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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수 Aug 20. 2024

능소화가 피었다

   돌담을 휘감고 능소화가 피었다. 꽃등을 걸어둔 것처럼 환하다. 꽃숭어리 채 후두둑 떨어져 나뒹구는 꽃도 화려하다. 골목길 돌담을 휘감고 있는 능소화가 필 때 만나자 했던 그 맹세의 조각들은 50년이 자나 도 아직 지켜지지 못하고, 올해도 활짝 핀 능소화만 바라볼 뿐이다. 능소화가 필 때면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가슴앓이를 한다. 능소화 꽃숭어리와 같이 기억에 소환되는 사람이 있다. 이제는 그 명세의 이야기도 흐물거려 잊혀질만도 한데 그 여름날 밤 명세는 자꾸 발뒤꿈치에서 불러세운다. 어쩌면 그녀도 옥죄고 있을 그 날. 능소화가 필 때면 그녀도 돌담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지 않았을까. 

  오늘따라 수직으로 꽂히는 그리움이 서럽다. 머리를 곱게 따고 대문에 고개를 내밀 것 같은 그녀의 화사한 얼굴이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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