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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에서 폭군의 셰프까지

조수진의 K푸드 잉글리시 K푸드 드라마로 세계를 요리하다

by 조수진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가 식기도 전에 드라마 ‘폭군의 셰프’는 한식 판타지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며 K푸드의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적인 프랑스 요리 대회에서 우승한 스타 셰프 연지영(임윤아 분)이 오래된 요리서 망운록을 통해 조선 시대로 돌아가 절대 미각의 폭군 이헌(이채민 분)과 맞선다는 독특한 주제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음식은 사람을 움직이는 권력, 갈등, 사랑, 역사까지 접시에 담아내며 매회 화면으로도 맛을 느낄 수 있는 시각, 청각, 미각 모두를 자극하며 몰입감을 높이고 있다. 된장국과 나물처럼 서양 시청자에게 생소한 한식도 프랑스식 플레이팅과 결합해 ‘이렇게 세련될 수도 있구나!’라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덕분에 ‘케데헌’이 김밥, 설렁탕, 냉면, 핫도그와 같은 일반적인 대중적 K푸드를 소개 했다면, ‘폭군의 셰프((Bon Appétit, Your Majesty)’는 전통 한식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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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대장금 화면 캡쳐


사실상 K푸드를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린 드라마는 2003-2004년까지 방영된 ‘대장금(Jewel in the Palace)’이었다. 이 드라마는 이란(80%), 스리랑카(99%), 튀르키예(98%), 홍콩(47%),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는 마지막회 10만 명 이상 시청이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궁중 요리를 세계적으로 알림과 동시에 한류 열풍을 주도한 드라마로 손꼽힌다. “상궁마마, 분부를 받들겠사옵니다(Yes, Head Court Lady, I shall obey your order.)”, “폐하, 소신이 아룁니다(Your Majesty, I humbly report.)”와 같이 한국식 고어체는 다소 현대적이고 중립적인 영어로 번역되어 해외 시청자들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던 점도 인기의 비결이었다. 또한 ‘궁중 병과’는 ‘Royal Pastries’, ‘수라상’은 ‘Royal Table’, ‘산해진미’는 ‘Delicacies from both land and sea’로 번역되어 낯선 한식이 시각적으로 쉽게 상상되도록 표현된 점 또한 주목할 만했다. 이러한 번역 덕분에 해외 관객들은 음식의 맥락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고, 한식은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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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별그대 천송희 치맥 화면 챕쳐


대장금의 열풍이 있고 10년 후인 2013-2014년에 방영된 ‘별에서 온 그대’에서 천송희(전지현 분)의 대사 한 마디가 또 다른 한식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눈 오는 날엔 치맥이지!(A day when it is snowing is just perfect for our chimaek time.)”라는 대사 한마디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치맥 열풍을 불러온 것이다. ‘Chimaek’이라는 발음이 그대로 사용되며 한국 음식뿐 아니라 한국의 생활문화까지 함께 퍼져나갔다. CNN에서는 “Chimaek is not just food, it’s a social ritual in Korea.(치맥은 그냥 먹는 음식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문화이자 의식 같은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치맥 문화를 집중 조명한 사례도 있었다. “친구들과 한강에서 치맥하기”, “월드컵 거리응원에서 치맥 즐기기”와 같은 공동체적 분위기가 외국인들에게는 무척 신선하게 다가갔고, 한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의 방식과 정서를 담는 매개체로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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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화면 캡쳐


K푸드의 인기를 이어간 2022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김밥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드라마로 꼽힌다. 극 중 우영우가 “김밥은 믿을 수 있어요.(Kimbap is reliable.) 안에 뭐가 들었는지 한눈에 보이잖아요. 갑자기 매운 고추가 나올 일도 없고, 단무지는 단무지고, 햄은 햄이고, 계란은 계란이에요. 그래서 전 김밥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안정과 위로의 상징으로 김밥을 그려냈고, 이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에게 김밥이 어떤 음식인지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의 Trader Joe’s, Costco 같은 대형마트에서 김밥 상품이 빠르게 품절된 것은 실제 소비 열풍으로 이어졌음을 보여 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2019년 영화 ‘기생충’에서 등장한 짜파구리 역시 흥미로운 번역으로 K푸드를 알렸다. 라면과 우동을 합친 Ram-don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퓨전 요리의 이미지를 부여했고, 부의 상징으로 사용된 한우 채끝살은 ‘Premium Korean beef sirloin’로, 최상급을 알리는 일반 단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현재 방영 중인 ‘폭군의 셰프’에서는 한우 채끝을 기생충에서 번역한 것과는 다르게 ‘한우(Hanwoo)’라고 표기하였다. 이는 일본의 ‘와규(Wagyu)’와 같이 한국 소고기 부위를 브랜드화하여 Hanwoo로 소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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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기생충 짜파구리 화면 캡쳐


지금까지 해외에서 각인된 K푸드가 김치, 불고기, 치맥, 김밥 같은 대중적이고 스트리트 푸드적인 이미지였다면, ‘폭군의 셰프’는 궁중 음식과 정찬 문화를 전면에 내세워 한식을 미식과 예술의 영역으로 넓혔다. 한우 채끝( Hanwoo beef sirloin), 된장국(Doenjang soup), 양념된 나물(Wild greens dressed with sesame oil)처럼 고유 명칭을 그대로 살리거나 디테일을 더해 참기름이 가미된 나물의 고소한 맛을 자막으로 맛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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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폭군의 셰프 화면 캡쳐


드라마의 인기는 얼마나 감정 이입을 하도록 하느냐에 달려 있다. 시청자는 왕이 숟가락을 드는 순간 함께 긴장하고, 셰프가 소금을 한 꼬집 넣는 호흡까지 함께 따라가며 “저 음식의 맛은 어떨까? 나도 먹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게 한다. 화면 속 한 그릇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가는 K푸드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

K푸드의 여정은 전통에서 시작해 대중적 열풍을 거쳐 이제 미식과 문화까지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K 드라마가 꾸준히 있어 왔다. 한류의 힘이 단순한 유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 드라마, 사극, 현대물 등 장르를 넘나들며 외국 시청자들이 한국 문화 속으로 이입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글: 조수진

조수진 일미푸드 대표, 조수진영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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