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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각심 Aug 07. 2023

혼자

혼자 가방에 가볍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은 책을 한 권 넣고, 노트북이 잘 들어있나 확인을 한 뒤 메모장을 켜서 나가기 전 준비물들을 다 챙겼나 확인한다. 나는 고질적으로 물건을 두고 나와 몇 번이고 집에 다시 가는 병이 있기 때문이다. 이 병 은 나의 친구 동물의 숲에게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칠칠찮은 사람들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둘이나 있다며 서로에게 위안을 얻고는 한다. 이렇게 체크 리스트의 마지막까지 확인을 마치고 나면 드디어 나갈 채비가 다 끝난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유독 많았다. 물론 부모님과 함께했지만 나는 정서적으로 독립해 있었다. 외동이기 때문에 나의 친구는 오직 나 자신뿐이었으며 혼자 노는 방법들을 탐구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혼자 노는 재미를 차차 잊어버렸지만 22살이 된 지금은 다시 찾았다. 혼자 나가기 하루 전날 밤, 계획형 인간인 나는 다음날 갈 장소와 경로, 주변의 맛집과 카페까지 다 검색한 후 계획을  세워 놓는다. 작은 화면 안에 모든 정보가 담긴 요즘이지만 그 장소의 모든 풍경까지는 담지 못한다. 도착을 하고 나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핸드폰으로는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 펼쳐진다. 글을 쓰고나서 생긴 습관 같은 건데 주변의 무언가를 잘 지나치지 못하고 기록하는 병이 있다. 걸어갈 때는 메모하는  것보다 순간 사진으로 찍어버리는 편이 쉬우므로 사진을 찍는 방법을 더 애용하는 것 같다. 나의 혼자 놀이가 시작되고 나면 나의 카메라 앨범은 두둑해진다. 그만큼 두둑한 마음이 된다. 글공유를 가기 전, 혼자서 많이 노는 시간이다. 다른 모임원 분들은 일이 끝나고 7시 까지 오시는데 나는 집이 멀기도 하고, 혼자 몇 시간 일찍 집을 나서고는 한다. 대략 2-3시쯤 그날 모임 장소 주변의 다른 카페나 볼거리를 검색한 후에 먼저 가서 혼자 과제를 하거나 사색하는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친구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되게 창피하게 여겼다. 어느 정도였냐면 미용실도 혼자 가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혼카(혼자 카페 가기), 혼공 (혼자 공부하기), 혼밥(혼자 밥 먹기)의 장인이 되었다. 혼자 노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이다. 내가 요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유인데 길 가다가 떨어진 나뭇잎이 나 청계천에 앉아있는 사람들, 물속의 물고기, 돌 등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는 것을 즐긴다. 내 머릿속에서 물고기는 날아다니기도 하고 돌은 헤엄치기도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이 저렇게나 많은데 각자 엄청나게 넓고 깊은 생을 저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을지로에 있는 여러 상점의 주인들이 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그곳을 몰래 훔쳐보고는 한다. “어떤 생을 가지고 있을까?” 그곳이 주는 향기, 분위기 들을 기억하며 상상을 펼친다. 이러한 생각들을 길을 가다가  멈춰서 같이해줄 수 있는 친구는 드물어서 더더욱 혼자가 더  편한 것을 느끼는 것 같다. 상상하는 나의 발은 탭댄스를 춘다. 노래는 일부러 듣지  않는다. 그곳의 그때의 소음이 노래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내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 차 소리, 사람들, 웃음소리는 어우러져 음악이 된다. 혼자 흥얼흥얼하면서 어디든 걷는다. 걷는 내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기도 하고 사진으로 남 기기도 하고,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그냥 여유를 갖는 것이 좋다. 내 집은 서울에서 멀기 때문에 지하철에 있는 시간 동안만 이라도 책을 읽으면 왕복하는 동안 책 한 권을 거의 다 읽을  수 있다. 이 시간을 그냥 핸드폰을 보는 것으로 보내지 않고,  책을 읽고, 혼자 카페에 앉아 커피를 한 잔 시키고, 노트북을  켜면 그냥 좀 괜찮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한동안 바빠서 서울을 나가지 못했을 때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숨구멍을 누가 막아놓은 것처럼 무척이나 답답했다. 그래서 혼자 서울로 향하는 길은 내 숨구멍을 찾아가는 길이기 도 하다. 물론 서울에만 이러한 것들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니다. 면허가 없는 내가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동네의 뚝심 있는 토박이이며, 나의  아빠, 나의 할아버지까지도 그러므로 모르는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의 해방감, 자유로움 등을 즐긴다. 내 친구들은 나에게 내가 성수동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가는 것을 보며 “너는 거기에 꿀 발라놨니?”라고 묻는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 몰래 발려져 있는 꿀들을 세상이 쓰게 느껴질 때마다 가서 달달하게 맛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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