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들의 방송 BTN이 제작한 「법정 스님 입적 10주기 특집방송」을 유ㅇ버에서 가끔 시청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있으면 무소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스님은 입적하시면서 ‘비구’라는 단어를 가장 성스러운 단어로 만드셨습니다. 스님께서 입적하시기 전 마지막 날 밤에 상좌에게 어떤 품계와 불필요한 상례를 허락하지 않으면서 “비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면서 즉시 다비하라.”라고 했답니다. 그래서일까. 10주기 특집방송 작가는 “세상은 시대의 축복이었던 비구를 잃었다.”라고 애통해하고 있습니다.
오늘같이 무더운 날이면 가끔 스님이 남기신 책들을 뒤적이거나 스님의 법문을 듣습니다. 스님께서는 오도송이나 열반송을 남기지 않으셨나 봅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현대불교 신문을 보다가 스님의 시 한 편을 읽었습니다. 속가의 외조카이며 조카 상좌인 현장 스님에게 생전에 붓으로 써준 자작 애송시가 현대불교 신문 누리집에 올라와 있어(김형중 문화평론가) 메모지에 남겨 두었습니다.
어찌 서쪽에만 극락이라 / 옳거나 그르거니 내 몰라라 / 산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어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이랴 /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간결하고 덧붙임이 없는 스님다운 글입니다. ‘김형중 문화평론가’는 “번뇌 망상의 먹구름만 걷히면 그대로 깨달음의 세계인 청산임을 밝힌 깨달음의 열반송이다.”라고 합니다.
스님은 우리 모두 알다시피 무소유의 삶을 사셨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가지지 않는다.”라는 무소유를 실천하시고 입적하셨습니다. 특집방송을 볼 때마다 저절로 존경심이 생기는 것은 스님의 삶이 언행이 일치하기에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님의 법구는 만장 하나, 꽃 한 송이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비구 법정이라고 쓰인 위패를 앞세우고 대나무 침상에 누워 붉은 가사 한 장 덮어진 법구가 나오는 모습을 보던 작가는 “서럽도록 간소한 법구이며 무소유의 극치”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내래이션을 합니다. 더 이상의 표현은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그날, 송광사 다비장을 오르면서 “귀의처를 잃은 아쉬움과 설움”에 두 손 모아 고개 숙였습니다.