엔 냉장고에 붙일 수 있는 작은 화이트 보드를 구매해서 냉장고와 냉동고에 칸 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적어두었다. 이 결심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결심이 습관이 되는 그날까지 유지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