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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 Jun 18. 2021

그 순간 우리의 기류에 대한 낯부끄러운 내 마음.

공항에서 한 이별, 처음 전해 보는 이야기이다.

단 한 번도 나의 사랑이야기에 대해 외부에 노출한 적 없다. 낯부끄럽기 짝이 없으며 실패한 사람 같아 보였다. 그렇다고 남들의 사랑에 비판하고 함부로 말할 자격 없기도 하며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나는 누구보다 다양한 종류의 사랑을 존중하며 오히려 더없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 어떠한 형태든 사랑은 존중받아야 마땅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사랑이 곧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도파민, 세로토닌이라면 더더욱이. 슬픔마저 행복이라면. 남들의 사랑은 귀한데 내 사랑이라고 귀하지 않으리.


하이틴 영화 같은 순간과 로맨스 영화에서 나올 법한 그런 남녀의 이야기(남남, 남녀, 여여 혹은 젠더  다양하지만 그중 나는 Straight 이므로 남녀로 생각해주시길) 같은 행복한 이야기, 스토리가 분명 나에게도 있었다. 적어도 나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남들 생각이야 뭐가 중요한가. 내가 느꼈으면 그만. 어릴  읽은 신데렐라, 백설공주  공주와 왕자 이야기는 허상이지만 여전히 꿈꾸기도 한다. 백마  왕자.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에 맞게 허구  플롯에 그는 백마를 타고 나타난다. 현대물엔 테슬라 타고 나타나려나. 웃자고  이야기다. 나는 그저 같이 요트 타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빛깔의 노을 속으로 항해하고 싶다. 렌트면 어떠한가. 주절주절 의식에 흐름에 맡겨 두서없이 나열했다. 이야기로 돌아가, 영화와 동화  주인공의 이야기는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때론 이해할  없는 행동과 결론과 실마리를   없는  특징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안에서 적지 않게 공감할  있다. 공감은  인간이 타고난 본능이니까.


몇 계절이나 지난 일. 내가 그를 만나며 배우게 된 '어색한 기류'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소소하고 짧은 해프닝에 대한 이야기를 당신들에게 전한다. 비록 첫 이야기가 꼬물꼬물 거리는 달달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 기억의 온도는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층고 높고 큰 공간에서 냄새로 따지자면 플로럴 하지 않은 스모키하고 스파이시한 향기 일이다. 용기 내 적어본다. 내 소중한 순간을 공유한다.


뒤늦었지만 잠시 새로운 페이지를 열어 각자만의 뮤직 플랫폼으로 영화 클래식의 OST로 잘 알려진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라는 노래를 함께 곁들여 이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가사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며 그저 음미해주길.



더 이상 내가 사는 우리집이 아닐, 종종 나를 기다리던 3층 목조주택의 앞마당을 지나 대문 앞. 그 앞에 볼 수 있는 우리의 마지막 모습. 우버에 캐리어를 싣고 나를 배웅해주려 바래다주는 길. 언제나 늘 그렇듯이 시답잖은 소소한 이야기, 지인들 이야기와 추억 회상.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관계가 더 이상 아니니. 그리곤 그저 돌아오는 인사는 고맙고 잘 지내라는 한마디. 마지막이라고 조금 더 많은 인사를 나눌 줄 알았던 기대했던 내가 바보다. 늘 그렇듯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


시뻘게진 , 울적해 보인다는 .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 심장이 너무 아파  이상 이야기를 나눌  없었고 침묵만을 지키기에 다름없었다. 어쩜 이렇게 공항의 모든 상점들은 문을 았는지, 몇 없는 출국자들을 간신히   있는 공간에서 이내 삭막한 흐름을 느꼈었다. 나는 를 향한 마음을 참느라  눈을 감았고 20 09월의 어느  오후 1시의 15분을 남기고 나는 이내 떠나겠다는 인사를 건넸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인사를 건넨다고 마음을 추슬렀다. 그가 보기엔 그저 속상한  팍팍 내는 인사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는 담담하게 그저 시간을 체크하고 나를 쳐다보며 일찍, 벌써라는 의문만 갖은  시계와 나를 번갈아보았다.  의문마저 단순히 시간에 대한 의미인 듯했다. 아니  어떤 의미를 갖기는 했을까 무튼 그렇게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두 팔을 벌려 나를 감싸줬고 울음이 터질 것 같던 나는 잠시 그를 끌어안고 재빠르게 밀쳐냈다. 눈을 마주 볼 수 없었다. 그 순간에는 혼자 공항에 왔다면 차라리 편한 마음이었을까 하는 내 앞에 당신에게 배려 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곧장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들려오는 잘 가 라는 외침. 잘 가라는 인사가 왜 이렇게 미운지 영원한 안녕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자면 코비드19 시국에 출국장에서의 검역은 필수인데 혹시나 내 눈물에 체온이 올라 출국 거부가 되면 어쩌지 라는 생각도 했다. 비웃어도 핑계 같아 보인다 해도 나는 더 이상 할 말 없다. 15분의 시간을 일정 부분 후회하지만 더 오래 봤더라면 더 오래 앉아있었더라면 아쉬움만 더 커졌을 것이다. 그저 이대로 멈춰야 한다. 어차피 물리적으로 만날 수 없을 테니 그리울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속상했고 너무 아팠다 어딘지 모르게 사실 내 마음도 잘 모르겠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고 아쉬운지조차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마음이 자꾸 그랬다.


