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집안일은 어느 시점이 되면 더 이상 레벨업을 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가장 편한 방식이나 만족하는 방식을 찾으면 그 고집을 이어가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안일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끝없이 레벨업을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요리'이다.
지금도 썩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요리에 대한 관심이나 욕심 치고는 정말 형편없는 솜씨였다. 나는 친구들 모두가 알아주는 막입이라 식재료의 누린내나 잡내 같은 것을 잘 인지하지도 못하고 혀도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달거나 짜기만 하면 보통 맛있다고 느꼈다.(지금도...) 그래서 난 내가 하는 요리가 맛의 디테일을 살리지 못하더라도 대부분 맛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러던 나에게 살짝의 미션이 찾아오는데 바로 짝꿍을 만난 것이다. 짝꿍은 기본적으로 식욕이 강하지 않다. 그와 동시에 음식 냄새엔 꽤나 민감하고 미각세포가 맛탱이 가버린 나와 달리 아직 살아 있어서 특히 식사로 취급되는 음식이 단 것을 싫어한다. 이런 사람을 만남으로 인해 '내가 만든 요리로 만족시키기'라는 미션이 생겨 버린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요즘에는 유튜브에서 여러 스승님을 둘 수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가 발달하면서 은둔 고수들이 다양하고 참신한 레시피들을 쉽게 알려주는데 세상의 발전에 감사하고 살고 있다. 한편으로는 과거 손맛 없는 가정주부들은 자신의 과업을 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근데 가끔 이런 유튜브 레시피를 보고 따라 했음에도 종종 음식이 맛이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럼 대번에 "이거 원래 맛없는데 조회수 때문에 맛있다고 뻥 치는 거 아냐?!"라고 당당하게 남 탓을 하곤 한다. 그래도 내가 요리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고 꾸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멱살 잡고 끌고 가주시는 유튜브 스승님들이 있어 다행이다.
나와 짝꿍은 같이 살면서도 평일에는 거의 한 끼도 같이 안 먹는다. 우린 아침을 먹지 않고 나는 저녁을 4시에 먹고 하루의 식사를 끝낸다. 짝꿍은 아무리 집에 빨리 와도 저녁 5시 반, 퇴근하고 운동까지 하고 오면 거의 7시에 가깝기 때문에 나와 저녁조차 같이 먹을 날이 없다. 그래서 원래 처음 같이 살 땐 짝꿍이 자기 저녁은 신경 쓰지 말라고 했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짝꿍은 식욕이 없는 편이고 그냥 적당히 배만 채우면 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자취하던 시절에도 저녁으론 단백질 셰이크와 고구마 또는 계란으로 저녁을 때우는 편이었다.
짝꿍이 하는 "내 저녁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라는 말은 정말 진심 100%이기 때문에 사실 그냥 내버려두어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내가 요리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고 저런 걸로 끼니를 해결하는 짝꿍을 보며 측은지심 또한 들었기에 어느 시점부터는 짝꿍이 오기 전에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요리 실력이 부쩍 늘었던 것 같다. 함께 는 것이 있다면 짝꿍의 몸무게. 뿌듯하다.
집안일을 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거나 '와! 재밌다!'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요리가 거의 유일하게 그런 느낌을 준다. 여기에 액젓 대신 새우젓을 넣으면 더 맛있겠지? 음식이 좀 신 것 같은데 설탕으로 맛을 잡아야 할까? 하면서 다양한 고민들을 하면서 내 실력도 함께 성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아직은 유튜브와 레시피북을 참고하며 요리하지만 언젠가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요리해도 만족스러운 맛을 내는 우리 집 최고 셰프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