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역사책 읽기를 참 좋아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고려왕조500년> 같은 역사 만화책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역사스페셜 같은 다큐를 즐겨 보기도 했다. 한국사는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서양사는 영국사, 프랑스사, 로마사를 좋아했다(이렇게 놓고 보니 웬만한 역사는 다 좋아한 듯하다).
학교에서도 역사 시간만 되면 눈이 초롱초롱해졌고 그 기세에 힘입어 나는 수능 때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를 택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일치시키는 것은 참 어려웠다. 사탐과목에서 항상 1등급을 받던 내가 수능 때 미끄러졌고, 결국 한 단계 낮은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던 중, 모 방송사에서 하는 모 드라마가 역사왜곡으로 시끌시끌했다. 역사상 최악의 인물을 선한 인물로 미화했다는 이유로. 다행히, 가상인물로 바뀌기는 했지만 시청률이 잘 나오면서 역사왜곡 논란은 사라져 갔다. 역사왜곡에 대해 언급할 때면, 사람들은 나를 '민감한 사람' 취급했다.
'그래. 재밌으면 되는 거지. 재밌으면 되는 거야.' 라고, 나를 회유할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한 번 소설 써볼까? 재미도 살리고 역사도 살리는 소설을.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어릴 때, '나는 대통령이 될 거야!' 같은 현실성 없는 꿈인 줄만 알았다. '설마 되겠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소재를 계속 상상하고 구상하다 보니 어느새 7년이 흘렀다. 안 될 줄 알았는데, 하다 보니 되더라. 어느덧 줄거리는 완성되었고 자료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하나의 시대만 파고든 탓일까. 어릴 때부터 공부했던 역사 내용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역사저널 그날>에서 교수님들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최근 설민석 강사가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논란이 되었던 로마사 파트도 사실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주로 기업의 역사를 다루는 출판사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역사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던 탓일까. 역사 관련 도서를 많이 읽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역사의 쓸모>,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 <사피엔스> 등 네이버 책 역사코너에 올라온 베스트셀러를 모조리 섭렵한 뒤, <갈리아 전기> 같은 고전 역사책도 읽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번역가의 꿈
네이버 책 역사코너를 내용으로 분류하면 한국사와 세계사로 나눌 수 있다. 작가로 분류하면 한국 작가와 외국 작가로 나뉜다. 그런데 외국 작가에 비하면 한국 작가는 주로 TV에 나온 유명인에 치우쳐져 있었다. 반면 외국 작가는 그렇지 않았다. 유발 하라리, 재레드 다이아몬드 같은 작가도 <사피엔스>, <총균쇠> 같은 작품으로 유명해진 사람들이었다. 즉, 외서의 경우 사람들은 작가의 이름보다 내용이나 주제를 보고 읽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어쩌면 제2의 유발 하라리가 있을지 몰라.
대학을 졸업한 후 독서는 공부가 아니라 쾌락으로 자리 잡았다. (출처: 픽사베이)
나에게 또 다른 포부가 생겼다. 좋은 외서,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다루는 외서를 발굴하겠다는 포부가. 하지만 하고 싶은 일보다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조언이 떠올랐다. <해리포터> 같은 문학은 곧잘 읽었지만, 전문서적 같이 난도 높은 원서의 문맥 파악을 어려워했던 내게 필요했던 능력은 번역 능력이었다. 그래서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강주헌 선생님의 <강주헌의 번역작가 양성 63기>, class101에서 서메리 선생님의 <영어 원서 직접 번역하고 수입 만들기!>를 들었다. 선생님들의 강의를 들으면서 번역가를 소개하는 책날개에 내 이름을 박고 외서를 출간하겠다는 꿈을 품었다. 어떤 내용의 강의였고, 어떤 점을 깨달았는지는 다음 편에서 계속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