마음이 가는 데에는 이유가 정말 없다. 그저 흔들리는 그 눈빛이 좋았고 가끔 진심으로 웃어주는 그 눈빛이 좋았다. 마주 본 시간보다 나란히 걷거나 나란히 앉아 이야기한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내 상상으로 그 눈빛을 그렸던 것 같아서 홀로 사랑에 빠졌었나 보다.


나는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랜딩 한 시간을 남겨두고 이제 와서 다시 한번 마음 정리를 하는 바이다. 지난 추억을 빨리 잊고 내 삶을 살자. 늘 그렇듯 이별이 잡아먹는 시간은 너무 아깝고 세상에 더 멋지고 좋은 그런 사람들 만나고 또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날 더 성장시키고 바우고 경험하며 그런 나를 사랑하자. 지금도 충분히 멋지니까.



위 이야기는 공항에서의 헤어짐을 뒤로한 채 한국을 향하는 비행기에서 와인 한잔하며 창밖의 파란 태평양을 한없이 바라보다 메모장에 적었던 짧은 내 마음속의 이야기다. 시간은 흘렀고 지금은 추억이 되었지만 이 글을 통해 그때의 감정을 종종 느껴보곤 한다. 오랜만에 느껴본 사랑이란 감정이었다. 행복하고 슬픈 감정 모두 나에게 소중한 감정이다. 기쁘고 아픈 일 모두 추억이고 잊고 싶지 않다. 기억이란 것은 쌍방이 아닌 일방적 그리고 아주 주관적인 개인의 조각이다. 내가 기억하는 순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화되기도 혹은 악화되기도 한다. 그때의 그리고 현재의 내 감정과 상황에 따라서 변화되는 것이다. 가장 객관적 관점으로 기억하고자 인상 깊고 나에게 자극적인 추억을 글로 적는 습관이 생겼다. 모든 관계에서는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다 전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며 나는 내 속이야기를 다 전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많고 표현하는 데에 서툰 사람이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해도 될 혹은 전해서는 안 될 이야기로 나뉘어지는데 대부분 내 감정을 정리하고 어딘가에 묻어두고자 끄적이다 마음 편히 잠들기 위함이다. 평소 고민으로 밤을 뒤척이다 글을 적는데 다 적고 다시 한번 읽어보며 나를 위로하고 공감하고 이해해주고 나면 비로소 온전히 잠에 빠질 수 있다. 혹 그대가 심란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는다면 메모장에 끄적여보는 게 어떨까.


사랑이란 축복이 찾아온다면 더 많이 표현해보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잠 못 드는 새벽녘에는 분위기에 맞는 플레이리스트에 따뜻한 조명 하나 켜놓고 지난날을 추억하기도 미래를 꿈꿔보기도 하고 싶다. 어색한 기류를 참으로 좋아하는 나. 그 묘한 공기의 흐름은 당신과 함께하는 이 순간에 더 많은 상상을 자극하고 당신에 대해 꿈을 키워나갈 수 있다. 관계의 시작 단계에서만이 가질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그 분위기에 취할 수 있다. 늘상 우리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안부를 묻고 날씨에 대한 이 이야기를 하며 안타깝게도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어색한 기류에 대한 낭만에 젖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굳이 이 기류를 깨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며 되려 시답지 않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로 감정이 공유되는 그대들의 소중한 시간이 빼앗기지 않기를.




이 글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글이 아닌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물 흐르듯 지날 수 있는 다른 이의 삶에 일부분에 대한 이야기다. 관음은 '관세음보살'의 준말이라고 한다. 긍정적 효과의 관음으로 내 삶을 엿본 당신에게도 사랑이 있다면, 사랑을 하고자 한다면 혹은 사랑의 끝에 서있다면 나의 이야기가 어느새 당신에게 새로운 경험이지 않을까. 사람들의 괴로움을 치유해주거나 소원을 들어주는 자비로운 부처님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으며 잠시나마 그 어떠한 감정이라도 느꼈다면 너무도 감사하겠다.







위의 이야기가 공감이 된다면 사랑을 가진 당신에게 소중한 라이킷 꾸-욱, 주변의 소중한 지인과 나누고 싶다면 공유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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