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첫 번째 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내가 다녔던 학교는 강의와 세미나로 수업이 구성되어 있었다. 보통 세미나는 강의에서 다룬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세미나는 항상 피하고 싶은 시간이었다. 네이티브들과 토론하기란 넘을 수 없는 큰 벽처럼 느껴졌다. 영국 친구들은 빠른 속도로 서로 의견을 교환했고 내용을 파악하기도 전에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건 흔한 일이었다. 한국어로는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영어로 막상 표현하려고 하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하다 보니 자신 있게 의견을 제시하는 것 자체도 어렵게 느껴졌다. 우리는 대부분 어른들의 말씀을 듣는 위치에 있었고 남들과 다른 의견이 있어도 겉으로 표현하는 일이 별로 없지 않았던가. 영국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교육받기 때문에 그들에게 토론 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지속해서 세미나에 참여하다 보니 조금씩 요령이라는 게 생 겼다. 수업 내용을 미리 공부해서 하고 싶은 말을 준비했고 세미나가 시작하면 먼저 의견을 제시해서 토론의 물꼬를 텄다. 가만히 있다가 흐름을 놓칠 바에야 내가 준비한 말을 먼저 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룹 토론이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분명히 장점도 있었다. 서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다 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의견이 나왔고 이는 강의에서 다뤄진 주제를 더 깊이 있게 탐구할 기회가 되기도 했다.
영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스스로 세운 장애물을 깨려는 노력을 부단히 했다. 내가 자신 있게 의견을 제시하는 걸 어려워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은 나의 의견에 관심이 없을 거야, 나의 서툰 영어를 과연 듣고 싶어 할까’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스스로를 가로막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런 부정적인 기운을 날려버리고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세미나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자기 암시를 하곤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단번에 나아지지는 않았다. 어떤 날은 준비했던 이야기를 모두 하고 토론의 흐름을 잘 따라간 적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끝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초반에 느꼈던 긴장감과 불편함이 줄어들었고 느린 속도이지만 조금씩 내가 변화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만든 장벽을 서서히 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