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놓기_03] 아이들처럼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아빠. 나 CSI 된다. 알겠지? 아빠 나 CSI 할 거야.”
코로나 기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뜬금없이 CSI (Crime Scene Investigator)가 되고 싶다는 여덟 살 둘째 아들. 꽤 진중하게 구글 검색을 한다. 주요 업무는 무엇이고, 어떤 공부를 해야 되고, 옆에서 종알종알거린다. 집중해서 안 듣다가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었다.
“아들. 그런데 CSI는 엄청 고생스럽고, 돈도 별로 못 벌 거 같은데?”
아이의 당황한 표정. 아뿔싸. ‘지금 애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내 말을 듣고 한참을 조용히 생각하던 아이가 이렇게 묻는다.
아빠는 그게 중요해?
아이들에게 사회적 책임이니 바른 인격과 성품을 지닌 사람이 돼야 한다는 등, 온갖 고상한 말은 다 해놓고. 결국 내가 무엇을 쫓고 사는지, 발가벗은 듯 다 드러냈다. 아내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결국은 '그'게 중요한 사람이 돼버렸다. 내가 아이의 장래희망을 대하는 방식이 늘 이런 것은 아니었다.
벌써 2년 전 일이다. 둘째 녀석이 학교 마치고 돌아와서 숙제를 끝내더니 뜬금없이 자기 친구를 우리 집에 초대하는 카드를 쓰고 싶단다. 그리고 우표를 붙여서 오늘 우편함에 넣고 싶다고 했다. 이 녀석이 무슨 바람이 들었나.. 싶어서 친구 주소는 알고 그러냐고 했더니,
“내가 친구한테 물어서 외워 왔어!"
아니나 다를까 친구 주소를 거침없이 외우는 것이 아닌가. 단단히 벼렸다. 날은 어둑하고 집에 카드는 있는데 봉투도 없고 우표도 없다. 무엇보다 귀찮아서 다음에 하자고 툭 말을 꺼내려다, 괜히 마음이 뭉클하고 간질간질해졌다. 여섯 살 아이의 마음에 초대하고 싶고, 마음에 닿고 싶은 친구가 있단 것도 신기하고, 그 마음을 기쁘게 표현하려는 것도 얼마나 기특하던지.
아들은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더니 초대장을 써서 들고 나왔다. 대략 내용은 이랬다.
(인사 생략)
친구야. 우리 집 주소야.
놀러 와. 같이 게임하자.
Sincerely,
Daniel
'Sincerely'라니. 언제 배웠니. 너무 귀엽구나.
어쩔 수 없이 귀찮은 몸을 이끌고 내 오피스로 데리고 나왔다. 카드봉투도 한 장 고르고, 친구 주소를 적게 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삐뚤빼뚤 하지만 꾹 눌러 주소를 쓰고 우표를 정성스레 붙이는 뒷모습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흘러내렸다. 글씨를 써 내려가는 손, 집중하던 입술, 동동거리던 발. 내내 복잡한 소식에 우울하던 그 날 오후. 내 마음에 볕뉘를 내는, 작지만 따뜻한 움직임이었다. 내친김에 불 꺼진 우체국 앞에 가서 우편함에 카드를 밀어 넣게 했다. 카드를 넣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아이.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아빠! 나 크면 우체부 될 거야!
분명 얼마 전까지 축구선수가 꿈이었는데. 이상하리만치 듣기 좋은 그 말. 마음이 녹아내린다. 왜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꿈이 건물주라고 하지 않나. 살면서 우체부가 꿈이라고 말하는 아이를 만난 적이 있었나 잠시 생각했다.
"왜 우체부가 되고 싶어?"
"(쑥스러운 듯) 사람들한테 좋은 소식을 내가 직접 전해주는 거잖아. 축구선수랑 우체부 같이 할 수 있지? 아빠도 같이 우체부 하면 안 돼?"
자칫, 우체부가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만을 전하는 건 아니라고 말해 버릴 뻔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을 표현하는 기쁨. 친구를 설레는 마음으로 초대하고 보니, 그 마음을 전달해주는 우체부가 제법 근사하고 멋지게 보였구나 생각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자기가 보낸 편지가 며칠 있어야 도착하는지 얼마나 궁금해하고 설레어하던지.
아이의 초대를 받은 친구는 마법처럼 며칠 후 진짜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엄마와 단 둘이 사는 멕시코 이민자 가정의 아이였다. 초대에 기꺼이 응해준 아들의 친구를 나와 아내는 기쁨으로 환대했다. 그리고 두 아이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날 밤 잠든 아들의 머리맡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아이의 귀한 마음. 나에게는 과분한 마음. 빛이 환히 비춘다. 자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아이에게 살며시 건넸던 말.
“아빠도 너처럼 사람들한테 좋은 소식, 행복한 마음만 나눠주는 우체부로 살면 좋겠다.”
하루에도 열두 번 바뀌는 아이의 장래희망 나눔 예능을 다큐로 받아버린 부끄러운 오후.
“아빠는 그게 중요해?”란 아이의 질문.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불안정한 삶에 대한 불안함이 가중된 탓일까. ‘이 모든 게 코로나 때문이야’라고 괜히 어깃장을 놓지만, 마음의 바닥을 드러낸 민망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은 무엇일까. 내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길 바라는가.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Johann Christoph-Annold)는 <부모가 학교다>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아버지는 어린아이들처럼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몸은 작지만 아이가 바라본 세상은 돈으로 다 담기 어려울 정도로 넓고 깊다. 마치 귀엽고 순박한 푸우가 사는 100 에이커 숲처럼. 사람을 정의하는 많은 수식어와 설명도 중요하지 않다. 인종, 재산, 명예, 학력. 우리 삶을 단단하게 지탱시켜 준다고 믿는 것들 - 아빠에게 중요해 보이는 '그런' 것들은 - 아이의 숲에 발붙일 곳이 없다.
우리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던 크리스토퍼 로빈이 오래 잊고 지낸 친구 푸우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는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Christopher Robin, 2017). 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 로빈은 용기를 내어 악덕 사장 윈슬로를 괴물(Woozle)로 빗대어 이런 말을 한다.
"우즐(Woozle)은 볼품없이 조그만 괴물이에요. 모든 사람을 자신을 위해 부려 먹고 사람들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살길 바라는! 가장 중요한 건, 우리 가족들, 귀한 친구들이에요.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요!"
"A Woozle is a slinking little monster who gets everyone else to do his work for him and hopes that we forget what's important in our lives; Our families, Our dear friends. The people who love us. The people whom we love."
아이 얼굴에서 빛을 보던 그날 밤이 무척이나 그리운 밤. 자고 있는 아들 옆에 오늘도 어정쩡하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아들아.
축구선수도, 우체부도, CSI도 다 괜찮아.
지금처럼 소중한 것만 잃어버리고 살지 않는다면.
아빠 마음이 바래질 때마다,
그저 너의 숲 속으로 한번 씩만 데려가 주렴.
진짜 중요한 걸 잊지 않고 살도록 말이야.
# 당신의_일상에_의자_하나_놓기
# 편히앉아서쉬다가세요
# foryourch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