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증거 중 하나가 식물이 좋아지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다들 알고 있을 것 같다. 아직도 어리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점점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걸 보니 이 말은 어쩌면 정설일지도? 원래도 꽃을 좋아해서 짝꿍한테 꽃다발을 받을 때면 과거에도 지금도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고 행복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달라진 점이 한 가지 있는데 꽃다발 대신 화분을 사달라고 부탁하게 된 것이다. 한 날 꽃시장을 갔는데 화려한 색채와 모양의 꽃보다 수수하고 푸른 화분들에 더 눈이 갔다. 그래서 그날 꽃다발을 사주겠다고 나를 꽃시장에 데려갔던 짝꿍은 꽃다발 대신 화분을 사주게 되었다.
식물을 들였다 하면 식물들을 죽이는 식물킬러들이 있다고 하던데 다행히 난 그렇진 않았다. 오히려 죽어 가던 식물들을 발견해 무심한 정성을 들이고 나면 새잎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깐 본가에 살았던 기간이 있었는데 그때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던 식물을 돌보았다. 새잎이 하나, 둘 돋더니 어느샌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이때였던 것 같다. 생명의 경이로움과 무언가를 돌보고 그것이 잘 자라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을 진하게 느끼며 나는 식집사의 길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달리 많은 식물을 키우고 있진 않다. 짝꿍과 맞이한 첫 밸런타인데이 때 뜬금없이 짝꿍이 선물해 준 스투키, 짝꿍이 어느 날 당근에서 사 온 홍콩야자, 꽃시장에서 사 온 율마, 그리고 쿠팡 로켓프레시 마감세일로 구매한 천냥금, 나한송, 싱고니움이 전부이다. 그래도 베란다를 열 때마다 이 아이들을 보면 귀엽고 건강하게만 자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인가..(아니다.)
식물을 키우면 좋은 점은 작은 정성에 최대의 만족감을 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싶다. 그냥 때 되면 물 주고 가끔 영양제 주고 하다 보면 알아서 푸르르게 자라난다. 내가 이 아이들을 죽이지 않고 이만큼 길러냈다는 뿌듯함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푸르른 힐링은 내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이다. 나를 귀찮게 하지도 않고 하루이틀 물을 주지 않아도 쉬이 죽지 않는다. 생각보다 집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에게 허락된 작은 여유인 것 같아 한 번 베란다에 들어가면 아이들을 보면서 집안일 농땡이를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