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떠났습니다. 한 골목에서 대문을 마주 보고 살았던 깨복쟁이 친구입니다. 밑 터진 바지를 입고 구슬치기를 해도 거리낌이 없었던 친구. 초등학교 시절에는 논둑에 서서 오줌 줄기 멀리 나가기 시합을 매번 해 왔던 친구입니다. 그 친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지독하게 성실했고, 정직했습니다. 부산 남포동 어느 선구점 점원으로 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사장이라는 분이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사업을 못하게 되자 친구에게 돈은 벌어서 갚아 나가고 점포를 인수하라고 했을까요.
그런 친구 어머니 장례 때 운구를 바라보고 있는데 친구가 슬쩍 귀띔을 합니다. “저기 서 계시는 노부부가 점포를 그냥 주다시피 하신 사장님일세.”라고 말을 합니다. 나는 1초도 망설임 없이 노부부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습니다. 어리둥절해 하면서 “누구십니까?” 하십니다. 노부부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ㅇㅇ 친구입니다.”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냥 내 친구를 인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뜻 이상도 이하도 없는 인사였으니까요.
그런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정을 바라보며 울지 않았습니다. 아니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해야겠지요. 그냥 입에서 나오는 것은 “허무하다. 너무 허무하다. 고생 많이 했는데”라는 떨리는 소리뿐이었습니다. 친구가 떠난 지도 4개월이 지나갑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비가 내리는 고향 집에서 골목길을 적시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봅니다. 술 한잔 걸치고 해맑게 웃으며 찾아올 것 같은 친구가 유난스레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