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Friend’ 엄마와 내가 휴대폰에 저장한
서로의 이름이다.
우린 ‘베프’ 답게 제법 쿵짝이 잘 맞는다.
쉬는 날엔 어떻게 해서든 밖에 안 나갈 핑계를 찾고 쇼파에 늘어지게 누워 영화 한 편 보며 낄낄거리는 걸 삶의 낙이라 생각하지만,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화창한 날엔 각자 이어폰을 챙겨 들고 밖에 나가 음악을 들으며 무작정 걷는 것을 좋아한다.
코드도 성격도 비슷한 우리는 웬만한 일엔 뜻이 같아서 싸울 일도 거의 없다.
하지만 엄마와 내가 한가지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영영 닿을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건 바로 제사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명절을 앞두고 이번에는 무슨 음식을 준비하나
궁금해서 우리 집에 일찍 놀러 온 조상님이
엄마와 내가 제사로 다투는 걸 들었다면, ‘쟤네는 매년 지겹지도 않나? 어쩜 작년이랑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말로 싸우냐?’ 질린다는 듯 혀를 쯧쯧 차며 돌아가셨을 것이다.
7년 전부터 아버지 일가 쪽 제사와 명절은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다.
그 말인즉슨, 명절이 다가오기 일주일 전부터 엄마의 걱정과 고민이 늦은 오후의 그림자처럼
길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말다툼은 항상 엄마의 깊은 한숨과 함께 시작된다.
‘이번엔 어떤 전을 부치지? 새우전을 하고 싶은데 손이 많이 가서 귀찮단 말이야. 점심이랑 저녁엔 또 무슨 음식을 대접하지?’ 모인 가족들 배불리 먹일 생각에 엄마의 미간엔 주름이 점점 깊어져 가다가 화장실 청소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문제에 이르면 잔뜩 울상이 된다.
베프이자 하나 밖에 없는 딸로서 도저히 엄마가 명절마다 힘들어하는 걸 볼 수 없어 나는 매년 말하지만, 씨알도 안 먹힐 ‘우리도 남들처럼 밖에서 제사 음식 사다 먹자’를 강력히 주장한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역시나 ‘사다 먹자’라는 말에 엄마는 언제 명절이고 뭐고 만사 다 귀찮다고
말했냐는 듯 도끼눈을 뜨고 나를 쳐다본다.
“밖에서 사 먹는 건 사다 먹는 맛이 나(당연한 말 아닌지) 그래도 직접 해 먹어야 맛있지! 음식은 정성이야.”
혹시 엄마가 어릴 때부터 봐온 명절은 여자들이 상 차리고 뒷정리하면 남자들은 상석에 앉아 주는
음식을 날름 받아먹으면서 손 하나 까닥하지 않던 모습이라 여자들만 일하는 명절의 기이한 행태를
당연하다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한 평생 가부장제 사회에서 K-장녀와 맏며느리로 살아온 엄마가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갖지 않아도 될 부담감을 혼자 떠안은 채 매년 제사상을 차리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열이 올라 이제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지금의 제사는 가부장제
산물이며 남녀 차별적 행위의 집약체라고 엄마에게 열변을 토했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 라며 나를 어이없게 쳐다볼 줄 알았던 엄마는 의외로 내 말에 수긍
하셨다. 그런 엄마의 반응에 신이 난 나는 다시 한번 ‘그러니 괜히 모처럼 쉬는 날에 힘들이지 말고
앞으로 음식은 사다 먹자’ 라고 말했으나 이내 내 주장은 다시 한번 철저히 무시당했다.
‘네 말대로 여자 혼자 일하는 제사가 불공평한 것은 맞지만, 그래도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은 직접
해 먹는 게 맞다. 나 죽고 난 뒤엔 음식을 사서 지내든 말든 신경도 안 쓸 테니 내가 제사를 지낼 땐
내 맘대로 하겠다’ 흔들리지 않는 엄마의 단호한 선언을 듣고 나니 기가 꺾여 이젠 더 이상
엄마를 설득하려 노력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작년에도 같은 생각을 했으나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다)
올해도 엄마는 ‘귀찮다’ 하시면서 제사상에 올라갈 세 가지 종류의 다른 전과 생선, 닭, 나물, 추어탕
등을 준비하시고 그것도 모자라 가족들과 함께 먹을 갈비찜, LA갈비, 떡갈비에 매년 하시는 식혜까지 만드셨다. 이걸 다 먹을 수 있나 싶어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이 와중에 엄마는 ‘가족들이 먹을 반찬이 하나도 없네’ 라고 해 또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아, 엄마 좀.
사실 엄마의 이런 큰손다운 면모는 명절 당일 제사를 마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갈 때 진가를 보인다.
친척들에게 싸줄 양까지 계산해 음식을 만드는 엄마는 전이며 과일이며 또 한 보따리 씩 잔뜩 챙겨
나눠주기 시작하더니, 큰 엄마표 식혜가 제일 맛있다는 사촌 동생의 말에 이때다 싶어 베란다로 가
미리 비워 놓은 생수 1.5L짜리 통을 들고와 뚜껑이 간신히 닫힐 때까지 식혜를 콸콸 부었다.
그렇게 자신이 준비한 음식을 나눠주는 엄마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뿌듯해 보였다.
지지고 볶고 부치는 지난한 과정까지 모두 좋아하지 않지만, 누구보다 맛있게 먹어줄 가족들을
생각하며 한 상 가득 음식을 만드는 게 어쩌면 엄마가 가족을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식이 아닌가 싶다. 엄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만들어 가족들에게 나눠주는 걸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일 년에 설날, 추석, 제사 딱 3번만 오는 엄마의 소소한 기쁨을 가부장제의 폐해라며 규정짓고 내 멋대로 빼앗으려 했던 건 아닌지 잠시 민망해졌다.
물론 여전히 제사상은 조상들과 피 한 방울 안 섞인 며느리들이 다 차리고 막상 절은 남자들만 하며
생색내는 모습은 보기 싫고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제사 핑계로 서로 시간 맞춰 보기 힘든
친척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주는 게 엄마의 낙이라면 존중하고 싶다.
사후세계를 믿는 편은 아니지만 만약 조상님의 영혼이 진짜 있고 명절마다 우리 집에 제삿밥을
먹으러 찾아온다면, 절 올리는 후손들 뒤편 부엌에 서서 잠시 쉬고 있는 엄마를 좀 더 굽어살펴 주시길. 우리 조상님이 그 정도 염치는 있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