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의 K푸드 잉글리시 ⑨ 2025 APEC 경주 정상회의 공식 만찬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11년 만의 중국 국빈 방한, 젠슨 황의 깜부 회동, 차은우, 지드래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무대 등 K-컬처 총출동으로 2025 APEC이 지난 11월 1일에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삼성동 회동의 ‘치맥’, 제주 ‘감귤’, 경주 ‘황남빵’뿐만 아니라 에드워드 리 셰프가 총괄한 식탁 위에서의 외교 또한 연일 화제다.
마지막 밤의 만찬 메뉴는 경주 천년 한우(Hanwoo), 완도 전복, 곤달비 비빔밥(Bibimbap)으로 한국의 맛을 선보였고, 디저트로 제공된 된장 캐러멜 인절미는 나전칠기(Najeon chilgi) 자개함에 담겨 ‘먹는 예술품’이 되었다. 예전에는 premium Korean beef 혹은 일본어인 Wagyu(와규)가 ‘한우’라는 명칭을 대체했었고, 비빔밥은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Mixed rice bowl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으며, 나전칠기는 mother-of-pearl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이번에는 모두 한국식 발음 그대로 표기 되었다.
<사진 지드래곤이 무대를 펼치고 있다 - 화면캡쳐>
영문으로 된 메뉴는 읽기만 해도 감탄을 자아내게 되며 한국의 K-푸드를 전하기 위한 퓨전 음식임을 알 수 있다. 전식(starter)은 “Korean Black-Bone Chicken Dumpling with Porcini Consommé and Truffle Oil(오골계 만두와 포르치니 콘소메, 트러플 오일)”이었다. 까만(烏) 뼈(骨)를 가진 닭(鷄)이라는 의미의 오골계(烏骨鷄)인 Black-Bone Chicken, 포르치니(Porcini) 콘소메(Consommé)와 트러플(Truffle) 오일의 조합은 과연 어떤 맛일지 메뉴를 읽으며 상상하게 된다. 포르치니는 라틴어인 Porcus(포르쿠스)에서 유래한 이탈리아어로 복수형인 porcini로 불린다. 이 말은 ‘작은 돼지’라는 의미인데 살찐 어린 돼지의 다리를 연상케 한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버섯의 왕(King of Mushrooms)’으로 불리며 유럽 3대 버섯 중 하나로 꼽힌다.
< APEC 만찬> 포르치니 (위-오른쪽)
한국에서는 ‘콘소메’를 콘(corn)이라는 글자 때문인지 ‘옥수수 맛’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라틴어인 ‘consummare’는 con-(함께 together, with)과 summa(합계sum, 정상top, 최고highest)가 합쳐진 말로, ‘완성하다, 끝내다, 완벽하게 하다(to complete, finish, perfect)’를 뜻한다. 따라서 콘소메는 옥수수 수프가 아니라 ’완성된 수프‘를 뜻한다.
이는 ’태양왕‘ 루이 14세(Louis XIV)가 셰프에게 “내 왕실의 모습이 비칠 만큼 맑은 수프를 만들라!(Create a soup so clear that I could see my royal reflection in it!)”고 명해, 육수를 극도로 농축하고 달걀 흰자로 완벽하게 맑게 걸러내는 콘소메 기법의 수프가 탄생하게 됐다. 콘소메는 맑게 거른 육수가 특징이다.
<APEC 만찬 한우의 메인 디시>
메인 디시로는 ‘Premium Gyeongju Hanwoo Sirloin Steak with Roasted Korean Pumpkin Purée, Pine Mushroom(프리미엄 경주 한우 등심 스테이크 구운 단호박 퓨레와 송이버섯을 곁들인)’이었다. 여기서 프랑스어 퓨레(Purée)의 어원 역시 라틴어 ‘purus’에서 시작되었으며 ‘순수한, 깨끗한, 섞이지 않은 (pure, clean, unmixed)’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걸러서 만든 음식(strained/purified food)’으로 과거 분사가 명사화된 것이다. 마치 “김치찌개”를 그냥 ‘김치’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끝으로 “Goheung Yuzu Sorbet & Barley Mousse from Danseoksan with Dark Chocolate Crust(고흥산 유자 소르베와 단석산 보리 무스 다크 초콜릿 크러스트)”가 디저트로 됐다. 흔히 sherbet(샤베트)로 불리는 sorbet는 아랍어인 sharba(a drink)‘에서 출발한다. 이는 여러 단어가 차용됨과 동시에 냉각 기술이 발전하면서 얼린 형태로 즐기는 디저트, 달콤한 음료로 발전해 현재는 ‘얼음 디저트’로 통한다. 마지막 건배주로 와인 잔을 가득 채운 것은 ‘Tiger Yuzu Raw Makgeolli(호랑이 유자 생막걸리)’였다. 이 역시 한국의 발효주인 막걸리를 한국식 표기 그대로 표기했다.
<APEC 만찬 나전칠기로 제공된 인절미>
경주의 명물로 떠오른 황남빵은 CNN에서 ‘Hwangnam Bread’라고 표기하며 이를 “Gyeongju bread filled with sweet red bean paste”로 소개했다. 임금 황(皇), 남쪽 남(南)으로, 황남동은 신라 왕궁(월성)의 남쪽에 위치한 마을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에 창업주가 황남동에서 빵집을 개업해, 처음에는 이름 없는 팥빵으로 판매하다가 정식 상품명을 등록했다. 국화꽃 모양으로 겉바속촉(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달걀 크기의 빵으로 일본식이 아닌 ‘원조 한국 팥빵’이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2025 APEC 경주의 마지막 밤은 단순한 외교 무대를 넘어, 한국의 맛과 문화가 세계 정상들의 입맛과 마음을 움직이게 한 ‘식탁 위의 한류’였다. 황남빵부터 나전칠기에 담긴 인절미까지, 86년 전통의 팥빵과 천년 한우가 글로벌 무대에서 당당히 K-푸드를 널리 알린 미식의 밤이었다.
시잔: 황남빵
(주) 일미푸드 대표이사 조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