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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쟈씨 Aug 01. 2024

각이 생명 ; 빨래 개기

요리를 제외하고 나한테 제일 좋아하는 집안일을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 빨래 개기이다.


 빨래를 너는 것은 꽤 귀찮아하는 편이지만 빨래가 일단 다 마르고 나면 주저하지 않고 빨래를 걷어서 개고 있어야 할 위치에 위치시킨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거실에 건조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보기 싫어서이다. 우리 집은 현재 베란다가 있긴 하지만 한 평 정도 되는 작은 크기라 건조대를 넣는다 해도 사람이 들어가서 옷을 널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다. 그래도 거기엔 천장형 자동 건조대가 있어서 건조대가 차고 넘치는 날엔 쏠쏠하게 활용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제목에서처럼 빨래 개기 자체를 즐기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속옷과 수건을 함께 빨고 색옷 따로 흰옷 따로 빨래를 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수건보단 옷을 개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수건은 짝꿍이 선호하는 스타일로 개고 옷은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개기 때문이다. 즉, 내 맘대로 안 해서 하기 싫어하는 청개구리 심보.


좌) 내 스타일                   우) 짝꿍 스타일

물론 짝꿍이 그 스타일을 강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봐도 짝꿍스타일이 풀리지도 않고 심미적으로도 예뻐 보여서 스스로 선택한 귀찮음일 뿐... 그래서 왠지 나도 모르게 수건 빨래는 짝꿍이 퇴근하고 나면 건조대에서 걷게 된다. (같이 개 줘 짝꿍아)


반면 수건과 다르게 옷을 갤 때는 짝꿍에게 손도 못 대게 한다. 어차피 내 맘에 들지 않아서 내가 다시 다 개게 되기 때문. 그렇다고 짝꿍이 옷을 잘 못 개냐? 그건 또 아니다. 그냥 이상한 디테일에 이상하리만치 집중하는 여자를 만나서 자신의 옷을 자기 마음대로 만지지 못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 



디테일에 집착하는 여자의 옷 개기

짝꿍과 나는 옷장을 따로 사용하는데 출근이란 걸 하지 않는 나는 옷장에 옷이 흐트러질 일이 별로 없지만 매일 출근을 하고 옷 입는 걸 좋아하는 짝꿍의 옷장은 종종 옷들이 흐트러진다. 그럼 나는 또 그 꼴을 두고 보지 못해 옷장에 있는 옷을 죄다 꺼내 다시 개고 넣고를 반복한다. 짝꿍은 옷이 많아서 이렇게 한 번 옷장 푸닥거리를 하고 나면 다음날 1kg이 빠져 있다. 옷장 정리 다이어트 대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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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빨래 개는 걸 좋아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잡생각이 사라져서인 것 같다. 잠깐 MBTI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N인 사람이라 24시간 내내 잡생각을 하는데 빨래 갤 때는 그 잡생각이 사라지는 것 같다. 빨래를 갤 때는 현실에 있는 문제들이 잊히고 그거 어떻게 하면 빨래의 각이 더 예쁘게 나올지, 갠 옷들이 어떻게 하면 더 통일성을 갖출지만 몰입하여 연구하는 것 같다.


나는 어제 색빨래를 했기 때문에 이제 그만 빨래를 개러 가야겠다. 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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