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소소한 칼럼니스트가 유진성 무협에 대한 글을 쓰기까지

by 김우현


웹소설이나 경소설의 경우, 때때로 순문학에 비해 그 가치가 평가절하되곤 한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순문학에 비해 훨씬 빠른 연재의 속도. 회차별로 나뉘어 훨씬 짧아진 호흡과 기고 방식, 그 외에도 작가의 검증 정도를 따져 보자면 그런 평가들을 덮어놓고 부정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모든'이라는 말이 들어간다면, 필자가 늘 예외로 꼽던 소설가는 유진성이다.


유진성은 <검에 비친 달을 보다>, <시리도록 불꽃처럼>, <칼에 취한 밤을 걷다>, <권왕환생>을 거쳐 최근작 <광마회귀>를 쓴 소설가다. 필자는 나머지 소설은 약 5 회독, <광마회귀>의 경우 최근 기준으로 3년간 17 회독을 마무리지었다.

기승전결이 이미 마무리되어 뇌리에 박혀 있는 '소설'을 그리 많이 읽긴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광마회귀>는 고전 명작에게서 가끔 보이는 특성인 읽을 때마다, 그때 내가 경험하고 처해 있는 환경이 달라질 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체험을 제공했다.

늘 캡처하는 부분이 달랐으며, 와닿는 부분이 달랐다. 때로는 이자하나 진소한의 기행에 감탄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유기일과 임소백의 '어른'됨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자하가 울분을 토하는 말들에서 전태일을 발견한 적도 있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군자 사부와 마교주를 보며 프롬이 말한 소유하는 양식의 뒤틀린 애정을 느꼈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하루 또 하루 강해지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는 알베르 카뮈가 주장한 '저항하는 인간'을 찾았다.


무엇보다도 서사적 텍스트를 쓰는 것은 자기 인식의 풍부한 원천이 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우는 일은 여러 가지 매우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차원은 선택된 특정 주제를 놓고 쓰는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쓸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줄거리로 삼을 것인지 또는 역사적 소설을 쓸 것인지 등등...
글쓴이가 무엇을 선택하는지는 겉으로 보기에 그저 단순한 우연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글쓴이가 어떠한 갈등을 겪고 있고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갈망과 행복을 원하는지가 주제의 선택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글쓴이는 자신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 <자기 결정>, 페터 비에리


그러다 보니 궁금해지는 것은 유진성 작가 그 자체였다.

유진성 작가가 강조하는 내용은 큰 틀에서 달라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武)를 잘 묘사하는 작가는 흔하지만 '협'(俠)은 드물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작가 본인의 치열한 고찰 없이 나오기 힘든 영역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짧은 사유를 드러내며 평면적이고 유치한 주제가 될 수도 있는 '협행'과 '선의'의 문제에 대해 유진성은 본인의 가치관을 서사적 텍스트를 통해 드러내고 주인공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다년간 아트인사이트, 투데이피플 등 다양한 뉴스 사이트들이 부족한 필자에게 기고의 장을 내어 주었다. 다양한 문학과 사회현상, '밈' 등에 대한 리뷰를 하며 늘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던 것은 내 글에 큰 영향을 준 유진성의 소설을 리뷰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임소백이 '신검'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제자라 부르신 적은 없지만 늘 스승이라 생각하는 (ㅋㅋ). 다만 한 편의 글로 마무리하기엔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여러 글을 시리즈로 모아 비교적 가볍게 리뷰하고자 한다면 브런치가 훨씬 적합하다 판단하여 이곳에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광마회귀> 등 유진성 작가의 세계관과 소설을 매력적으로 느끼신 분들이 많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필자는 권위자도 아니고 등단한 작가도 아니다. 그렇기에 느끼고 표현하는 소설에 대한 일종의 독후감으로 너그러이 받아들여주시고, 같은 의견에는 공감을, 다른 의견은 여과 없이 댓글 달아주시면 또 한 번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생산적인 토론 역시도 환영한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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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