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님, 저 퇴사하려고요.”
내 퇴사 선언은 일종의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운 좋게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회사에 취업을 했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합격 통화를 듣고도 ‘내가 합격이라고?’ 의아함이 더 컸던 나는 입사하고 나서도 부족한 실력을
들켜서 안된다는 생각에 작은 실수 하나 금방 털어내지 못하고 주말까지 괴로워했다.
처음이라 모든 것에 서툴 수밖에 없는 나를 내가 참지 못했던 것이다.
완벽하게 일을 완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퇴근하고 나서도 일을 끌어안은 채 끙끙 됐다.
심지어 새로 온 팀장님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적으로 피드백을 주고 팀원들 사이를 이간질 하는
등 말로만 듣던 최악의 상사였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엄마랑 통화하다 사연 있는 여성처럼 우는 나를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
들이 측은하게 쳐다볼 때, 연말 보너스를 받아도 아무런 감흥이 없을 때, 회의실에 앉아 회의를
할 때마다 창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상상을 자주 하게 될 때 그렇게 나는 도망치듯 회사를 나왔다.
퇴사를 하자마자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으려 안간힘을 썼다. 요가와 명상을 통해
소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고 전시회와 공연을 보러 다니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코로나로 2년간 개최되지 못했던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이 10월에 열린다는 것이었다. DMZ 피스트레인(이하 디엠지 페스티벌)은 한반도
분단을 상징하는 철원에서 열리는 공공 음악 페스티벌로, "음악을 통해 정치, 경제, 이념을 초월하고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자" 라는 모토 아래 시작되었다.
2019년 여름, 소름 돋을 정도로 나와 비슷한 관심사와 취향을 가진 J언니를 따라 디엠지 페스티벌에 갔었다.
철원에서 열리는 게 특별할 뿐, 전에 가본 다른 페스티벌과 비슷하겠지 싶어 큰 기대는 없었는데 이게 웬걸.
페스티벌 부지에 있는 고석정의 아름다운 풍경은 나를 감동시키기 충분했고,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자유로운 분위기는 없던 인류애도 생기게 만들어줬다. DJ가 틀어주는 이국적인 비트에 맞춰 등산복을 입은 아주머니, 아저씨가 젊은 남녀가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은 확실히 다른 페스티벌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3년 만에 열린 디엠지 페스티벌은 예산이 줄어들어 라인업과 페스티벌 부지 규모가 축소된 채 열렸다.
하지만 그까짓 바이러스가, 지자체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머나먼 철원까지 춤추러 온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과 흥을 막을 순 없었다. 높은 바위 기둥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도 지역 주민들과 한데 어울려 음악에 몸을 맡기는 자유로운 분위기도 모두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미국, 프랑스, 태국, 팔레스타인 등 세계 곳곳에서 온 가수들의 생전 처음 듣는 노래에도 멜론 차트 TOP 10 곡을 듣는 것처럼 열광했고, 윤수일밴드의 아파트에 맞춰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으쌰랴 으쌰’를 목 터지게 외쳤다.
나는 몸을 가만두면 큰일 나는 사람처럼 음악만 나오면 몸을 흔들어 재끼기 바빴다.
철원의 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는 사람들의 진정을 돕는 게 아니라 흥을 돋우고 춤을 추게 만드는 효과를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사실 지독한 몸치라 춤이라 하기도 민망한 치열하고 어딘가 간절하기까지 한 내 몸짓은 그동안 쌓여 있던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밖으로 배출하게 만드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자유를 향한 내 갈망의 몸짓은 축제 마지막 날 저녁에 절정을 향해 갔다. 더운 열기를 씻어내려
줄 만큼 오던 비는 어느새 앞사람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강한 폭우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신발 안에서 빗물이 찰랑거렸고 속옷에 가방까지 모두 젖어 이젠 내가 비고 비가 나인 ‘비아일체’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퍼붓는 비속에서 한영애님의 무대가 시작됐는데, 이 시간을 위해 비가 내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폭우는 하나의 무대 장치처럼 자연스럽게 공연에 녹아들었다.
특히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앵콜 곡 조율의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 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를 모두가 하나 되어 외치는 순간은 평화를 염원하는 영적 행위 같았다.
나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손을 꽉 잡고 둥근 원을 만든 뒤 음악에 맞춰 뛰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언의 신호에 맞춰 다 같이 원 안으로 뛰어들어 사람들의 몸에 내 몸을 부딪히면서 우리
모두 살아있음을 피부로 느꼈다. 그 순간, 어긋나 있던 내 삶이 완벽하게 조율되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는 거 같았다.
과거의 나에게 필요했던 건 이렇게 내 삶을 지탱해 주는 오로지 나를 위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얼른 제 몫을 하는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싶어 마음만 급하고 요령이 없었던 나는 내 부족한 부분만
들여다보느라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자신감은 끝도 없이 추락했고 어느 순간부터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닌 버티고 있었다. 그때 내가 잔뜩 긴장된 어깨에 힘을 풀고 좀 더 자신을 너그럽게
대했다면 어땠을까. 주말에도 실수하고 부족한 나를 몰아세우며 채찍질할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시간을 만들며 자신을 돌봐야 했다. 상대방과의 갈등을 해결하는 조율도 중요하지
만, 무엇보다 일상 속 균형을 맞추는 자신과의 조율도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누구보다 가장 엄격한 내가 또 서툰 나를 몰아세우려고 할 때마다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춤췄던
그날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누가 봐도 어설픈 몸짓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내가 느끼는 감정을 몸으로 표현했던 그때의 나는 아무런 빈틈없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