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펭쟈씨 Aug 22. 2024

식물 키우기; 초보 식집사와 고통받는 식물들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 중 하나가 식물이 좋아지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다들 알고 있을 것 같다. 아직도 어리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점점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걸 보니 이 말은 어쩌면 정설일지도? 원래도 꽃을 좋아해서 짝꿍한테 꽃다발을 받을 때면 과거에도 지금도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고 행복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달라진 점이 한 가지 있는데 꽃다발 대신 화분을 사달라고 부탁하게 된 것이다. 한 날 꽃시장을 갔는데 화려한 색채와 모양의 꽃보다 수수하고 푸른 화분들에 더 눈이 갔다. 그래서 그날 꽃다발을 사주겠다고 나를 꽃시장에 데려갔던 짝꿍은 꽃다발 대신 화분을 사주게 되었다.


 식물을 들였다 하면 식물들을 죽이는 식물킬러들이 있다고 하던데 다행히 난 그렇진 않았다. 오히려 죽어 가던 식물들을 발견해 무심한 정성을 들이고 나면 새잎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깐 본가에 살았던 기간이 있었는데 그때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던 식물을 돌보았다. 새잎이 하나, 둘 돋더니 어느샌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이때였던 같다. 생명의 경이로움과 무언가를 돌보고 그것이 자라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을 진하게 느끼며 나는 식집사의 길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달리 많은 식물을 키우고 있진 않다. 짝꿍과 맞이한 밸런타인데이 뜬금없이 짝꿍이 선물해 준 스투키, 짝꿍이 어느 날 당근에서 사 온 홍콩야자, 꽃시장에서 사 온 율마, 그리고 쿠팡 로켓프레시 마감세일로 구매한 천냥금, 나한송, 싱고니움이 전부이다. 그래도 베란다를 때마다 아이들을 보면 귀엽고 건강하게만 자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인가..(아니다.) 


 식물을 키우면 좋은 점은 작은 정성에 최대의 만족감을 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싶다. 그냥 때 되면 물 주고 가끔 영양제 주고 하다 보면 알아서 푸르르게 자라난다. 내가 이 아이들을 죽이지 않고 이만큼 길러냈다는 뿌듯함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푸르른 힐링은 내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이다. 나를 귀찮게 하지도 않고 하루이틀 물을 주지 않아도 쉬이 죽지 않는다. 생각보다 집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에게 허락된 작은 여유인 것 같아 한 번 베란다에 들어가면 아이들을 보면서 집안일 농땡이를 부려본다.

이전 04화 요리하기; 황금(레시피)을 찾아 떠나는 모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